플립퍼즈 기타(flipper's guitar), 헤드박사와 함께 하는 추억이야기 뮤직머신

플립퍼즈 기타의 3번째 정규앨범이자 마지막 앨범.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구입한 플립퍼즈 기타의 앨범이기도 하다.

1998~1999년 경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컴퓨터로 인터넷이란 곳에 접속하여 원하는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메탈플러스나 백스테이지 같은 뮤직비디오 까페에 가서 원하는 뮤직비디오를 신청해야만 볼 수 있었고, 그나마 모든 뮤지션의 뮤직비디오가 있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하이텔 모 소모임에서 '피쉬만즈'의 상영회를 한다고 했다. 당연히 쾌재를 외치며 상영회장으로 달려갔다. '피쉬만즈'의 상영회는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피쉬만즈도 피쉬만즈지만 상영회에서 피쉬만즈 뮤직비디오와 함께 덤으로 틀었던 금시초문의 그룹 뮤직비디오를 보고 강렬한 필이 꽂힌 것이었다.

촌스러운 뮤직비디오였지만 그만큼이나 풋풋하고 아름다운 멜로디, 남자 둘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는데 포크 같지만 포크가 아닌, 마치 90년대에 재림한 비틀즈와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주변 사람에게 대체 저 그룹이 뭐냐 물었다. 잘 모르겠다고 하며 '코넬리우스'라는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코넬리우스'...이름은 들어봤다. 하지만 전혀 접해본 적 없는 뮤지션이었다. 집에 와서 뒤져보니 충격의 그룹은 '플립퍼즈 기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야마다 케이고의 원맨밴드 '코넬리우스'의 전신이 되는 밴드라 했다.

그러나 어떤 음반점을 가도 그들의 음반을 구할 수는 없었다. 그 당시 일본그룹은 정식발매는 물론 정식수입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그들의 음악을 다시 듣고 싶던 나는 상영회를 주최했던 이종현(donemany)님에게 메일을 보냈다. 플립퍼즈 기타의 음반을 너무나 구하고 싶은데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하고. 이종현님은 친절하게 답변을 보내왔다.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들고 '반창고'라는 음반점에 하나인가 있다며.

'반창고'...음반창고란 말인가!? 얼마나 절묘한 가게 이름인지! 일반 음반부터 국내에 수입되지 않은 희귀음반까지 중고로 팔고 사는 가게였다. 문제는 아직 가게가 정식 오픈 전이었기 때문에 간판도 없고 해서 찾는데 고생 좀 했다. 바로 우리집 건너편이었는데도 말이다.

도착한 순간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던 피지카토 화이브의 일본음반들이 수두룩하게 꽂혀있던 진풍경을. 그밖에 수입되지 않은 희귀음반들, 국내 정규발매판에는 없는 곡들이 수록된 음반들까지. 촌놈처럼 두리번 거리면서 플립퍼즈 기타를 찾았다. 그 때 구입한 음반이 바로 이 플립퍼즈 기타의 3집 '헤드박사의 세계탑'이다. 애석하게도 플립퍼즈 기타의 다른 음반은 없었다. 이후 이 중고음반점에서 얼마나 많은 음반들을 샀었던가...

당시 집이 신촌이라는 특성 덕분에 취미활동에 많은 혜택을 누렸던 것 같다. 향음악사, 퍼플레코드, 반창고, 마이도스 같은 좋은 음반점에 쉽게 놀러갈 수 있었고 공연이나 공연 뒷풀이, 클럽에서 열리는 파티가 새벽에 끝나도 문제 없었다. 걸어서 집에 갈 수 있었으니깐. (그러고보니 홍대 놀이터쪽에 있던 음반점 이름이 뭐였지. 거기서도 음반 많이 샀는데. DJ도 하시던가 했던 백발의 엄청 멋진 사장님이 있던...)

어쨌든 그렇게 힘들게 구입한 플립퍼즈 기타의 3번째 앨범은 독특했다.
인덱스는 다음과 같다.

flipper's guitar - Doctor Head's World Tower (헤드박사의 세계탑)

1. Dolphin Song
2. Groove Tube
3. Aquamarine
4. Going Zero
5. (Spending Bubble Hour In Your) Sleep Machine
6. Winnie-The-Pooh Mugcup Collection
7. The Quizmaster (나찰의 퀴즈마스터)
8. Blue Shinin' Quick Star (별의 너머에)
9. The World Tower (세계탑이여 영원히)

감미롭고 듣기 좋긴 했지만 싸이키델릭하기도 했고 아련한 느낌도 강했다. 처음 들었을 때엔 'Groove Tube'와 'Going Zero'가 귀에 쏙쏙 들어왔고 들으면 들을수록 첫번째 트랙인 'Dolphin Song'이 감칠 맛 났다. 그 아련한 느낌이 좋다. Winnie-The-Pooh Mugcup Collection이나 Blue Shinin' Quick Star 역시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들었다.

음악 스타일이 플립퍼즈 기타보다는 코넬리우스에 가까운 음반인지라 플립퍼즈 기타의 앨범 중에서는 가장 귀에 잘 안들어오는 음반이지만 다행인지 제일 처음 구입한 음반이었고 다른 음반은 구할 수 없었기에 듣고 듣고 또 들어 귀에 완전히 박혀버렸고 지금도 즐겨듣는 애청음반이 되었다.

1998년은 지금처럼 해외 구매대행 사이트가 일반화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간신히 일본 현지에서 음반을 배송해주는 사이트를 하나 알게 되었었다. 난생 처음의 구매대행이었다. 정말 힘들었다. 해당 사이트에는 플립퍼즈 기타의 음반이 없었지만 별도로 요청하여 플립퍼즈 기타의 모든 음반을 구입했다. 이후 오자와 켄지나 코넬리우스, 카히미 카리, 피지카토 화이브도 줄줄이 구입했다.
당시 힘들게 산 flipper's guitar의 음반들. 정규음반과 EP, 싱글즈, 라이브 등.

그리고 상영회에서 틀었던 플립퍼즈 기타의 뮤직비디오 'The Lost Pictures,Original Clips & CMs + Testament'도 구입했다. 플립퍼즈 기타의 1집, 2집, 3집 뮤직비디오가 모두 다 들어있는 알짜배기 뮤직비디오집이다. 이 역시 구입 후 얼마나 돌려봤었는지...
플립퍼즈 기타의 뮤직비디오를 시작으로 구매대행을 통해 엄청나게
비싸게 구입했던 코넬리우스, 카히미 카리, 피쉬만즈 뮤직비디오들.

플립퍼즈 기타는 내 90년대 말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그룹이다. 90년대 초반의 그룹이고 해체하여 각각 코넬리우스와 오자와 켄지가 됐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최고의 그룹이다. 일본의 비틀즈이자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일본 음악 역사에 서양음악 스타일이 대거 도입된 계기이자 시부야케이의 효시이다.

플립퍼즈 기타의 3집 헤드박사의 세계탑은 이렇게 힘들게 구했었고 그만큼 줄기차게 듣던 명반. 지금도 틈만 나면 계속 듣는 명반 중의 명반이다. 플립퍼즈 기타의 음반은 마이너 중의 마이너라서 점점 구하기 힘들어졌고 나중엔 희귀음반까지 되었었다. 하지만 시부야케이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졌고 플립퍼즈 기타가 재조명 받게 되었다. 그들이 당시 일본에 끼친 음악, 패션, 사진, 뮤직비디오 연출 등의 다양한 문화 효과와 '시부야케이'라는 명칭으로 일컬어 지는 일종의 흐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아는 사람만 알던 플립퍼즈 기타는 그렇게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공식적으로 재평가 받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2006년에 플립퍼즈 기타의 전 음반이 재판되게 된다. 그리고 2007년 2월에는 해피뮤직이란 곳을 통해 한국에도 정식으로 발매! 그야말로 이건 기적이었다. 마치 비틀즈나 서태지와 아이들이란 이름을 모두가 잊게 된 세상에서 그들의 음반이 시공을 초월하여 전면 재판된 기분이라면 내 기분을 이해할까? 그들의 존재를 이제서야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은 기쁘지만 반면 나만 알고 있던 엄청난 그룹이 일반대중도 알게 된 것이 아쉽기도 하고. (루시드폴이 메이저가 되었을 때에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플립퍼즈 기타의 음반. 살 수 있으면 반드시 사라! 이것은 기적의 음반이다. 최고의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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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스트로보 2009/03/24 00:32 #

    와 플리퍼스 기타 정말 너무너무 좋아해요. 저 같은 경우에는 21세기 들어와서 알게 되긴 했지만요. 해체 후에는 코넬리우스도 좋지만 오자와 켄지를 훨씬 더 좋아합니다. 근데 뭐 이 성격 나쁘신 분은 별로 열심히 활동을 하시거나 하시질 않으시는 듯 ^^;;
  • 플로렌스 2009/03/24 08:03 #

    저는 코넬리우스도 오자와 켄지도 좋아하지만...최근 둘의 행보는 너무 대중에게서 멀어졌다고 해야할까,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나머지 '음악을 위한 음악'을 하는 것 같아서요. 목소리도 예쁜 남자들이 보컬은 피하고, 멜로디 작곡력도 좋은 사람들이 비트나 악곡 구성에 더 신경쓰니...플립퍼즈 기타 때가 최고!
  • 알렉세이 2009/03/24 10:02 #

    헛. 왠지 옛날 필이 나요.ㅎㅎ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기도..-ㅂ-
    제 이글루스 오셨기에 답방차 왔습니다.ㅎ
  • 플로렌스 2009/03/24 10:36 #

    1991년이니 옛날 그룹 맞지요. 그렇다해도 더 이전의 느낌도 있지만. 남자 두 명으로 이루어진 기타팝 그룹이었습니다.
  • 2009/04/06 11:3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플로렌스 2009/04/06 12:50 #

    시티비트!! 맞아요. 거기.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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