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방황하는 고3들을 위하여 - 젤리가 퐁당 읽거나죽거나

젤리가 퐁당
(안해진 작, '작은 나무가 주는 희망' 출판)

자신이 원하는 책을 내고 싶지만 업계 상황과 잘 안맞을 때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방법은 자신이 직접 출판사를 차리고 원하는 책을 내면 된다. 언젠가부터 일인출판사가 많아졌다. 그 중 '작은 나무가 주는 희망', 통칭 '작희'라는 출판사는 십대들에게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만든 출판사이다. 그리고 그 출판사의 첫번째 책인 '젤리가 퐁당' 역시 십대들을 위한 책.

이 땅의 고3들에게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서도 희망만큼은 잃지 말라는 메세지가 담겨있다.

빨강머리 앤처럼 망상을 좋아하고 아무 생각 없는 고3 여학생이 단짝 친구와 희희덕 거리다가 동네에 생긴 수상한 집에서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를 알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 이야기에서 등장인물은 모두 주인공 입장에서 '별명'으로 불리운다.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연은우 : 주인공. 빨강머리 앤처럼 망상이 특기인 고3 여고생. 공부도 어중간하고 특기도 없다.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

연강은 : 주인공 오빠가 어디선가 만들어 온 엄마 없는 6살 남아. 오빠가 공부를 핑계로 방치하여 주인공이 육아 및 교육을 담당.

오숑 : 본명 백오동. 오동나무라고도 부름. 주인공의 절친한 친구.

마스터 : 본명 백하린. '골동품 마스터'라는 가게를 운영. 오숑의 삼촌으로 집을 나와 방랑. 신비한 분위기를 풍긴다. 25살.

백상아리 : 본명 백상아. 오숑의 이란성 쌍둥이 남동생. 학교에서 남들에게 남매인 것은 비밀. 뭐든지 잘하는 엄친아.

불여시 : 본명 연은미. 주인공 언니. 미용실에서 일한다. 자기 밖에 모르고 집안 일을 주인공에게만 맡긴다.

싸가지 : 본명 연은철. 주인공 오빠.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백수. 공부 핑계로 아들 육아와 교육을 막내 동생에게 맡기고 놀기만 함. 학창시절에 악명 높던 사고뭉치. 25살.

박애심 여사 : 주인공 엄마. 맞아들과 돈 벌어오는 딸만 편애, 주인공에게 집안일을 다 시키며 구박만 한다. 펀드에 미침.

박루머 : 본명 박동철. 배달부 일 하며 알게 된 것들을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님. 불여시를 좋아함.

쑥자 : 본명 이숙희. 주인공을 괜히 이유없이 괴롭히는 못된 년. 공부를 잘해 선생들에게 편애받음. 백상아를 좋아함.


주인공은 사람들에게만 별명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게도 별도의 이름을 붙인다. 이야기 속에서 이름을 붙이는 과정이 나오기 때문에 그 부분은 어렵지 않다. 책에 나오는 용어 중 일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고로링 : 주인공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악운의 마녀. 그냥 상황이 안좋거나 짜증날 때 사용하는 단어.

젤리 : 주인공 마음 속의 움직임을 묘사할 때 쓰는 매체.

고쓰리 : 고3

이 중 젤리는 책 제목인 '젤리가 퐁당'에서 말하는 그 젤리이다. 어떤 상황에서 주인공 심경의 변화나 마음 속의 움직임을 젤리에 비유한다. 흔들리고 뭉쳐지고 폭발하고 색이 변하기도 한다.

일인출판사의 첫번째 책이다보니 아무래도 아쉬운 점이 몇 눈에 들어온다.

첫번째는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 등장인물들의 첫 등장에서 해당 인물의 설명이 없는 것이 상황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읽다보면 어느정도 알게 되긴 하지만 이왕이면 등장인물의 첫 등장에서 간략한 설명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위에 간략하게 적은 등장인물의 묘사를 읽은 뒤 책을 읽으면 훨씬 쉽게 읽을 수 있을 듯.

둘째는 주인공이 상상을 할 때의 글 폰트. 주인공이 상상을 할 때의 묘사는 다른 폰트로 쓰여있는데 가독성이 좀 떨어진다. 괄호로 표기하거나 좀 더 가독성이 좋은 폰트를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끝으로 맞춤법과 문장 구조. 일부 맞춤법 틀린 것과 어색한 문장구조가 눈에 띄었다. 아마 일인출판사 특유의 열악한 환경구조상 퇴고 과정과 마무리에 무리가 있어 그랬을 듯 싶다.

이런 3가지 아쉬운 점을 제외하면 그럭저럭 재밌게 읽을만한 책이었다. 어설프게 번역한 외국 소설보다는 훨 나은 듯 싶다. 게다가 고전을 제외한 현대 소설은 워낙 안읽다보니 여러가지 자잘한 요소조차 참신하게 느껴졌다.

이야기의 전개는 십대들을 위해 쓴 책이라는 컨셉에 충실하다. 그렇다고 교훈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 비교적 크고 작은 사건들을 잔잔하게 다루고 있다.

이 땅의 고3이 학교에서 겪을 수 있는 문제와, 분위기가 안좋은 집안에서 벌어지는 편애, 부모와의 갈등, 남매간의 갈등. 대입시험은 다가오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도 찾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과 함께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마치 현실처럼 좋은 일이 일어나다가도 나쁜 일이 일어나고, 나쁜 일이 일어나다가도 좋은 일이 일어난다. 다만 결말이 조금 어중간한 면이 있다.

전형적으로 좋게 좋게 끝내나 싶었더니 갑자기 큰 사건이 터지고, 그래도 잘되겠지 싶었더니 불우하게 끝나 반전에 당혹스러워할 때 즈음, 조금은 뜬금없는 미적지근한 결말이 나오기도 한다. 해피엔딩이라고도 할 수 없고 배드엔딩이라고도 할 수 없다. 좀 어중간한 면이 있어 그냥 전형적으로 좋게 좋게 끝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굳이 그 상황에서 막판 불행을 끌어들였어야 할까. 아님 주인공의 현실 도피를 위한 희생양이었는지. 십대들을 위한 컨셉에서는 막판 불행은 불필요한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스토리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다른 사람들이 읽기엔 또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이 책 인세의 일부는 청소년 문화 지원 사업에 사용된다고 한다. 좋은 취지로 만든 출판사에 좋은 취지로 만든 책. 앞으로도 더욱 발전하여 이 나라의 암울한 십대들을 위한 좋은 책이 나와줬으면 한다.

덧글

  • 우누 2009/05/19 12:03 #

    표지가 무척 이쁩니다 //ㅅ//
  • 플로렌스 2009/05/19 13:55 #

    우누님 배경 그리는 것 봐도 장난아니던걸요. (^.^);
  • C문자 2009/05/19 15:09 #

    이 땅의 고3은 책을 읽지 않아서 희망을 가질 수도 없겠군요.
  • 플로렌스 2009/05/19 16:07 #

    정확히 말하면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지요. 논술과 영/수만 해야하니...
  • 뤼카넨이량 2009/05/20 13:34 #

    아아...확실히 제가 고3이던 몇년전만 해도 고3대 책을 읽는다는건 엄청난 여유와 잘난척 혹은 개념상실이었으니까요...=_=.....
  • 플로렌스 2009/05/20 13:37 #

    요즘엔 초등학생도, 중학생도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것 같더군요;; 교육제도가 점점 산으로 갑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Twitter

위드블로그 베스트 리뷰어

2011 이글루스 TOP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