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비트는 위대하다.
'칩튠(chiptune)'이라고 하는 음악 장르가 있다. 닌텐도의 8비트 게임기인 패밀리컴퓨터(통칭 패미콤)로 대표할 수 있는 1980년대 게임기의 내장음원 혹은 에뮬레이션을 통해 사운드를 만드는 음악장르를 말한다.
1980년대의 8비트 게임기는 만들 수 있는 소리의 질감이 정해져 있었다. 현실의 악기 소리를 결코 똑같이 흉내낼 수 없었고 대신 컴퓨터를 통해 만들어진 '조금 비슷한 소리'와 현실의 악기에는 존재하지 않는 특유의 소리로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노렸다.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 한계를 뛰어넘은 놀라운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들이 있었다.
그래픽 역시 마찬가지로 패미콤은 사용 가능한 색은 총 52색이었으며 그중에서도 동시에 25색 밖에 표현할 수 없었고 표시 화면도 256x240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제약 속에서 한계를 뛰어넘은 그래픽과 움직임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8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 8비트 게임기 패미콤은 극히 제약된 성능 속에서 한계를 뛰어넘는 최고의 그래픽과 최고의 음악으로 수많은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줬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 패미콤은 아득한 옛 추억이 되어버렸다. 실제 영상으로 착각할 만큼 뛰어난 그래픽의 3D 게임과 실제 악기와 같은 사운드가 재현가능한 게임기들이 범람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이미 엔딩 본 게임을 몇년에 걸쳐 계속 다시 플레이 할 만큼 게임이 재밌지 않다. 어른이 되었기 때문인 것도 있으리라.
가끔 에뮬레이터로 옛날 게임을 다시 하며 추억에 잠기곤 한다. 이제 극한의 상황에서 최고의 작품을 탄생시키던 8비트는 추억 속으로 영영 사라져 버렸다. (그랬다가 캡콤이 8비트 포멧으로 록맨9을 내줘서 전세계의 매니아들을 열광시키긴 했다.)
그런데 어느날 니코니코동화라고 하는 UCC 사이트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옛날 8비트 패미콤 그래픽과 사운드를 이용한 자작 동영상들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록맨2'의 영상과 와일리스테이지 음악에 가사를 입힌 '추억은 억천만(思い出は億千万)', '록맨2'의 영상에 록맨2의 내용을 가사로 담은 '에어맨을 이길 수 없어(エア-マンが倒せない)' 등이 유명했다.

전설의 게임 '록맨2'를 주제로 한
동인음반 '에어맨을 이길 수 없어'
동인음반 '에어맨을 이길 수 없어'
그리고 개인적으로 높게 평가했던 것은 록맨 그래픽과 8비트 패미콤 사운드를 이용해 てつくずおきば라는 동인이 만든 패러디 작품들이었다.
2006년에 방영하여 인기를 끌었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엔딩 'ハレ晴レユカイ'를 록맨으로 표현한 'ハレ晴レユカイ ROCKMAN Ver.', 그리고 2007년에 방영하여 인기를 끌었던 '러키☆스타'의 오프닝 'もってけ!セーラーふく'를 록맨으로 표현한 '가져가! 에너지캔(もってけ!エネルギ-缶)'. 애니메이션을 8비트 그래픽 영상으로, 양감 풍부한 원 사운드를 단순한 8비트의 음원으로 바꿔버린 이 놀라운 영상들을 얼마나 보고 또 봤는지 모른다.
이 록맨의 그래픽과 패미콤 사운드를 이용하여 만든 패러디 영상에는 8비트의 위대함이 담겨 있다. 원작 애니메이션의 그 복잡한 율동과 사운드를 극히 제한된 그래픽과 사운드로 재현한 것이 놀랍고도 신기하다. 여기서 하루히의 엔딩과 러키☆스타의 오프닝을 8비트 사운드로 만든 것. 이것을 '칩튠'이라고 한다.
사실 내가 '칩튠'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뿅뿅 거리는 8비트 전자오락기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누군가가 나에게 '그것을 칩튠이라고 부른다'라고 알려줬다.
'칩튠'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유튜브에 올라온 니코니코 히트작들과 각종 애니메이션 오프닝/엔딩에 사용된 8비트 사운드를 통해 그 장르는 이미 접하고 있었다.
'CODE-E'의 속편이었던 'Mission-E'의 엔딩곡 'Feel so Easy!'의 매화 달라지는 여러가지 버전 중 칩튠 버전이 있었으며 해당 곡을 부른 모모이 하루코는 아예 유명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칩튠으로 어레인지한 '패미송8BIT'라는 기획음반을 2종류나 냈었다.

모모이 하루코의 기획앨범 '패미송 8BIT'
'이누카밋(いぬかみっ)!'의 엔딩곡 '우정이야기(友情物語)' 역시 인트로에 칩튠적인 요소와 8비트 그래픽을 떠올리는 연출을 일부 사용했으며 스페셜로 마쵸버전까지 있어 많은 웃음을 줬다.
'마리아홀릭'의 엔딩 '너에게 가슴 두근(君に、胸キュン)' 역시 칩튠적인 사운드와 8비트 그래픽을 떠올리는 연출을 사용했다. 이 곡은 원래 류이치 사카모토가 몸담고 있던 테크노팝 그룹 YMO(YELLOW MAGIC ORCHESTRA) 의 곡 '君に、胸キュン'을 어레인지 한 버전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칩튠과의 궁합이 잘 맞는 느낌이다.

YMO의 류이치 사카모토는 세계적인 뮤지션으로도 유명.

마리아홀릭의 엔딩 싱글 '君に、胸キュン'
YMO의 싱글을 그대로 패러디 하고 있다.
YMO의 싱글을 그대로 패러디 하고 있다.
한국 온라인게임 '던전앤파이터'가 일본에서 '아라드전기(アラド戰記)'란 이름으로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의 엔딩곡 또한 예술! 칩튠의 선두주자 YMCK가 담당한 '果てしない世界'이다. 영상 또한 언제나의 YMCK와 마찬가지로 8비트 도트 그림으로 만들어서 정감이 넘치고 귀엽다.
YMCK는 2003년 5월에 결성한 3인조 밴드로 대놓고 '칩튠'을 내세운 칩튠 전문 밴드다. 통상 시부야케이 그룹 중 하나로 묶여 알려져 있는데 재즈팝적 요소와 위스퍼보컬에 칩튠의 테크닉을 내세운 재미있는 그룹이다. 이들의 1~3집이 전부 국내에 정식 발매되어 구입하거나 듣는 것이 어렵지 않다. 코즈니 등을 통해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만큼 칩튠은 우리 곁에 밀접하게 와있다.

YMCK의 'FAMILY MUSIC'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에서 처음으로 칩튠이 사용된 것은 2006년 9월, 굉장히 오랫만에 발매된 공일오비의 7집이다. 요조가 보컬을 담당한 첫번째 트랙 '처음만 힘들지'는 뿅뿅 거리는 8비트 사운드와 요조의 귀여운 목소리, 귀여운 가사가 잘 어울리는 곡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칩튠'이라 하지 않고 '나노뮤직'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고 한다.

한국 가요계 최초로 칩튠을 사용한
공일오비의 7집 'Lucky 7'
공일오비의 7집 'Lucky 7'
정식으로 KPOP에서 칩튠이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7월에 나온 서태지의 싱글

락에 칩튠을 접목시킨 시도로 화제가 된
서태지 8th Atomos Part.MOAI
서태지 8th Atomos Part.MOAI
칩튠은 일렉트로니카의 서브 장르로 보는 편인데, 요즘의 화려한 음악에 비해 심플하고 단순한 8비트 사운드이다보니 가볍게 보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부족한 음원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풍부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그 놀라움을 어찌 알까. 악기 구성과 사운드가 화려하다고 무조건 좋은 음악이고, 단순하다고 싸구려 음악이 아니다. 8비트에는 단순함의 매력, 생략과 응용의 미학이 담겨있다. B급 음악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역사가 깊고, 테크닉이 절묘하다. '복고정신'이 담겨있으며 짙은 노스텔지어가 묻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8비트 음악 '칩튠'을 너무나 좋아한다.





덧글
이녀석은 정말로 협력할 생각이 있는 건가
http://www.youtube.com/watch?v=u4D25DTON-Y
클리어할 때까지 잠들 수 없어
http://www.youtube.com/watch?v=EG_GnjntufY
라는 수작들을 만들었는데,왜인지 이 두가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군요.퀄리티로는 언급하신 작품들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보는데.
그 시절에는 정말 한정된 그래픽과 한정된 사운드만 가지고도
'예술 작품'이라는 칭호가 부끄럽지 않은 게임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제약이 거의 없다보니 여기도 저기도 과잉 투성이라...
뭐 꼭 게임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겠지만요. ^^
적절한 비유입니다. (^.^)
전 8bit 음원도 좋지만 16bit 게임기나 또는 미디소스 쓰는 것 이라던가
음원이 참 독특하게 귀를 자극해서 맨날 그런거만 듣네요.
과연 유익한 블로그!
아우 'ㅂ' 전 어쩔 수 없는 서빠인가봐요 ;;;;
nullsleep도 이 쪽에선 괜찮더라고요.
참, 이 쪽 가시면 nullsleep 및 다른 뮤지션들의 노래도 구하실 수 있습니다 ㅋ
전자음악을 하는 밴드는 아니지만...... 앨범도 두장냈고 아마존에서 구입도 가능합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WTXkf3Z-QKQ
록맨3 음악 라이브인데, 나름 팬들도 많습니다. 이 것보다 큰 규모로 라이브도 하는 것 같아요.
국민(!)학교 2학년때 친구네 집에서 접한 드래곤퀘스트2 시작할 때 성(城)의 음악이 제 게임음악 Life의 시작이 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후 근 20년간 PSG/FM 음원으로 된 게임음악을 들어온 저로써, 부족한 음원에 녹아있는 작곡자의 혼을 느끼는 것을 좋아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2002년 근처에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발달해가던 시기, 개인 홈페이지 등에서 미디음원의 특정 악기부분을 살짝 손 보면 PSG 음과 비슷한 소리가 나는 것에 착안하여 일본쪽에서 상당히 많은 음악들이 만들어졌던 기억이 나네요.
문제는 내장 사운드카드 써서 미디를 에뮬레이션해야 했던 시스템에서는 원래 의도했던 음이 안나오는 바람에 금새 식어버리긴 했지만요. :)
요즘에야, 특히 YMCK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공개한 VSTi를 이용해서 MP3로 녹음해버리면 그만인 세상이 되었군요.
오랫만에 달아보는 버닝 댓글이었습니다 :)
p.s -
아... 여담입니다만 닌텐도에서 만든 DS용 리듬게임소프트, 대합주 밴드브라더스에서 보면 이런 칩튠 풍의 악기가 있죠. 패미콤이라고... (먼산)
이 음원을 활용해서 동키콩이라던가 옛 패미콤 게임들이 BGM을 메들리한
곡도 있었고...
2009/05/20 11:40 #
비공개 덧글입니다.내가 스파를 할 떄 단을 쓰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 으하하
http://www.bannister.org/software/ao.htm
http://emusic.egloos.com/2723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