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의 추억 뮤직머신

"서울을 떠나는 기차를 타고 들판을 너머 산 속 계곡따라~" 1989년인가 1990년인가 TV에서 들었던 CF송이었다. 곡명은 '여행스케치'. 부른 그룹도 '여행스케치'였다. 1989년 말에 정식 1집을 발표한 여행스케치는 '별이 진다네'로 그 명성을 날렸고 지금도 '별이 진다네'는 라디오 단골 신청곡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것이 여행스케치에 대한 첫번째 기억이다.

두번째 기억은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에 빠져있던 나에게 학원 친구놈이 여행스케치 3집 '세가지 소원'을 빌려줬다. 음반 중간중간 나레이션이 들어가 있는데 요즘 말로 손발이 오글오글했다. 하지만 노래들은 꽤 괜찮아서 한동안 즐겨들었다.

세번째 기억은 1994년. 하이텔에서 알게 된 친구가 있었는데 노래방을 가면 여행스케치 4집의 '산다는게 다 그런게 아니겠니'를 즐겨 불렀다. 당시 가요에 꽤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괜찮다 싶은 가수나 그룹이 있으면 꼬박 카세트테입을 샀었다. 당시 여행스케치 1집부터 4집, 동요집까지 전부 구입했다.

이후부터 여행스케치 음반을 꼬박 샀다. 1997년에 나온 6집은 여행스케치 음반 중에서 처음으로 산 CD 매체였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열리는 콘서트에도 가고 그랬었다. 비록 지금은 남성 듀오 그룹으로 바뀌어 여행스케치 특유의 '혼성 보컬 그룹'의 매력은 없어져버렸고, 대중들에게서 잊혀져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행스케치'란 이름은 내 추억과 함께 하고 있다.
1집 여행스케치 (1989)
여행스케치 대망의 1집. 1번 트랙 '별이 진다네'가 대박을 쳐서 여행스케치의 명성을 널리 알렸다. 한국 포크계에 길이 남을 좋은 곡이다. 그룹이름이자 앨범 타이틀인 마지막 트랙 '여행스케치' 역시 듣기 좋은 곡.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TV CF음악으로 사용되었는데 정작 제품은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광고였었지...전 곡에 어딘가에 여행을 가서 녹음한 새 소리, 개구리 소리, 개짖는 소리, 귀뚜라미 소리 등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특징. 그야말로 '여행스케치'란 그룹명에 걸맞는 독특한 녹음방식이었다. 다만 첫곡과 마지막곡을 빼면 나머지 곡들은 그다지 귀에 들어오지 않는 편.

2집 추억여행 - 새벽에서 꿈까지 (1990)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앨범. 뒷면을 보면 전 곡의 제목이 연결되며 긴 문장이 만들어진다. 물론 중간중간 추가되는 문구가 다량 있기는 하지만 참신한 시도가 재밌다. 보사노바 느낌이 살짝 나는 쓸쓸한 발라드넘버 '이 세상 속에서'와 파도소리와 앙증맞은 여자후배와의 대화가 독특한 '막내의 첫느낌'을 가장 좋아했는데 다른 곡들도 전부 최고. 여행스케치의 주제가인 '여행스케치'가 '그녀석들과 여행'이란 이름으로 가사 일부와 편곡을 바꿔 수록되었다. '이 세상 속에서'는 이후 '라일락 향기 날리던'이란 제목으로 다시 알려졌다.
3집 세가지 소원 (1992)
처음으로 들어본 여행스케치 정규앨범. 당시 녹음해서 듣다가 결국 음반을 샀다. '옛 친구에게', '난치병', '국민학교 동창회 가던 날'을 특히나 좋아했다. 나머지 곡들도 전부 듣기 좋다. 다채로운 종류의 곡들이 수록되어있으며 멜로디도 대중성이 많아 여행스케치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도 듣기 좋다. 타이틀인 '세가지 소원'에 맞춰 앨범 트랙 중간중간에 '소원 하나', '소원 둘', '소원 셋' 이런 제목으로 소원을 말하는 나레이션이 들어가는데 조금 닭살돋지만 역시 색다른 시도. 마지막 트랙으로는 녹음 중 생긴 NG를 모아놓은 '실수모음'까지 있다.
동요집 - 오래된 이야기 (1994)
음악을 좀 듣기 시작하며 동요는 유치한 것으로 치부하며 등한시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여행스케치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중 이 동요집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 많아 속는 셈치고 구입해봤었는데 이럴수가. 동요를 예술의 경지로 표현한 앨범이 바로 이 '오래된 이야기'였다. 첫번째 트랙에서 '학교종'을 아카펠라로 멋지게 부르더니 '어머님 은혜', '오빠 생각', '반달', '등대지기', '섬집아이' 등을 감성넘치게, 멋들어지게 부른다. 특히나 여행스케치가 부른 '등대지기'는 최고. 이 음반에서 대중에게 그나마 알려진 것은 영어로 부른 '태권V' 주제가였다. 영어만 아니었으면 더 좋았으련만.
4집 다 큰 애들 이야기 (1994)
4집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명지대 백마가요제에서 결성되어 1989년에 데뷔한 여행스케치가 이제는 더이상 학생도 아니고 나이들어가는 성인의 시점. 그런 것을 노래한 곡들이 메인이다. 타이틀인 '산다는 건 다 그런게 아니겠니'와 '서른을 바라보며'가 그런 곡인데 둘 다 굉장히 좋아하는 곡. 재미있는 것은 똑같은 곡이지만 어렸을 때 들었을 때와 나이들어서 들었을 때 그 느낌이 또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20대 후반이라면 노래들이 심장에 직접적으로 와닿을 것이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하고, 나는 나이를 먹어가지만 해낸 것은 없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게 적극 추천하는 앨범이다.
여행스케치 베스트 (1996)
여행스케치는 4집 이후 기획사를 옮기게 되었는데, 기존 기획사에서 여행스케치 측에 허가도 받지 않고 무단으로 만들어낸 여행스케치 베스트 앨범. 여행스케치 앨범 중에서 대중들에게 알려진 곡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악보도 들어있는데 문제는 이 악보가 기획사에서 적당히 만들어낸 엉터리라는 것. 이런 것들 때문에 여행스케치 멤버들이 분개하며 공연 때마다 이 음반은 사지말라고 이야기했었다. 기존 여행스케치 앨범은 전부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구입할 필요가 없던 음반.
5집 남준봉 (1996)
멤버 중 가장 가창력이 좋았다는 남준봉을 메인보컬로 전면에 내세우고, 나머지 멤버는 코러스로 돌린 독특한 앨범. 당시 여행스케치는 각각 돌아가며 솔로앨범을 낼 계획을 세웠다고 하지만 이 앨범의 실패로 인해 수포로 돌아간 모양. 곡은 재즈와 소울 계열. 좀 끈적끈적한 곡들이 많다. 애석하지만 여행스케치 앨범 중에서 가장 별로였던 음반. 역시 여행스케치는 혼성보컬이래야 하고 왁자지껄한 느낌이 나야 좋다.
6집 처음 타본 타임머신 (1997)
여행스케치 5집에서 실망하고 여행스케치에 대한 기대가 낮아질 무렵, 이전 기획사에서 멋대로 베스트 앨범을 만든 것에 대한 대항 겸 여행스케치가 직접 만든 베스트 앨범. 하지만 기존 앨범의 히트넘버를 짜집기한 것이 아니라 전곡을 어레인지하여 다시 불렀다. 기존 곡과 같지만 세련미 만점. 예전 버전들도 좋았지만 다시 부르는 명곡들도 좋다. 2집과 함께 가장 즐겨듣는 앨범이다. 여행스케치의 대표곡들이 모여있으므로 '여행스케치'란 그룹을 전반적으로 느껴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음반.
7집 향수 (1998)
나쁘진 않은데 그렇게 좋은 곡도 없다. 멤버들도 바뀌었다. 뭔가 이질적인 느낌. 여러가지로 미묘한 앨범이었다.
8집 Love Story (2000)
7집에서 실망했는데 8집에서 다시 부활! 좋은 곡들이 꽤 많다. 첫번째 트랙이자 타이틀인 '왠지 느낌이 좋아'와 마찬가지로 전 곡의 느낌이 좋다. 오랫만에 여행스케치답다고 느꼈던 앨범.
라이브 베스트 - 소풍 (2001)
여행스케치의 라이브 앨범. 2CD로 구성되어 있다. 여행스케치의 대표적인 곡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베스트 앨범이라고 해도 무방. 여행스케치의 라이브 분위기를 대강 느낄 수 있다. 좋은 곡들 가득하고 여행스케치 라이브 느낌을 소리로나마 만끽할 수 있는 앨범.
9집 달팽이와 해바라기 (2002)
집에 CD가 있는데 케이스만 있다. CD는 어디에...얼핏 들어보긴 했는데 제대로 된 감상은 무리.
The Best of The Best (2003)
여행스케치의 정식 베스트 앨범. 옛날에 나왔던 엉터리 베스트 앨범과는 달리 여행스케치로부터 공인을 받은 정식 베스트 앨범이다. 여행스케치를 처음 듣는다면 6집 '처음 타본 타임머신'과 함께 추천할만한 앨범이다. 2003년까지의 앨범 중 뽑았기 때문에 트랙수도 많아 2CD로 구성되어 있다.

아쉽게도 여행스케치는 돈 문제 때문에 해체해버리고 말았다. 그룹의 머릿수가 많으면 역시 먹고 살기 힘들었던 것일까. 여행스케치의 작곡을 담당하는 핵심멤버인 조병석, 남준봉 둘만 남아 '남성 듀오 그룹'으로 바뀌어서 '여행스케치'의 명맥은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다시는 여행스케치 특유의 혼성 아카펠라나 돌림노래 창법 등은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다른 그룹들과는 달리 해체가 좀 안좋게 되어버렸지만 남는 것은 결국 음악 뿐. 아직도 그들이 순수하던 시절 냈던 수많은 음악들은 내 어린시절, 청소년기, 대학시절의 추억과 함께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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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OmegaSDM 2010/09/01 14:08 #

    여행갈 때 들으면 좋을 듯.
  • 플로렌스 2010/09/01 15:50 #

    딱 좋지요.
  • 썰린옹 2010/09/01 23:39 #

    동요집 오래된 이야기는 지금 들어도 참 좋더군요.
    옛날 중학교 때 친척형집에서 들었는데 동요가 왜이리 좋아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ㅎ
  • 플로렌스 2010/09/02 09:13 #

    저도 동요가 이렇게 좋을 수 있나 하고 깜짝 놀랐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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