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주화운동과 주먹밥 - 오월애(2011) 영화감상

오월애 (2011.5.12 개봉)
김태일 감독의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1980년 5월.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북괴남침설'을 만든 뒤 그걸 빌미로 군대를 동원하여 서울을 침공, 국회를 해산시키고 정권을 장악했다. 김대중, 김종필, 김영삼 등 정치인 및 교수 등 정치인, 지식인들을 체포/감금하고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 각대학에 휴교령을 내린 뒤 군부대로 점거했으며 군부독재를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는 역시 군대를 동원하여 무차별 폭력 진압을 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 투입된 제7공수여단은 일반 시민에 대한 검문검색과 무차별 폭력을 행하였고 결국 곤봉과 칼로 학생, 시민 가릴 것 없이 무차별 폭력이 자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사망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1980년 5월 19일, 계엄군의 무차별 폭력/살상 때문에 대학생 중심 시위에서 일반 시민 및 고등학생까지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가 확대되기 시작. 계엄군은 눈에 보이는 사람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닥치는대로 구타한 뒤 옷을 벗기고 체포했다.

1980년 5월 20일. 광주역 앞에서 시위대를 향한 발포 시작. 21일에는 시위대를 향한 무차별 발포 및 빌딩에서의 조준사격으로 시민들에 대한 대량학살이 전개되었다. 결국 시민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예비군 무기고에서 총을 꺼내 무장, 시민군이 결성되었다. 이후 계엄군은 광주의 통신망을 차단 후 외곽을 포위, 지나가는 버스의 시민들이나 놀이터의 어린이, 여자 가릴 것 없이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진압작전이 시작. 전라남도 도청을 점거하고 있던 시민들을 무차별 사격으로 사살을 시작했다. 손들고 나오는 사람, 항복하는 사람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쏴서 사살하고 쓰러져서 살려달라는 시민 하나하나까지 확인사살을 했다. 사살되지 않고 체포된 사람들은 이후 수개월에 걸친 고문으로 장애인이 되었고 이후 감시받는 생활로 정상적인 삶은 살지 못하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광주민주화운동의 대략적인 전개 방향이다. 외신기자들이 촬영한 동영상과 사진, 전남일보 기자가 촬영한 사진과 증언들로 당시의 참혹한 상황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에서 이 사건은 '광주사태'라 명명하며 폭도들이 일으킨 사건이라고 꾸미고 일반 시민 사상자는 '0명'이라고 발표해버렸다.

세월이 흘러 1995년, 김영삼 전대통령은 '역사 바로세우기'를 선언 후 1996년, 전두환은 반란죄, 내란죄, 수래죄로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그러나 1997년에 김영삼은 국민대화합을 명분으로 전두환 및 관련자를 모두 특별사면하여 구속 2년만에 출옥, 전두환을 비롯 관계자 모두 현재 잘먹고 잘살고 있다. 다만 당시 사건의 진상이 밝혀져 국민들의 인식이 전환될 수 있게 되었다.

2008년, 이명박이 대통령 당선되고 그는 전두환을 찾아가 큰절을 올렸다.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는다며 과거로의 회귀를 내세웠다. 전두환이 그랬던 것처럼 한나라당에 반대하면 무조건 '좌파'나 '빨갱이'로 몰아붙였고, 반대 시위에 대해서는 전투경찰을 동원해 무자비한 폭력진압을 시도했다. 80년대 광주와 마찬가지로 역시 누가 시위대고 누가 시민인지 구분할 것 없이 무차별 구타 및 체포가 자행되었으며 어떤 여성은 군홧발에 머리가 짓밟히고, 지나가던 일본인 관광객이 전경에게 구타당하여 갈비뼈가 박살나고 영문도 모른채 체포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자칭 '보수단체'인 폭력조직들은 국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으며 각종 폭력행위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경제는 붕괴되고 물가는 상승, 사회분위기는 흉흉해졌다.

5.18 묘지를 방문한 이명박이나 한나라당 안상수는 묘비의 상석을 짓밟고 올라서서 논란을 일으켰고, 이명박은 5.18 민주항쟁/민주화운동을 항상 '5.18 사태'라고 부르고 있다. 2009년에는 5.18 공식추모곡이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빼더니 2010년에는 아예 국가보훈처에서 공식으로 그것을 없애버렸다. 대신 '방아타령'을 넣으려하다가 논란이 일자 '마른 잎 다시 살아나'로 변경했다. 5.18에 대한 대통령 기념사를 없애버리고 대신 대독하는 총리의 기념사로 격하시켰다. 한나라당 정운찬은 기념식장에 화려한 장식의 축하용 화환을 보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5.18의 상징이었던 구 전남도청을 철거하고 '아시아문화전당'을 짓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철거에 찬성하는 단체와 반대하는 단체가 충돌을 일으키고, 광주 내부에서도 갈등은 고조되고 만다. '5.18 구속부상자회'라는 단체는(부상자치고는 다들 너무 젊고 건장한데다가 어째서인지 깍두기 머리지만...자칭 고엽제전우회랑 같은 부류?) 전담도청 철거에 앞장서고 있고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어쩌다가 이 나라는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이 영화는 좀 다른 관점에서 5.18을 다뤄보고자 하는 기획이 보였다. 5.18 당시의 상황보다는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을 다루고 있는데, 광주를 돌아다니며 과거 5.18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방식으로 다큐멘터리는 진행된다. 5.18 시민군 출신, 계엄군 소대장, 시민군은 아니었지만 시민군을 돕던 당시 시민들 등등.

인터뷰 대상 중에는 시민군을 도왔던 당시 아줌마나 여고생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당시에 굶으면서 고생하는 시민군들을 위해 있는 돈 없는 돈을 모아 쌀을 사서 주먹밥을 만들어줬고, 취사지원에 앞장섰었다. 그들에게 5.18은 영영 잊을 수 없는 상처이고 다시 한번 떠올리며 인터뷰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그런 과거이다. 죽어간 친구, 가족을 위해, 전두환의 독재에 맞서기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정의를 위해 총을 들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발벗고 나섰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렇게 광주 주먹밥은 상징적인 의미로 남아있다.

죽음을 각오하고 도청 밖으로 여고생들을 내보냈던 시민군들. 그때 도청에 남아있던 오빠, 아저씨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의 사망 기록을 확인하고 지금은 아줌마가 된 당시 여고생은 당시를 떠올리며 눈물을 터뜨린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광주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밥을 짓고, 갖다주고 했었던 여자들. 그들은 현재 국가유공자도 아니고, 시장에서 채소나 과일을 파는 가난한 아줌마들, 혹은 유치원 교사, 누군가의 아내일 뿐이다. 잊혀지고 있지만 마음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그들의 상처. 그런 좀 소외된 당시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또다른 경험, 또다른 시각의 5.18을 들려준다.

그리고 현재의 광주. 전남도청 철거를 중심으로 같은 광주시민끼리 패가 갈려 의견이 분분하다. 이명박 정부와 결탁된 사리사욕에 눈먼 자들,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수상쩍은 5.18 단체들, 그리고 기존의 5.18 유족들 및 진짜 시민군 단체와의 충돌. 광주시민은 말한다. '누군가 우리들을 이간질 시키고 있다'하고. 30년 밖에 안됐는데 간신히 누명을 벗고 진실이 밝혀진 상황에서 다시금 정보는 조작되고 은폐되기 시작한다.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다시 10여년 전,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도둑도 쉬고 강도도 쉬었다'고 말하는 당시의 시민. 그렇게 자정작용이 강하던 광주는 현재 반토막이 나서 혼란의 도가니이다.

기존의 전형적인 5.18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시각으로 좀 소외된 사람들, 시민군을 주먹밥과 취사지원으로 도왔던 아줌마나 여고생의 인터뷰를 비롯 현재의 광주를 보여주는 식으로 다큐멘터리는 진행되는데, 나레이션이 전문가가 한 것이 아니라 조연출이 직접 했기 때문에 많이 어색하고 딱딱한 느낌이다. 연출도 그렇게 매끄럽지는 않고, 인터뷰 중심이긴 한데 입담 좋은 아줌마(중국집 사장 부인) 덕분에 웃음을 주기도 하는 반면 전체적으로 지루한 부분도 있다. 러닝타임이 긴 것도 그 이유중 하나이긴 한데, 아무래도 방송국에서 만든 전문 다큐멘터리에 비해 예산도 부족하고 기술도 부족하여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나오는 길, 마음이 무거웠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힘들게 살고 있다. 불구이거나, 가난하게 살거나. 혹은 자살하거나. 가해자는 통장엔 20만원이지만 대한민국 전국에 땅을 갖고 있고 수많은 대기업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대대손손 최고의 부자로 살만큼의 재산을 보유한채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 또한 현직 대통령의 절도 받고, TV 등에서 '요즘 대학생들이 나 무서운줄 모르네. 당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따위의 말을 하거나, 광주민주화운동을 여전히 폭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부조리한 세상,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영화 '오월애'는 '주먹밥 콘서트'와 맥락을 같이하여 관람객들에게 주먹밥을 무료 증정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다만 옆에 모금함이 있다보니 부담스러워서 다들 안먹었는데, 시사회 시작할 때 다들 먹으라는 말에 나올 때에는 다들 집어갔다. 모금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티켓부스 건너편의 주먹밥 부스. 왼쪽엔 모금함이 있다. 주먹밥은 무료, 모금은 자율.


광주민주화운동의 또다른 상처를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싶다면, 5.18로 보는 현재의 광주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면 영화를 보기를 추천한다. 재미로 보기보다는 사고의 폭을 넓히는 차원에서 볼만한 다큐멘터리이다. 보고서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떠오르긴 하지만 도무지 글로 깔끔하게 정리가 되질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보고 여러가지 생각을 해봤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일 뿐이다.

주먹밥은 참치, 검은깨, 소고기 총 3종류.

(2011.5.4 20:00 씨네코드선재 관람)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덧글

  • draco21 2011/05/06 00:12 #

    해마다 그날이 와도 목에 힘주고 사는 저 악마들 머리통에 천벌 떨어질 날이 언제인지는 참.... 알 수 없습니다. ... 좋은 영화 보고 오셨군요.
  • 플로렌스 2011/05/06 12:25 #

    악마가 저렇게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겠지요.
  • 가면대공 2011/05/06 00:57 #

    이 글을 다 읽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음. 잘 읽었습니다.
  • 플로렌스 2011/05/06 12:25 #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글...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알트아이젠 2011/05/06 08:53 #

    26년(당시 발표제목은 29년이었나...)의 영화화가 되지 못한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때 메인 캐스팅까지 다 나온 상태였기에 아쉬움이 더 컸죠. 가까운 시일내에 26년을 다시 읽어볼까해요.
  • 플로렌스 2011/05/06 12:27 #

    적어도 현 정권에서 영화화는 무리겠지요. 다음 대선에서 또 한나라당이 정권을 장악한다면 또 영화화는 불가능하겠고요. 정확히는 그 작품에 나오는 절대악과 추종자들이 한국에서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이상은...
  • 2013/05/18 01:4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5/18 08:1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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