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괴로웠던 80년대 유소년기 - 굿바이 보이 (2011) 영화감상

굿바이 보이 (2011.5 개봉)
노홍진 감독, 연준석/안내상/김소희/류현경/김동영 주연
1980년대,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비참했던 삶을 추억하며.


리뷰 특성상 스포일러 있음.
원래 제목은 '개같은 인생'. 1980년대에 유소년기를 보낸 노홍진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한다. '굿바이 보이'라고 바뀐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유소년기에게 안녕을 고하며 다시금 되씹는 이야기.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에 놈팽이에 빚쟁이. 4년마다 한번씩 민정당의 선거에 따라다니다가 구청장이 될 꿈만을 꾸고 있다. 민정당은 전두환이 군부독재하에서 창당하고 이후 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지게 된 정당이다. 전두환의 독재정권하였기 때문에 누구나 민정당원이 될 수 있었던 허울뿐인 정당이었다. 구제불능의 아버지지만 가끔 다정다감하고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보이긴 한다.

어머니는 공장에 다니며 두 남매와 아버지를 먹여살리기 위하여 철야로 일한다. 그러나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결국 술집에 나가서 몸을 팔기 시작한다. 원수같은 남편이지만 젊었을 때, 연애하던 시절의 낭만을 잊지 않고 차마 미워하지를 못한다.

누나는 반항심 가득한 여고생. 집안을 그지경으로 만든 원흉인 아빠를 극도로 싫어하며 자신과 상관없는 남의 일처럼 보려고 한다.

주인공은 어리버리하고 유약한 성격이지만 극도로 가난하고 힘든 삶 속에서 어떻게든 가계에 도움이 되고자 신문배달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좀 불량하지만 독립심 강한 창근을 만나 담배도 배우고, 강하게 사는 법을 익혀나간다.

집에 방 한칸 세를 내 사는 대학생 누나는 유일하게 아버지에게 강하게 대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대학생조차 어느날 최루탄이 터지고, 신문배달을 하던 주인공의 앞에서 전경에게 곤봉으로 머리를 구타당해 머리가 터지고 살해당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배달하는 신문에 나중에 '변사체로 발견'이라고 기사가 뜰 뿐이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절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실종 되었고 변사체로 발견되곤 했다. 그 끔찍한 사건을 주인공은 눈 앞에서 목격을 하게 된 것이다.

암울하다. 지긋지긋하다. 괴롭다. 힘들다. 죽고싶다. 미칠 것 같다...이 영화를 보면 떠오르는 말들이다. 그렇게 영화는 전체적으로 암울함으로 가득하다. 물론 영화 특성상 틈틈히 소소한 웃음을 주긴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 전체의 구질구질함이 개선되지는 않는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서일까. 이 영화는 지극하게 현실적이다. 주인공이 좋아하는 여자애는 절대로 주인공을 쳐다보질 않는다. 철저하게 무시할 뿐이다. 그 여자애는 결국 주인공의 친구가 된 창근과 사귀게 된다. 그러나 다수의 동네 불량배들 앞에서 기죽지 않고 저항하다 창근은 머리가 터져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리고 주인공이 좋아하는 여자는 그 불량배들에게 집단강간을 당한다. 그러나 불량배 두목은 아버지가 구청장이라 무혐의로 바로 풀려난 뒤 다시 동네에서 불량배짓을 하고 다닌다. 물론 이조차도 주인공이 소문으로 들은 것이기 때문에 주인공이면서 이야기의 주역이 되질 못하고 있다. 그 때문에 애초에 그 여자애랑 창근은 사귄 적도 없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저 이야기들이 사실이건 아니건 암울할 따름이다.

이 영화에 행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악이었던 어린 시절의 쓰디쓴 회상일 뿐이다. 아버지가 죽고, 주인공은 기술을 배우러 공고에 들어가고, 누나는 취직을 해서 돈을 벌고, 엄마는 더이상 일을 하지 않고 집에서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지긋지긋한 달동네를 떠나게 된다. 이삿짐 차량을 타고 떠나는 주인공을 자전거를 타고 미친듯이 쫓아오는 창근에게는 인사 대신에 욕을 한껏 외쳐준다. 결국 눈물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조금은 삶이 나아진 영화의 끝자락. 달동네를 떠나며 좀 더 나은 삶이 예상되지만 결국 영화는 그들의 행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영화이기 때문에, 112분이라는 러닝타임동안 비참할만큼 비참한 삶을 보여줬으면 끝에는 현재 그런 불행했던 과거조차도 여유로운 미소로 회상할 수 있는 현재의 주인공을 모습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주인공에게 감정이 이입해서 영화내내 답답한 가슴을 끌어안은 관객들에 대한 회답이라도 말이다. 리얼리티를 추구한다고는 하더래도 영화는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에서까지 지극히 현실에서 느낄 수 있던 고통을 겪고 싶지는 않고, 좀 더 '희망'이라는 것이 있었으면 한다. 영화를 다 본 뒤의 감상은 씁쓸함 뿐. 영 뒷맛이 개운치는 않았다.

결말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영화 자체는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다양한 영화나 연극, 드라마 등을 통해 어느정도 연기력을 검증받은 배우들이었기 때문에 연기는 흠잡을데 없이 훌륭했다. 촬영 기법 또한 상황에 맞게 그 느낌을 잘 묘사했고 사운드 또한 일품. 전체적인 연출이 훌륭했다.

특히 주인공이 듣기 싫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귀를 막았다 떼었다 하는 장면에서의 사운드 연출, 다가오는 열차를 향해 자살할 것 같은 어머니, 그리고 코앞을 스쳐지나가는 열차의 그 느낌, 쿵! 쿵! 소리가 나다가 최루탄이 퍽! 터진 뒤 연기속에서 도망치는 사람들과 뒤를 쫓는 방독면을 쓰고 곤봉으로 무장한 전경들의 모습. 그런 음향적인 연출과 장면적 연출이 꽤나 좋았던 것 같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암울하긴 했지만 그나마 좋았던 장면은 아버지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할 때 엄마가 그 노래를 따라하는 장면. 그러면서 그 둘의 젊은 시절을 보여주던 장면. 지긋지긋하고 구질구질한 가정이지만 그들 또한 젊었을 때엔 사랑했고, 그래서 결혼했으며 낭만이 있었다는 것. 그 장면이 좋았다. 인상깊은 음악은 역시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르던 이문세의 '소녀'. '나 항상 그대 곁에 머물겠어요 떠나지 않아요'란 가사가 구질구질한 삶을 이어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긋지긋한 연을 느끼게 해주면서도 귀에 빙빙 맴돈다. 구제불능의 인간이지만 자식들을 데리고 어린이공원에 가서 혼자 놀이기구를 타고 다함께 사진을 찍으려는 아버지의 철없는 모습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개같은 인생'이란 제목으로 상영되어 관객들의 호평을 얻었던 '굿바이 보이'. 드디어 6월 2일부터 전국 개봉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영화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뒷맛이 씁쓸한 이 느낌. 지금의 30대들...1980년대의 가난했던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하다면 한번쯤 봐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2011.5.23 20:00 서울아트시네마 관람)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덧글

  • draco21 2011/05/24 03:00 #

    '개같은인생'이 딱 맞을것 같은 내용이긴 한데...
    먼저 쓴 영화가 있으니 당연히 안된걸까요? ^^: 괜시리 최루탄 냄새 생각나서 우울해집니다. ^^:
  • 플로렌스 2011/05/24 13:45 #

    작년 개봉은 그 이름이었다는데...아무래도 전국 개봉용 영화 이름으론 좀 뭐하지요.
    하지만 내용이 그다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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