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1) 영화감상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1)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 앤디 서키스, 제임스 프랭코, 프리다 핀토 주연

1980년대, 명절 연휴 때 TV에서 방영한 '혹성탈출' 시리즈를 본 나는 바로 팬이 되어버렸다. 방영할 때마다 꼬박 봤고, 비디오로도 빌려보고, 보고 또 봤다. 심지어는 어디서 샀는지는 기억안나지만 '혹성탈출'의 코넬리우스 가면을 쓰고 다녔다.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닉네임을 '코넬리우스'로 사용했고 이 블로그에서도 한 때 '코넬리우스' 닉을 사용했다. (정확히는 flipper's guitar의 오야마다 케이고가 '혹성탈출'을 좋아하여 솔로 데뷔시 '코넬리우스'란 원맨밴드명을 사용한 것이 마음에 들어 2차로 영향을 받은 것이었지만)

2001년,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팀버튼 감독이 내가 좋아하는 혹성탈출의 리메이크판을 내놨다. 다만 팀버튼의 명성에 비해서는 지극히 평범한 작품이었으며 원작 혹성탈출 시리즈에 비해 깊이면에서 현저히 떨어지는 아쉬운 작품이었다. 밀레니엄 영화답게 기존 분장과는 다른 CG로 리터칭된 유인원들이 리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유일한 장점이었다.

그리고 2011년. 혹성탈출의 새로운 리메이크 영화가 개봉했다. 혹성탈출 시리즈 4탄에 해당하는 시저의 반란편을 기본으로 만든 영화인데, 기존의 것과는 모든 설정이 다른 일종의 리부트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팀버튼의 것과는 달리 원작의 메세지성과 깊이있는 철학을 제대로 재현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면서도 최신 CG 기술로 마치 실제 침팬치들이 연기하는 듯한 리얼함을 보여주고 내용면에서도 재미를 잃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최고라고 할 수 밖에.

원작 시리즈의 오마쥬가 되는 단어, 대사, 장면이 가득한데, 연구소에서 시저의 어미 침팬치를 Bright Eyes라고 부르는 것이 원래는혹성탈출1의 지라가 주인공을 부르는 명칭이라던지, 유인원 보호소의 침팬치명 코넬리아는 코넬리우스와 지라를 합친 이름이라던지, 이런식으로 원작 시리즈 캐릭터명을 합치거나 살짝 변형시킨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이 가득한 것 또한 재미있다. 원작에서 인간들이 유인원들에게 당하던 것을 역으로 인간이 유인원들에게 한다던지 하는 것도 재미있다.

영화 중간 TV에서 화성으로 떠나는 탐사선의 발사장면이 나오고, 나중에 신문에서 그 탐사선이 실종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되며 속편에서 혹성탈출1의 내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여지를 보여주는 것 또한 기대감을 충만시켜준다.

원작은 사람이 유인원으로 분장하고 나오기 때문에 아무래도 유인원 그 자체라기보단 유인원 모양의 외계인 같은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CG를 활용해 실제 유인원들이 움직이게 함에 따라 그 사실감은 어마어마하다. 침팬치가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갖게 되었을 때의 무서움. 인간보다 배는 강한 힘과 스피드를 지녔는데 지능까지 높고, 그런 것들이 조직적으로 행동한다면 그야말로 인간이 대적하기엔 버거운 괴물들이 될 것이다.

마치 실제 침팬치들에게 연기를 시키는 것 같은 경이로움이 영화에 가득. 처참한 파괴현장에서 위를 올려다봤을 때 가득한 침팬치들이나 하늘에서 나뭇잎의 비가 내려 올려다보니 어마어마한 양의 침팬치들의 이동 등, 역시 가장 경이로운 장면은 시저의 'No'. 원작에서 코넬리우스가 유인원이 인간들에게 처음으로 'No'라고 말하며 반란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는데 그것의 오마쥬를 너무나 완벽하게 재현하면서도, 원작에선 볼 수 없던 명장면으로 재탄생시켰다. 경이로운 장면이 나올 때마다 극장안은 사람들의 숨죽인 탄성으로 가득찼다. 특히 'No'라는 장면이 나올 때에는 순간 극장 안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의 정적, 곧이어 여기저기서 놀라움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마치 진짜 침팬치가 그러는 것을 본 것처럼 말이다.

영화의 힘은 놀랍다. 픽션임에도 마치 진짜를 보는 것 같은 관객들의 반응. 그것이 이번 혹성탈출의 가장 대단한 점이다. 원작은 시작부터 SF 분위기를 가득 풍겼지만 이번 혹성탈출은 그렇게 되기 이전의 이야기. 즉, 지금 당장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을 다뤘기 때문에 현실감이 상당하다. 지금도 치매연구는 진행되고 있고 침팬치를 이용한 임상실험 역시 실제로 있으니 말이다.

하고 픈 말이 많지만 이미 많은 분들이 충분히 내가 하고픈 얘기를 글로 남겼으니 좀 더 깊이있는 얘기는 다른 분들 글을 찾아보면 되겠고, 단지 내 감상을 적자면 '경이로운 현실감으로 가득한 영화'. 그것이 이번 혹성탈출에서 느낀 가장 큰 인상이다.

그러면서 원작의 메세지성을 간직하고, 처음엔 인간 주인공에게 몰입하여 영화를 보다가 점점 시저쪽으로 주인공이 옮겨가며 어느새 침팬치인 시저를 응원하고 있게 되어버린다. 말포이는 어디서나 그런 역할인 것 같아 재밌었고, 악역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모든 면에서 피해자인 이웃집 아저씨가 불쌍했다. 그러면서 웃기기도 하고. 자막이 올라갈 때 초반에 다음편을 암시하는 영상이 조금 나온다. 결국 인류는...속편도 꼭 제작되어 옛날 혹성탈출 1편을 봤을 때의 경이로움을 다시한번 느끼게 해줬으면 좋겠다.

원작 팬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명작.


(2011.8.28 16:00 신촌 메가박스 관람)

덧글

  • 잠본이 2011/08/31 01:17 #

    소박하면서도 경이로운 영화였지요.
  • 플로렌스 2011/08/31 09:15 #

    리얼함이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주더군요. 좋은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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