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쿠리코 언덕에서 (コクリコ坂から, 2011) 영화감상

코쿠리코 언덕에서 (コクリコ坂から, 2011)
미야자키 고로 감독, 지브리 스튜디오

미야자키 고로가 감독을 담당한 두번째 작품. '게도전기' 이래 많은 사람의 우려와는 달리 사람들의 평이 나쁘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생각보다' 재밌었다. 지브리라는 명성에 너무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평범하게 재밌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미야자키 고로의 게도전기를 떠올리며 기대치를 낮추면 더욱더 재밌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브리라느니, 미야자키 고로라느니, 게도전기라느니 이런 것 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순수하게 감상하면 '재밌다'.

원작은 80년대 만화라는데, 평을 보면 원작의 요소는 따오되 전혀 별개의 물건이 되어버린 듯 싶다. 그것도 좋은 쪽으로, 지브리답게 말이다.

이야기는 크게 두가지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는데, 오랜 전통의 학교 동아리 건물의 철거와 그것을 막기 위한 노력,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알고보니 친남매. 이 2가지 사건이 이야기가 진행되며 해결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1964년 10월에 열린 도쿄올림픽을 앞둔 일본. 그런 배경을 상당히 정감넘치게 그려내고 있다. 디지털이 아닌 손으로 일일히 그린 배경 속에는 1960년대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뭔가 그 시절의 아련함이 느껴질 정도의 따스함을 표현해내고있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전체가 대변혁을 꾀하는 1960년대. 그것과 맞물려 학교 역시 1920년대부터 내려오던 오래된 동아리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지으려 한다. 남자주인공 슌은 이를 지키기 위해 나선다. 마찬가지로 1920년대에 지어진 병원건물을 하숙집으로 운영해오며 살고 있는 여자주인공 메르(본명 우미). 한국전쟁에 물자수송선 일로 참여했다가 기뢰로 사망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무사귀환의 깃발을 아직까지도 아침마다 올리고 있다.

1920년대부터 내려오던 전톧과 추억을 변혁하는 1960년대에 맞춰 새롭게 가꾸며 지켜나가 미래로 갈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일단 이야기 전체의 메세지라 할 수 있겠다. 쉽게 말해 '온고지신(溫故之新)'.

또하나의 이야기인 주인공들간의 사랑. 극중에서도 이게 무슨 '막장드라마(원문: 安っぽいメロドラマ)'냐는 대사가 나와 주인공들의 비극과는 반대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준다. 출생의 비밀이나 불치병, 재벌2세가 반드시 나오는 한국 드라마의 3류적 전형성 때문일까. 영화 '써니'에서도 이것을 개그코드로 활용했는데,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개그 코드로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상황과 주인공들의 대사가 웃음을 준다.

'귀를 기울이며'나 '추억이 방울방울'과 같은 작품이 이미 있었기에 '지브리 스튜디오의 첫번째 사랑이야기'라는 캐치프라이즈는 좀 과장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작품과 심하게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니 넘어갈만하다.

작품의 볼거리 중 하나는 세세한 디테일. 위에서 말한대로 손으로 그린 1960년대의 배경은 그 시절을 살아본 적 없는 사람에게도 그 시절의 느낌이 느껴지게끔 세세한 디테일을 자랑한다. 1960년대의 목조건물들, 가정집, 시장, 항구의 풍경 등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안에 들어갔을 때, 각 방의 구조 등 그림의 세심한 정밀도도 뛰어나지만 그런 곳에서 어떤식으로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가의 그 상황을 보여주는 방식 또한 일품.

밥짓는 장면에서 성냥으로 가스불을 켜고, 쌀을 퍼내서 씻고, 마루 바닥을 열고 안에서 식재를 꺼내고...이런 세세한 장면 하나하나가 마치 그시절을 살지 않았어도, 그리고 그집에 직접 가보지 않고도 느낄 수 있는 현장감을 준다. '귀를 기울이면'에서도 나왔지만 언덕길을 자전거를 타고 올라갈 때 안장에서 일어서서 낑낑대는 모습이라던지 이런 묘사 또한 좋다.

또한 동아리 건물을 지키기 위한 남학생들의 집단행동, 국회를 연상시키는 회의, 청소도구로 무장한 여학생들의 등장, 수많은 학생들의 건물 대청소 등 이런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움직이는 왁자지껄함이 지브리스러워서 좋다.

1960년대를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배경음악으로 끝도 없이 옛날 노래가 흘러나온다. 다소 촌스러운 것도 있지만 멜로디가 강한 곡들도 많아 꽤 듣기 좋고 묘하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익히 잘 알려진 곡,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곡도 있다. 좋은 음악, 좋은 노래들이 많아 OST가 꽤나 들을만할 듯 싶다.

'지브리'의 명성이나 '미야자키 하야오'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보면 이것은 이것 나름대로 하나의 잘 만들어진 '지브리 애니메이션'이다. 적어도 작년에 개봉했던 '마루 밑 아리에티'보단 훨씬 재밌었으니까 말이다.

(2011.10.6 19:40 목동 CGV 감상)

덧글

  • 검투사 2011/10/07 12:58 #

    순수하게 감상해야 하는데... 우째 "아버지와 아들의 아름다운 합작" 운운한 어떤 무가지 기사(라고 하고서 보도자료 베낀 것이라 읽는...)가 계속 생각나서리... 0ㅅ0
  • 플로렌스 2011/10/07 14:42 #

    그냥 순수하게 볼만했습니다. (^.^);
  • 알트아이젠 2011/10/07 21:35 #

    주제는 많이 다르지만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이 생각날정도로 당시 모습을 잘 보여주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실보다 득이 많았다해도 막장드라마적요소를 배제했어도 충분히 재미있는데...하는 투정이 해보긴해도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이더군요.
  • 플로렌스 2011/10/07 22:21 #

    저는 친남매 이야기도 재밌게 봤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이기도 하니까요. 한국드라마 때문에 식상해서 그렇게 느껴지셨을지도...
  • 2011/10/07 22:4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플로렌스 2011/10/07 22:44 #

    헉 감사합니다; 밥을 두번이나 지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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