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씨 가문 3대에 걸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남자 삼대 교류사' 읽거나죽거나

남자 삼대 교류사 : 400년을 이어온 윤씨 가문의 정신을 말하다
(박유상 저, 메디치미디어)

정당인이자 언론인인 윤여준을 중심으로 한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이야기.


윤(尹)씨에는 몇종류가 있지만 대부분의 윤씨는 파평(坡平) 윤씨다. 해평(海平), 무송(茂松), 칠원(漆原) 윤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파평 윤씨의 일족이며 노성(魯城) 윤씨는 노성(논산)에서 살게 된 파평 윤씨 돈(暾)의 후손을 지칭한다고 한다.

이 책은 조선시대 소론 학자인 명재 윤증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윤증은 일찍이 벼슬의 뜻을 버리고 학문에 전념하였고, 문중 자손들의 교육에 힘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정신은 윤여준의 아버지였던 윤석오 선생으로 이어져 내려왔다고 한다. 윤석오 선생은 여성들을 생각하여 허례허식을 타파하고 근검절약과 이웃을 도왔으며 다양하고 폭넓은 독서로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해방정국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무관비서와 총무처 차관을 지냈으며 친일청산과 민중을 위한 조언을 아낌없이 했으나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채 공직에서 물러나 한학자이자 서예가로 살았다고 한다.

윤여준은 노성 윤씨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병약하였는데, 당시엔 약이 제대로 없어 고등학교까지 휴학하고 집에서 요양을 하며 보냈다고 한다. 그런 몸으로 자원입대를 하였고(일병 전역) 전역 후에는 신문기자를 했다고 한다. 당시 신문기자 급여는 너무 낮아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고 대부분의 신문기자는 뇌물을 받아서 그 돈으로 생활을 하였는데, 윤여준은 그것을 거부하여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 38살에 들어서 주일 대사관 공보관을 하게 되었다.

이후 전두환의 공보비서관, 노태우 시절 정무비서관, 김영삼 시절 환경부장관을 보냈다. 자신의 위치에서 가능한 한도내에서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일처리를 하고 싶었으나 시대의 특성상 그것이 잘 반영되질 않았고 결국 정치에 뜻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002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 전략가로 그 이름을 알린다. 범보수의 제갈량, 한나라당의 전략통, 대한민국의 장자방 등의 별명을 얻은자가 바로 윤여준이다.

재미있는 것은 윤여준은 중도보수, 개혁보수로, 언제나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것을 추구했다. 하지만 그가 몸담은 곳들은 자칭 보수일 뿐 민주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곳 뿐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아들들에게 합리적인 것과 민주적인 것을 이야기 한 결과, 그의 아들은 당시의 민주노동당을 지지했다고 한다.

또한 당시 병역비리 문제가 터지며 웬만한 사유로는 병역 면제 및 대체 복무가 불가능해져버렸고, 윤여준의 아들인 윤구 또한 박사학위 소지자로 연구소에서 대체 복무 연구원으로 일할 예정이었으나 그게 없어져버려 28살의 나이로 현역 입대를 하게 되어버렸다. 결국 병장 만기 전역을 하였고, 그것이 군대 다녀온 사람이 거의 없고 아들들을 전부 군 면제시킨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나름 자랑거리였던 모양이다.

윤여준은 제16대 한나라당 총선 기획위원장을 하고 2004년까지 제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후 한나라당을 나와 진보나 보수 가릴 것 없이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며 정치권에 여러가지 쓴소리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안철수 원장의 멘토로 그 이름을 다시 한번 알리기도 했다. (안철수는 윤여준이 자신의 300여명 멘토 중 하나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윤여준은 그 명성과 직위에 비해서는 돈이 많지는 않았는데,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정당과 직위에 있었음에도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고 공무원으로 받는 돈을 제외하고는 받지를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사실 한나라당은 부정부패의 대표적인 정당이다보니 윤여준의 집안에서 추구해온 삶과는 거리가 멀다. 서두에 나오는 윤증과 반대되는 송시열의 노론쪽이 오히려 한나라당에 가깝다. 국제정세를 고려하지 않고, 아무런 전략없는 무조건적인 친명배금정책은 지금 한나라당의 아무 생각없는 무조건적인 친미배북정책과 상통한다. 노론은 민생안정보다는 자신들의 권력을 중시했고 한나라당 역시 민생 안정보다는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중시한다.

그런데 윤증의 삶, 아버지인 윤석오 선생의 삶을 본받은 윤여준이 그것과는 정 반대인 한나라당 계통에서 계속 몸담고 살아왔음은 대체 무슨 기구함일까. 자신의 가르침에 따라 정작 자식들은 한나라당과는 반대되는 입장인데 말이다.


윤여준의 정치적 행보와는 상관없이 이 책은 '옳은 소리'만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정신이 아들에게 어떻게 내려왔는가, 그리고 그 아들은 자신의 아들에게 어떻게 그 정신을 물려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조건적인 주입식이 아닌, 명령이 아닌, 자식과 평행관계에서 마치 친구처럼, 먼저 자식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더 나은 선택을 하게끔 하는 것. 그것이 윤여준 집안의 부모와 자식간의 유대의 비결이라고 한다. 그 집안의 여자들은 자식들을 파파보이라고 부를 정도로 부자간의 사이가 좋다고 한다.

윤여준의 아들인 윤구는 고등학교 시절 '환단고기'를 탐닉하며 민족사관에 빠졌다고 한다. 학교에서 조직까지 만들어 난리를 치고 다녀 물의를 일으켰다고 하는데, 윤여준은 그에게 '그것은 잘못됐다' '하지마라'라고 말하는 대신 '어느 한쪽의 말만 듣지 말고 반대쪽의 말도 들어본 뒤 판단하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공부한 결과 환단고기류가 황당무계한 역사소설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만일 아버지가 무조건적으로 안된다고 했으면 반항심에 더욱 그쪽으로 막나갔을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책의 부제는 '윤씨 집안 400년의 정신을 말한다'인데, 윤여준의 집안을 중심으로 '물질이 아니라 정신을 남겨라'라는 것이 핵심이다. 사리사욕과 권력에 휩쓸리지 말고, 합리적이고 올바른 것, 민주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 그리고 그런 정신을 자식들에게 자연스럽게 물려줄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의 지속'에 관한 어느 인문학 관련 칼럼 이벤트에 쓴 글이 선정되어 그쪽에서 선물로 보내온 책이다. 내용이 역시 '부모와 자식'에 관한 내용이며, 윤씨 집안 400년의 정신에 대한 내용인 것이 절묘하다. 상품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담당이 적절히 골라서 책을 보내온 것 같은데, 일부러 나에게 맞춰 책을 보내준 것 같은 세심함에 놀라울 따름.

윤여준은 벌써 73세이고, 그 아들인 윤구와 윤찬은 40대 초반이다. 그들 역시 아버지가 되어있다. 윤구는 마이크로소프트 임원으로, 윤찬은 미국 변호사로 있다가 아버지와 함께 있고 싶어서 현재 한국에 있다고 한다. 윤찬 역시 한국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다고 한다. 아직 아버지가 살아계시지만 아버지가 그립다는 그들. 그들의 유대는 그 자식세대에도 이어질까.

덧글

  • 푸른미르 2012/01/04 09:08 #

    그렇고 보니. 미국에서 노숙자 한 분이 생각나네요.

    그분은 어쩌다가 노숙자가 된 데다 어린 딸을 부양해야 했는데
    배고프면서도 스스로 깔끔하게 정돈하고 구걸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딸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덕분인지.
    밥을 굶어도 스스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결국 명문대에 장학생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사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마음의 여유가 없는 시대에
    보통 사람이 자신의 집안에 스스로 정신을 세우기란 참으로 난망하기만 합니다.

    뭐.... 그만큼 최고의 가치가 있긴 합니다만.
  • 플로렌스 2012/01/04 09:52 #

    아이는 부모를 보고 배우니 실천이 중요하지요. 항상 모범이 되는 모습을...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Twitter

위드블로그 베스트 리뷰어

2011 이글루스 TOP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