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 폴 (Lucid Fall) 5집 - 아름다운 날들 (2011.12.20) 뮤직머신

루시드 폴 (Lucid Fall) 5집 - 아름다운 날들 (2011.12.20)

'음유시인', 이 별명이 이처럼 어울리는 뮤지션이 있을까. 기타를 치며 나긋나긋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마치 시를 낭송하듯이 부르는 노래. 그것은 분명 '음유시인'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음유시인 '루시드폴'의 5집이 발매되었다.

인덱스는 다음과 같다.

01. 외줄타기
02. 그리고 눈이 내린다
03. 어부가(漁父歌)
04. 어디인지 몰라요
05. 그 밤
06. 꿈꾸는 나무
07. 외로운 당신
08. 불
09. 노래의 불빛
10.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11. 여름의 꽃


이번 앨범은 좀 더 다채로운 세션이 눈에 띈다. 기본은 루시드폴식 포크지만 다양한 악기의 사용이 독특하다.

1번 트랙 '외줄타기'는 스틸기타 아르페지오 중심으로 구성된 잔잔하면서 감미로운 곡이다. 루시드폴 특유의 포크스러움이 물씬 묻어나오는 곡. 후반에는 피아노와 가벼운 반주가 덧붙여진다. 2번 트랙 '그리고 눈이 내린다'는 삼바풍의 곡. 그렇다고 브라질 삼바축제가 떠오르는 댄서블한 곡은 아니고 루시드폴 특유의 음악에 삼바적인 느낌을 덧붙인 정도. 키보드는 유희열, 기타는 롤러코스터 출신인 이상순이 담당했다고 한다.

3번 트랙 '어부가'는 꽤 취향의 음악. 따뜻한 느낌의 라틴음악 스타일이다. 보사노바와는 다른, 룸바나 차차차 같은 느낌인데 의도적으로 쿠반 볼레로 스타일로 만들었다고 한다. 라틴음악이라고는 하지만 토속적이진 않고 피아노와 현악기가 뒷받침되며 클래식하기도 한 느낌. 4번 트랙 '어디인지 몰라요'은 김광민의 피아노 하나에만 맞춰 부르는 노래. 쓸쓸하고 그윽한 분위기가 좋다. 5번 트랙 '그 밤'은 스틸기타가 메인에 현악기가 뒷받침해주는 쓸쓸한 분위기의 3박자의 곡.

6번 트랙 '꿈꾸는 나무'는 처음부터 계속 끼익끼익 기타줄 미끄러지는 소리가 난다. 나무 깎는 장인들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쓴 곡이라고 하는데, 기타줄이 계속해서 끼익끼익 거리는 것이 마치 나무를 깎는 소리 같이 들린다. 원코드 진행인 것이 특이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타 코드가 하나뿐. 근데 중간의 음들을 바꿔가면서 진행해서 지루하지않게 해준다.

7번 트랙 '외로운 당신'은 트롬본을 중심으로 관악기들의 소리와 피아노, 드럼이 내는 그윽한 분위기 때문에 살짝 재지하면서도 그루브한 느낌이 나는 곡. 나른하고 따스하면서도 약간 흥겹기도 한 곡이다.

8번 트랙 '불'은 단조풍의 스페인스러운 진행의 곡인데 찾아보니 스페인 플라멩코 사운드를 참조했다고 한다. 피아노와 기타가 함께 나오다가 엇갈리기도 하고, 번갈아가며 나오기도 하는 진행이 멋지다. 처음부터 끝까지 치키치키 소리를 내며 흘러나오는 마라카스 소리와 후반의 손뼉 등이 스페인스러움을 더해준다.

9번 트랙 '노래의 불빛'은 앨범 전체에서 유일한 락넘버. 도입부가 좀 오버스럽지만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로 진행되는 깔끔한 모던락이다. 미선이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창법은 루시드폴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미선이 시절 조윤석은 좀 더 생목을 써서 악을 질렀고, 고음에 취약하기 때문에 삑사리도 많이 났는데 루시드폴 시절부터는 자신에게 맞게 저음으로 속삭이는 듯한 창법만 사용한다. 락은 락인데 속삭이는 저음의 보컬. 곡은 좀 거친 느낌인데 보컬은 곡 스타일과 안어울린다. 미선이스러움을 기대하기엔 좀 아쉬운 점 투성이지만...곡 자체는 나쁘지 않다. 미선이 시절의 팬이었던 내겐 이런 곡들이 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10번 트랙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는 기본은 기타 중심의 포크지만 색소폰과 현악기가 그윽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제목대로 위로하는 듯한 따스한 곡이다. 11번 트랙 '여름의 꽃'은 약간은 그립고도 쓸쓸한 맛이 나는 잔잔한 포크. 기타가 메인이지만 현악기와 키보드가 뒷받침을 하며 소리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준다. "안녕, 안녕 아름다운 날들"이라는 후렴구가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딱 적합한 곡이다. 음반 제목이 '아름다운 날들'이니까.


2009년 12월에 4집 '레미제라블'이 발매됐고, 당시 2007년 3집 '국경의 밤' 이후로 2년만의 음반이라고 기뻐하며 포스팅하던 것이 얼마전 같은데 벌써 그것 또한 2년 전. 2011년 12월, 4집 이후 그야말로 2년만에 5집을 발매한 것이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흐른 것인가. 1998년, '미선이'란 그룹과 함께 홍대 여기저기를 누비던 것이 벌써 14년전. 미선이 해체와 2001년 조윤석님의 솔로 '루시드폴'의 등장. 그것이 지금까지 십여년간 계속될 것이라고는 당시엔 상상도 못했다.

이번 5집은 다양한 세션과 다양한 장르의 시도가 돋보인다. 다양한 장르라고는 해도 기본은 루시드폴 특유의 포크에 다른 장르는 양념처럼 살짝 덧붙인 정도지만. 결국 창법은 루시드폴 특유의 그 나지막한 속삭임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스스로 '밋밋한 노래, 미숙한 고음처리, 빈약한 성량'이라 말했고 루시드폴은 그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전부 저음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부르는 노래인 것이 특징이다. 그런 보컬이 시와 같이 아름다운 노랫말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음유시인 같은 느낌을 낸다.

하지만 역시 이렇게 다양한 장르가 들어갈 때엔 창법도 조금 더 변화를 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모처럼 다채로운 편곡이 들어갔는데 보컬은 전부 똑같으니 상대적으로 다채로움이 많이 죽어서 지루해지는 느낌. 나쁘지는 않은데 곡 전체가 비슷비슷해서 지루해질 수 있다. 나름 곡들은 다양한 세션, 다양한 장르를 사용해서 다채로운데 비슷비슷하게 들리는 것은 역시 특유의 보컬 문제일 듯. 그 보컬을 포기하면 더이상 루시드폴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지만 최소 '노래의 불빛' 만큼은 모던락넘버인만큼 예전 미선이 시절처럼 고음처리가 미숙하더라도 시원하게 불러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어찌보면 매너리즘 같기도 하고, 새로운 시도조차 지루해지기 쉬운. 그곡이 그곡 같은. 사용하는 멜로디 스타일이나 창법이 전부 진부하다는 느낌이 든다. 새 앨범이 나와서 들었을 때 '와! 이런 음악 좋네!' 이런 것보다는 '아! 딱 루시드폴 스타일. 딱 그런 음악이네.' 이런 좀 식은 맛있는 커피같은 감흥이랄까. 나쁘진 않지만...막 예전처럼 좋지도 않은 것이 문제.

루시드폴 음반 중에서는 3집을 가장 좋아했고, 조윤석의 음악 중에서는 좀 촌스럽고 어설프지만 다채로운 재미와 신선함이 있던 미선이 시절을 가장 좋아한다. 조윤석에게 있어 미선이 시절은 좋게 헤어진 부인과 같다고 한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다시 영영 못 만날 것 같기도 하고 다시 만나면 행복할 것 같으면서도 다시 만나선 그나마 짧은 행복한 기억마저 잃을 것 같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복잡한 실타래 같은 이름'라고 물고기마음에서 밝힌 바 있다. 미선이 멤버들은 작년부터 김정찬님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준비중이라고 한다. 다시 한번 그들이 미선이의 이름으로 뭉칠 수 있는 것일까. 적어도 임시로나마 그랬으면 좋겠다.

나에게 있어 '미선이'는 대학생 시절 친하게 지내던 어떤 사람과 함께, 내 생활에 항상 함께 존재했던 이름이다. 너무나 아련한 추억의 그 이름. 2008년 그랜드민트페스티발에 '미선이'가 10년만에 공연을 한다고 해서 미친듯이 달려가서 관람했던 것도 그 이유다. 그 때 오랜만의 미선이 공연, 오랜만이다보니 더더욱 어설픈 조윤석님의 보컬과 퍼포먼스를 보면서도 난 역시 루시드폴보다는 미선이가 좋구나 하고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코넬리우스보다는 플립퍼즈기타, 존 레논보다는 비틀즈, 서태지보다는 서태지와 아이들. 루시드폴보다는 미선이 랄까.

이 음반은 분명 딱 루시드폴스러운 듣기좋은 음반이지만 음악적 완성도가 높아져 감에 따라 과거의 신선함과 감동이 점점 옅어져가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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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날들</a>]에 대한 포스팅을 했던 것이 얼마 안된 것 같은데 그것이 벌써 2년 전. 오랜만의 루시드폴 음반이다. 인덱스는 다음과 같다. 01. 검은 개 02. 강 03. 나비 04. 햇살은 따뜻해 05. 서울의 새 06. 늙은 금잔화에게 07. 연두 08. 가족 09. 바람 같은 노래를 10. 꽃은 말이 없다. 음반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은 '어쿠스틱'. 지난 5집 앨범 [<a title="" href="h ... more

덧글

  • 칼라이레 2012/01/09 12:41 #

    네이버 오늘의 뮤직 심사하면서 평을 이렇게 썼습니다. "평균 이상을 해주는 것이 독으로서 나타날 때의 가장 아름다운 결과물"
  • 플로렌스 2012/01/09 14:30 #

    적절하군요;;
  • 2012/01/09 18:4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플로렌스 2012/01/09 22:37 #

    헉 아까운 라이브 음반;; ...아마 그게 정답인 것 같습니다.
  • 淸嵐☆ 2012/01/10 18:40 #

    동생이 연말 선물 삼아 사줬는데 노래의 불빛에 적극 공감해요 ㅠㅠ
    도입부랑 곡 스타일이 딱 취향 직격이었는데 창법이... 'ㅠ;
  • 플로렌스 2012/01/11 01:24 #

    너무 목소리를 아끼는 것 같아요. 예전처럼 좀 시원하게 좀 불러줬으면...(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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