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스커 버스커 1집 (2012.3.29)
여기저기에서 버스커 버스커 1집이 화제다. 음원차트도 싹쓸이하고 있다고 하고 엠카운트다운에선 샤이니나 FT아일랜드처럼 강력한 팬덤 층을 가진 아이돌 그룹들을 제치고 1위까지 했다고 한다. 가요 듣던 사람들도 좋다고 하고 인디음악 듣던 사람들도 좋다고 한다. 별로 기대 안했던 사람들도 다들 좋다고 하고 별로라는 사람이 없으니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가.
오디션 프로그램은 별로 안좋아하는 편인데다가 집에 TV가 나오질 않아 슈퍼스타K는 보질 않았다. 그런데 작년 슈퍼스타K에서 음원들이 공개될 때 유독 귀에 들어오는 팀이 있었으니 울랄라세션과 버스커 버스커였다. 예상대로인건지 그 둘은 끝까지 남았고 울랄라세션이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버스커 버스커는 장범준(보컬,기타), 브래드(드럼), 김형태(베이스) 3명으로 구성된 밴드인데 드럼을 담당하는 브래드가 눈에 띈다. 상명대학교 만화학부 학생인 장범준과 김형태에 상명대하굑 영어학부 전임강사인 브래드가 모여 만든 밴드. 슈퍼스타K에서 김광진의 '동경소녀', 패닉의 '정류장',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윤종신의 '막걸리나' 등을 멋지게 어레인지하여 주목을 받았고 오리지널 곡인 '서울사람들' 역시 많은 인기를 누렸다.
버스커 버스커는 보컬도 매력적이었지만 편곡 실력 또한 일품이었다. 퍼포먼스적 측면에서는 울랄라세션에게 밀리긴 했지만 누가 더 뛰어나냐라기보단 각각의 개성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곡들을 멋지게 어레인지해서 많이 불렀어도 어디까지나 남의 곡이었고 자작곡은 그만큼 못따라갈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예상을 뒤집은 것이 이번 1집이었다.
나는 한국 대중가요씬에선 밴드음악은 더이상 힘들다고 생각했다. FT아일랜드나 씨앤블루처럼 얼굴 잘생기고 귀에 쏙쏙들어오는 음악을 하는 '아이돌' 밴드가 아닌 이상은 말이다. 그런 생각 또한 완전히 뒤집어버린 것이 이 버스커 버스커 1집이다.
인덱스는 다음과 같다.
1. 봄바람 (김지수/장범준 작곡)
2. 첫사랑 (장범준 작사,작곡)
3. 여수밤바다 (장범준 작사,작곡)
4. 벚꽃 엔딩 (장범준 작사,작곡)
5. 이상형 (장범준/황용하 작사, 장범준 작곡)
6. 외로움증폭장치 (브래드 드럼 한판 쉬기) (장범준 작사,작곡)
7. 골목길
8. 골목길 어귀에서 (장범준 작사,작곡)
9. 전활 거네 (장범준 작사,작곡)
10. 꽃송이가 (장범준 작사,작곡)
11. 향수 (장범준 작사,작곡)
보컬은 이적이 떠오르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것이 맛깔스럽다. 3인밴드이다보니 심플한 사운드가 나름 개성이지만 앨범 및 공연에서는 세션들이 그 뒤를 받쳐준다.
버스커 버스커 1집의 느낌은 봄과 상쾌함. 2012년 봄에 발매된 음반 답게 1번 트랙 제목부터 '봄바람', 타이틀이 '벚꽃 엔딩'이다. 1번 트랙은 인트로성 경음악으로, 밴드 성격의 버스커 버스커와는 거리가 먼 스트링이 주가 되는 클래식한 음악. 2번 트랙인 '첫사랑'부터 본격적으로 버스커 버스커의 음악이 시작된다. 경쾌하게 첫사랑을 노래하는데 멜로디도 귀에 쏙쏙, 악기 연주는 3인밴드스러운, 좀 심플하면서도 인디스러운게 쏙 마음에 든다.
3번 트랙인 '여수밤바다'는 잔잔한 곡이지만 지루하지 않고, 마음에 깊은 여운을 준다. 밤바다가 넘실거리는 듯한 멜로디와 연주가 그야말로 '여수밤바다'의 그윽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버스커 버스커가 패닉의 '정류장'을 불렀을 때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적의 감성이 떠오르면서도 뭔가 다른 버스커 버스커만의 매력이 느껴지는 곡이다. 둘러보니 이 곡에 푹 빠진 사람이 꽤 많은 듯 하다.
4번 트랙인 '벚꽃 엔딩'은 이 앨범의 타이틀로 뮤직비디오까지 제작되어 여기저기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곡. '그대여'의 반복으로 시작하는 경쾌한 사랑노래인데 생각보다 평이하면서도 버스커 버스커 특유의 맛깔스러움이 돋보이는 곡이다. 이렇게 평범하게 좋을 수가! 여기서 평범하다는 것은 좋은 의미로 평범하다는 것이다. 오버하지도 않고, 절제하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노래. 이런 평범하게 좋은 밴드음악을 인디씬이 아닌 메이저 가요계에서 들을 수 있게 될 줄이야!
5번 트랙인 '이상형'은 음반 발매 전에 선 공개된 곡인데 나는 처음에 이게 타이틀곡인 줄 알았다. 윤종신의 '막걸리나'를 부를 때의 버스커 버스커가 떠오르는 재미로 가득한 곡. 시작부터 브레드를 부르며 대화가 나오는데, 범준이 '저기there~' 하면 브래드가 '어디where~?'라 받아 'Her? 헐!'하는 식으로 영어와 한국어를 뒤섞어 쓰는 부분이 재미있다. 노래도 즐거우면서 신나는데 좀처럼 노래가사에는 쓰이지 않은 독특한 신체부위를 콕콕 찝어말하는 것이 재미있다. 한국어의 재미랄까 그런 것도 느껴지고. 쪼글쪼글 팔꿈치, 꼬불꼬불 곱슬머리, 배배꼬인 달팽이관, 탱글탱글 광대뼈...이런 의태어와 독특한 신체부위의 결합이 듣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6번 트랙 '외로움증폭장치'는 드럼 없이 기타로만 장범준과 김형태가 부르는 노래. 브래드는 후반에 휘파람을 담당한다. 잔잔한 곡인데 노래 제목 뒤에 '브래드 드럼 한판 쉬기'가 진지함을 깨며 웃음을 준다. 곡 자체는 진지하면서 잔잔한데 '시계바늘 위로 올라가, 초침으로 심장을 찔러서, 톱니바퀴 안으로 들어가, 태엽으로 시간을 돌리는 나'라는 반복되는 후렴구가 가사 자체만으로도 즐거움을 준다. 장범준은 작곡과 편곡도 맛깔나게 잘하지만 가사를 맛깔스럽게 들리게 하는 방법에도 능숙한 듯 싶다.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 1971)'에서 영감을 얻은 곡이라고 한다.
7번 트랙 '골목길'은 8번 트랙 '골목길 어귀에서'의 인트로가 되는 트랙으로, 곡이 아니라 골목길을 떠오르게 하는 '소리'로만 구성되어 있다. 자전거 벨소리, 개 짖는 소리, 찹쌀떡장수의 찹쌀떡 파는 목소리, 브래드의 휘파람 소리(8번 트랙 '골목길 어귀에서의 멜로디') 등등. 이 트랙은 곧바로 8번 트랙 '골목길 어귀에서'로 이어지는데 '노래 노래 노랠 불러'의 반복되는 후렴구가 귀에 콕콕 박힌다. 9번 트랙 '전활 거네'는 전 트랙과 마찬가지로 분위기 자체는 잔잔한데 연주는 빠른 미디엄템포의 곡.
10번 트랙 '꽃송이가'는 인트로부터 흥겨움 가득한데 묘하게 풋풋하고 옛스러운 맛이 취향 직격!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곡이다. 어렸을 때 듣던 조금은 촌스러운 사랑노래 같은 그리움이랄까. 그런 것이 있다. 간주에 들어가는 하모니카 연주가 매력적이다. 이런 분위기의 곡 너무 좋아!!
11번 트랙 '향수'는 어린이들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한 5살짜리 아이가 '사랑이란, 한 소녀가 향수를 바르고, 또 한 소년이 에프터 쉐이브를 바른후 만나서 서로의 향기를 맡는거예요.(Love is when a girl puts on perfume and a boy puts on shaving cologne and they go out and smell each other. - Karl - age 5)'라는 대답을 했다는 글에서 착안한 노래라고 한다. 네 마음이 곧 내가 되어, 이 마음이 곧 네가 되어, 이 마음이 그대가 되어, 내 마음이 그대가 되어...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가사 또한 일품. 단조풍에 조금은 쓸쓸한 분위기인데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적합한 아련한 아쉬움이 남는 곡이다.
앨범 쟈켓 및 부클릿 내부 디자인을 장범준이 직접 했다는 것 또한 인상 깊다. 상명대 만화학부 출신이니 이정도 쯤이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지만 생각이상으로 결과물이 좋다. 장범준이 직접 만든 버스커 버스커의 로고와 그 옆에 들어가는 멤버들의 캐릭터 그림이 아기자기한 맛이 느껴진다. 이 캐릭터들을 이용하여 직접 웹툰도 그린다는데 만화를 전공한 사람이 음악으로 성공하여 그 덕분에 그것을 활용한 만화를 그리는 것 또한 재미있는 인생이 아닌가.

부클릿 내부에는 페이지마다 이렇게 장범준이 그린 귀여운 만화 그림으로 가득하다.
요즘 구입한 음반 중에서 가장 즐겨듣는 앨범이 바로 이 버스커 버스커 1집! 나처럼 슈스케 안보는 사람도, 대중가요만 듣는 사람도, 인디락 좋아하는 사람도, 밴드음악 좋아하는 사람도, 밴드 음악 싫어하는 사람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음반이라 생각한다. 대중적인 것, 통속적인 것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요즘 대중가요 하면 아이돌 댄스만 떠오르기 쉽지만 원래 대중가요란 많은 사람들이 즐겨듣는 음악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버스커 버스커 1집은 밴드 음악으로써 가장 완벽한 대중가요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범사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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