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암계곡의 혈투 (Bloody Fight in Iron-Rock Valley, 2012) 영화감상

철암계곡의 혈투 (Bloody Fight in Iron-Rock Valley, 2012)
지하진 감독, 이무생, 윤상화, 최지은 주연


'강원도 웨스턴'을 표방한 인디영화. 2008년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통칭 '놈놈놈')'의 리뷰를 올릴 때 이탈리아에서 만든 서부영화 '마카로니 웨스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1971년도산 한국영화 '쇠사슬을 끊어라'의 '만주웨스턴'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다. 서부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한국식으로 어레인지했을 때 어떤 독특하고 재미있는 작품이 나오는가. 그런 면에서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은 성공적인 결과물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포스트 웨스턴 장르의 영화가 나왔다니? 이른바 강원도 웨스턴? 강원도를 배경으로 그런 것이 가능할까? 일단 작품 배경이 비교적 현대인데다가(90년대 정도려나?) 만주웨스턴처럼 '총'을 메인으로 내세울 수 없기 때문에 맨손이나 칼, 도끼를 이용한 혈투가 핵심이 된다. 배우 중 한명은 '무협물 비슷하다'고 말했던 것처럼 총보다는 맨손과 흉기를 이용한 피가 철철 넘치는 목숨을 건 사투가 많다. 그런 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총쏘는 서부영화 장르와는 거리가 있긴 하다. 그렇지만 서부영화의 많은 요소들을 오마쥬해서 한국식으로 어레인지한 것은 꽤 흥미롭다.

이 영화는 대놓고 서부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더 웨스트(Once Upon a Time in the West, 1968)를 표방하고 있다. 악당 프랭크를 중심으로 한 일당이 어느 마을의 일가를 살해하고, 살아남은 여자 한명이 모든 유산을 상속받게 되는 상황. 프랭크가 일가를 살해한 것은 그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지하수를 노린 것. 그런데 그 프랭크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나타난 주인공 때문에 일이 꼬인 다는 내용이었는데, 이 '철암계곡의 혈투' 역시 거의 동일한 시놉시스를 갖고 있다.

악당 '귀면'을 중심으로 한 악당 3인방. 그들은 기업의 사주를 받아 각종 사업을 위해 철거민들을 무자비하게 내쫓고 그 과정에서 살인까지 서슴치 않는 용역깡패 출신들이다. 이번엔 강원도의 철암계곡 재개발 사업을 위해 어느 작은 절의 스님들을 살해한다. 그런데 주지스님에겐 딸이 하나 있었고 그 여자가 모든 것을 상속받게 되는 상황. 이번엔 그 여자를 노리지만 '귀면', '도끼', '작두' 악당 3인방에게 복수하기 위해 나타난 주인공 때문에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주인공이 용역깡패 3인방에게 가족들을 잔혹하게 살해당한 철거민 출신이라는 것과 지역 주민을 무시한채 밀어붙이는 대기업의 각종 재개발 사업, 경찰과 한패인 용역깡패 등 다분히 한국적인 요소가 도입되어 있다. 현실에 도입시키기엔 오버스러운 면도 많지만 웨스턴 장르를 표방한 픽션이니 감안하고 볼만한 편. 90년대만 하더라도 용역깡패에 의해 살해당한 철거민도 있었다하니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무시무시한 사건까진 아니더라도 비교적 최근의 사건이었던 용산참사가 오버랩되기도 한다.


이야기 전개는 흥미진진한 편. 적절히 긴장감을 주는 장면이 많고 혈투 역시 아슬아슬하게 볼만하다. 주인공이 무적이 아니다보니 수차례 위기에 처하고 몇몇 서브 캐릭터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는 것이 나름 리얼하면서도 너무 타이밍이 좋기도 하다. 그렇게 옛날 영화를 표방하다보니 전개가 너무 뻔하게 흘러가거나 급작스러운 흐름도 많다. 좀 어이없는 부분이나 어색한 상황도 많다. 이 장면 다음에 저런 장면은 어색하지 않나? 이상하지 않나? 하는 장면이 틈틈히 있긴 했지만 B급영화를 노린 만큼 적당히 넘어갈만한 하다. 영화 스타일은 물론 포스터까지 옛날 영화 분위기인 것이 꽤 마음에 든다. 특히 포스터 디자인은 최고. 이 영화가 뭘 노리고 만든 것인지 좀 아는 사람이 디자인한 것 같다.

웨스턴 장르를 표방하지만 현실적이라 총싸움 난무는 등장하지 않는다. 사냥용 총이 무기로 등장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요소일 뿐 메인 무기로 사용되지 않는다. 악당들의 별명이 '귀면', '도끼', '작두'인 것처럼 말 그대로 칼이나 도끼 등을 주 무기로 삼는다. 주인공은 맨 주먹과 다양한 무기를 쓰지만 아슬아슬함의 연속. 시작부터 끝까지 맞거나 찔리거나 죽기 일보직전의 연속이다. 사냥꾼이 총을 빌려준다해도 주인공은 그 총을 쓰지 않는 것이 인상적이다. 원수인 귀면과 최후의 싸움은 그야말로 서부영화의 전통적인 연출을 보여주는데 그 상황의 핵심이 '칼'과 '오르골'인 것 또한 인상적. 다분히 'Once Upon a Time in the West'의 오마쥬스러운 영화지만 한국의 상황에 걸맞는 어레인지가 재미있다.

인디영화는 통상 비상업적이고 다분히 실험적인 영화가 많다. 돈을 벌기 위해 관객의 '재미'를 의식하기보단 그런 것과 상관없이 감독이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는 경향이 있다보니 결국 그런 결과물이 나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철암계곡의 혈투'는 분명 감독이 해보고 싶은 것을 한 것이지만 상업적인 요소를 충족한다. 피가 가득 나오는 리얼하고 잔혹한 액션은 물론 스토리 전개면에서도 충분히 재미가 있는 영화였다. 서부영화 오마쥬란 측면에서 다수의 관객보다는 특정 매니아 계층을 만족시킬 확률이 높긴 하지만 옛날 서부영화를 재미있게 본 적 있다면 한번쯤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


이 영화의 제작사 이름은 '스피나치앤빈(Spinach & Bean)'이다. 시금치와 콩. 한국영화사 이름치고는 상당히 서구스럽고 의미가 궁금해지는 이름이다. 지하진 감독이 밝히는 이 이름은 서부영화 '관계의 종말(Pat Garrett & Billy The Kid, 1973)'에서 따왔다고 한다. 밥 딜런의 knockin on Heaven's door로 유명한 이 영화에서, 초반에 은행강도들이 은행을 털기 전에 시금치와 콩을 먹는 장면을 보며 감독 스스로의 배고픈 현실이 오버랩되었다고 한다. 은행을 털기 전. 성공하기 전의 현실 말이다. 영화 제작사 이름부터 다분히 장르영화 특성을 따르는 것이 재미있다. 앞으로도 지하진 감독은 이런 장르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한다. 영화 상영 종료 후 관객과의 대담에서 주역 배우인 이무생씨가 '외팔이 검객'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고 하니 60~80년대 유명했던 장르영화의 오마쥬를 계속 해보고 싶은 모양. 근데 '외팔이 검객'은 싸이더스와 홍콩영화사에서 공통투자로 리메이크한다는 뉴스를 2009년에 봤던 것 같은데...하여간 그런 독특한 무협물도 한국식으로 어레인지하면 어찌될지 기대된다.

영화 끝난 뒤 관객과의 대담 시간. 왼쪽에서부터 감독인 지하진, 주인공 철기역인 이무생, 여주인공 태연 역인 최지은, 악당 주인공 역인 윤상화. 주인공을 담당한 이무생씨는 봉만대 감독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에도 출연한다고 한다. 관객과의 Q&A 및 감독과 배우의 포부를 들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배우들과의 포토타임도 있었는데 사람도 몰리고 시간관계상 그냥 나온 것이 아쉬웠다. 감독/배우와 관객과의 사이에 벽이 없는 것. 이런 것 또한 인디영화의 좋은 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2012.7.2 20:00 서울아트시네마 관람)



덧글

  • 알트아이젠 2012/07/03 08:01 #

    이거, 상당히 재미있어 보이네요.
  • 플로렌스 2012/07/03 09:12 #

    꽤 볼만했습니다.
  • FlakGear 2012/07/03 11:02 #

    어 이런것도 나오네요?! 오오 관심이..
  • 플로렌스 2012/07/03 11:26 #

    이런게 인디영화의 힘이지요. 좋아하는 장르를 감독이 마음껏 해볼 수 있는...
  • Tabipero 2012/07/03 23:39 #

    철암이라길래 '설마 태백의 철암은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정말로 태백의 철암인 모양이군요 ㅎㅎ
  • 플로렌스 2012/07/04 09:44 #

    정말 거기더군요. 쇠락한 탄광마을을 배경으로...탄광에서 싸우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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