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 (PONPOKO, 1982, SIGMA) 추억의 오락실

너구리 (PONPOKO, 1982, SIGMA)


갤러그, 엑스리온, 팩맨, 방구차와 함께 1980년대 극초반의 한국 오락실을 대표하는 인기 게임. 어느 오락실에나 반드시 하나씩은 놓여있던 게임이다. 시그마(SIGMA)라는 듣도 보도 못한 회사에서 발매한 아케이드용 게임이다. 제작은 그 유명한 세이부 축구나 라이덴을 개발한 세이부(SEIBU)에서 담당. 물론 80년대 극초반엔 시그마는 물론 세이부 역시 듣도 보도 못한 회사였다. 일본 현지 및 해외에서는 그렇게 인기를 끌지 못했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80년대 극초반을 상징하는 세계적인 게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인기가 높고 인지도 또한 높았다. 나중에 DOS용 등으로 한국에서 자체 개발한 너구리 게임들이 나올 정도였으니...

타이틀 화면. 제목 'PONPOKO'가 주인공인 너구리 캐릭터 머리 위에 떠있다. '폼포코'는 일본에서 너구리가 배를 두드릴 때 내는 소리라 하며 너구리 자체를 상징한다. 타이틀 밑의 너구리도 자신의 배를 두드리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윽고 나오는 익숙한 인트로 멜로디. 멜로디에 맞춰 너구리들이 자기 배를 두드린다. 영어로 다함께 노래부르자며 가사가 쓰여있다. 이 너구리 특유의 인트로 멜로디는 팩맨의 인트로 멜로디, 갤러그의 인트로 멜로디, 방구차의 BGM과 함께 1980년대 초반 오락실의 대표적인 음악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이 멜로디는 게임 오리지널 곡이 아니라 원곡이 있다.

내가 유치원 때 가장 좋아하던 '소풍'이라는 동요가 이 너구리의 멜로디였다. 가사는 '랄라 우리들의 소풍, 랄라 줄을 맞춰 서서, 랄라 노래부르면서, 오늘은 즐거운 소풍날, 들을 지나 산을 넘어, 졸졸 흐르는 시냇물, 바람은 솔솔 불고, 오늘은 즐거운 소풍날' 이런 가사였다. 어렸을 땐 유치원에서 배운 '소풍' 노래가 너구리의 인트로 멜로디로 쓰였길래 단지 아는 노래라는 이유만으로 좋아했지만, 실은 상상 이상으로 사연이 깊은 곡이다.

이 동요의 원곡은 'Shall We Gather At The River(강가에 모이세)'라는 복음성가다. 1864년 침례교의 미국인 성직자 Robert S. Lowrey가 작사/작곡하여 만들어낸 곡으로, 신약성서 요한묵시록 제22장의 예언이 그 내용의 기본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이 성가는 1937년에 멜로디를 인용한 '담배가게 아가씨(タバコやの娘)'란 이름의 가요로 대히트했다.

그리고 이 가요의 가사를 바꾼 '너구리 노래'가 일본의 어린이들 사이에서 대히트했다고 하는데...가사는 'たんたん狸の金玉は(딴딴~너구리의 X알은~), 風も無いのにぶ~らぶら(바람도 없는데 흔들흔들~), それを見ていた親狸(그것을 보고 있던 부모너구리~), 腹を抱えてワッハッハ(배를 움켜잡고 왓핫하~)'였다고 한다. 이 일본 어린이들 사이에서 대유행했던 속요 덕분에 게임 '너구리'의 메인 멜로디가 이 곡이 된 것이다. 이 곡과 별개로 동전을 넣은 뒤 게임 시작 전에 나오는 인트로 멜로디는 '쇼죠지의 너구리 장단(証城寺の狸囃子)'이라는 동요다.

시작은 오른쪽 끝에서. 이 위치는 안전지대로 적이 오지 못한다.
다만 시간이 계속 줄어들고 있어서 가만히 있어도 죽는다.

스틱의 좌우로 좌우이동, 상하로 계단이동이 가능하며
점프 버튼으로 가시를 뛰어넘을 수 있다.
제자리에서 점프만 누르면 한칸짜리 근거리 점프가 되고,
레버 왼쪽이나 오른쪽 입력하며 점프를 누르면 원거리 점프가 된다.
이 점프의 간격과 감각을 잘 익혀야 제대로 게임을 할 수 있다.

적에게 부딪혀도 죽고 가시를 밟아도 죽고
떨어져도 죽는다. 떨어질 때의 소리가 유쾌하다.

적을 죽이거나 점프로 회피는 불가능하다. 유일한 회피방법은
이렇게 사다리의 높은 곳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리는 것.
위쪽에 있는 적과도, 아래쪽에 있는 적과도 닿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1도트만 어긋나도 즉사다.

항아리는 먹으면 점수이거나 뱀이 나온다.
뱀은 느리게 왔다갔다 하지만 있는 것만으로도 그 칸의 이동에 방해가 되며
무엇보다 움직임이 느려서 뱀이 지나가길 기다리다가 타임오버로 죽기 쉽다.
점프간격을 잘 활용해서 항아리를 뛰어넘는 느낌으로 지나치면
항아리를 먹지 않고 건너뛰는 것이 가능하다.

마지막 스테이지(20)인 맥주. 무지하게 어렵다.
너구리도 팩맨처럼 먹는 아이템으로 스테이지가 구분된다.
총 20개의 스테이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당근,앵두,버섯,감,옥수수,파인애플,수박,가지,메론,밤,
바나나,딸기,귤,무우,사과,포도,땅콩,복숭아,오이,맥주 순.
맥주 스테이지를 클리어해도 또 맥주 스테이지.
엔딩없이 마지막 스테이지만 무한반복된다.


갤러그, 팩맨, 방구차, 엑스리온과 함께 한국의 80년대 초중반 오락실을 대표하는 5대 게임 중 하나. 적을 공격할 방법 없이 무조건 도망만 다녀야하고 시간은 계속 줄어들고...단순하지만 꽤 어려운 게임이다. 약간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데 옛날엔 마지막 스테이지인 맥주판까지 가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당시엔 못하다가 뒤늦게 해봤지만 지금해도 어려운 게임. 옛날엔 오락실용 게임이란 것이 종류가 몇개 없던 만큼 고수도 그만큼 수두룩했던 것 같다.

시그마라는 듣도 보도 못한 회사에서 제작했고, 세계적으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아는 사람만 아는 초 마이너 게임이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당시 세계 최고의 인기게임이었던 갤러그팩맨, 방구차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했던 특이케이스의 게임. 오락실에서 해볼 수 있는 게임의 종류가 몇개 없던 시절이라는 것은 다른 나라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였을텐데...어째서 한국에서만 유독 그렇게 인기가 높았을까? 이후 후속작도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지만 한국에서만 동아리 등에서 DOS용으로 자체 개발하여 PC용 게임으로써도 인기를 끌며 꽤 명맥을 길게 유지했던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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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OmegaSDM 2012/07/03 07:12 #

    너구리는 재밌는데 난이도가......
  • 플로렌스 2012/07/03 09:14 #

    어렵지요.
  • 훌리건스타일 2012/07/03 07:20 #

    어린애가 하긴 조금 어려웠죠 OTL
  • 플로렌스 2012/07/03 09:15 #

    당시에 잘하던 애들은 참...
  • 타츠란 2012/07/03 08:24 #

    국내 대학생이 만든 모 너구리 게임 덕분에 국산인줄 알았죠(먼별)
  • 플로렌스 2012/07/03 09:16 #

    그거 꽤 잘만들었지요. 국산버전으로도 다시 해보고 싶어지는군요.
  • 알트아이젠 2012/07/03 08:25 #

    엄청나게 뻑뻑한 조작이 참...
  • 플로렌스 2012/07/03 09:16 #

    나름 독특한 손맛이 있습니다.
  • 슈3花 2012/07/03 09:29 #

    이.. 이거 세계적인 게임 아닌가요?ㅎ 우리나라에서만 흥했었군요. 미처 몰랐습니다 ^^

    잘 봤습니다!!
  • 플로렌스 2012/07/03 11:27 #

    우리나라에선 이상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지요. 꽤 어려운데;;
  • 타누키 2012/07/03 10:56 #

    한국에서만 흥행이라니 ㅠㅠ 그나마 원작은 못해본 것이었군요.
    디자인이 좀 너구리가 아닌 듯한 ㅎㅎ
  • 플로렌스 2012/07/03 11:28 #

    타누키님이 너구리 원작을 못해보시다니이이이이!!
  • Aprk-Zero 2012/07/03 11:28 #

    Dos판 돌아온 너구리를 많이 봤던 기억이 나는 게임입니다...
  • 플로렌스 2012/07/03 13:03 #

    오, DOS판을 아시는군요.
  • rumic71 2012/07/03 15:27 #

    지브리의 폼포코에서 혹시 이 노래 나와주려나 했는데 진짜 나와서 낄낄거렸던 추억이...
  • 플로렌스 2012/07/03 20:29 #

    말 듣고보니 갑자기 다시 보고싶어지는군요.
  • 태천 2012/07/03 16:09 #

    XT/AT 컴을 처음 접하던 당시 필수(?) 경험 게임이었죠.
  • 플로렌스 2012/07/03 22:03 #

    저는 애플 쓰다가 한동안 컴퓨터 없이 살고 갑자기 486을 구입했었지요. 덕분에 정작 PC용 너구리는 못하고 넘어갔습니다.
  • 無明 2012/07/03 23:55 #

    짧게 뛰기와 맥주무한대!!!!
    기억이 새록새록 ^_^
  • 플로렌스 2012/07/04 09:48 #

    헉!! 옛날에 막판 무한 클리어를 하던 분 중 하나군요!!
  • 코코노에 2012/07/04 02:49 #

    도미 솔미도 라솔라시도~~~~
    어릴때 참 재미있게 했었습니다.
    전 위 나이 많은 분들 때문에 해본기억이 납니다.
  • 플로렌스 2012/07/04 09:49 #

    아, 동전 넣고 본게임 시작 전에 나오는 그 인트로 음악도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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