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The Amazing Spider-Man, 2012) 영화감상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The Amazing Spider-Man, 2012)
마크 웹 감독, 앤드류 가필드, 엠마 스톤, 리스 이반스 주연


스포일러 있음.

히어로 영화 하면 통상 나쁜 놈을 멋지게 해치우는 권선징악 성향의 영화가 많다. 그런데 이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뭔가 많이 다르다.

흑막이 있긴 하지만 일단 '진짜 나쁜 놈'이 나오질 않는다. 삼촌을 살해하는 도둑도 상황이 일부러 죽이려고 의도한 바가 아니었고, 플래시라는 약한 친구 괴롭히는 악동도 학교 친구의 큰 슬픔에는 함께 애도해주는 놈이다. 메인 악당인 리자드조차 잘못된 혈청으로 흉폭해져서 그렇지 원래 악당은 아니다.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며 원래의 마음씨까지 되찾는데다가.

영화 전체도 싸움보다는 드라마가 많다. 스파이더맨 특유의 능력을 살린 액션은 예전 스파이더맨보다 월등히 훌륭하긴 하지만 후반의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많이 나오지도 않는다. 스파이더맨 슈츠를 입기 전까지 많은 시간을 드라마에 할애한다. 부모의 죽음에 관한 수수께끼와 자이언 같은 동급생 앞에게 무력한 자신, 마음에 드는 여자애, 삼촌과의 갈등...그리고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게 되는 삼촌의 죽음까지.

기존 3부작에서 나왔던 것과 똑같은 컨셉인데도 좀 더 감정이입이 되게 만들었다.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주제를 굳이 말할 필요 없이 상황만 보면 그럴 수 밖에 없을 것 같이 공감하게 만든다고나 할까. '비밀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말이 대신 나오기는 하지만...

드라마성이 강해져서인지 영화 내내 우는 관객들이 많았다. 스파이더맨이 원래 불쌍한 캐릭터이긴 하지만, 익히 알고 있는 장면인데도 슬프게 잘 만들었다. 여성 관객들이 너무 많이 울던데 특히 내 왼쪽의 여자분은 영화 내내 훌쩍훌쩍 거리고 끝날 때까지 그러고 있었다. 수시로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눈물을 닦더니 끝난 뒤엔 열심히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우는 사람이 많긴 많았지만 콧물이 특히 많이 나왔는지 계속 훌쩍훌쩍. 내가 히어로 영화가 아니라 슬픈 영화를 보러 온 것이었나?

예전 3부작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더 마음에 든다. 불쌍하게 되는 상황의 연속인데도 슬픔을 가슴에 간직한채 가면을 쓰고 악당들을 해치우며 쉴새 없이 떠들고 조크를 날리는 그 모습. 원작 스파이더맨의 가장 큰 매력을 제대로 살려냈다. 원작대로 피터 파커가 똑똑해서 웹슈터를 직접 만들거나 공식을 푸는 것도 좋았고, 자작이라 조금 어설픈 슈츠도 마음에 들었다. 예전 3부작 슈츠는 멋지긴 한데 자작품치곤 너무 퀄리티가 좋았던 것 같기도. 이번 것 역시 자작치곤 퀄리티가 좋지만.

슬픈 연출도 많고 코믹한 연출도 많고 아슬아슬한 연출도 많고. 하나의 영화에 참 다양한 느낌을 담았다. 리자드의 인류보완계획(?)이나 뉴욕 전체 살포기라는 수상한 기계 등 말도 안되게 유치한 설정도 많았지만 원작이 만화라는 것과 그 원작의 느낌을 충분히 재현했다는 면에서는 좋은 것 같다. 무엇보다 재미있었으니까 장땡. 히어로물인 만큼 너무 리얼함을 추구하기보단 이런 좀 말도 안되는, 유치한 것들도 있어줘야 좋은 것 같다. 리얼하고 진지한 히어로물은 다크나이트 시리즈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관객들이 다 나갔는데 배우 소개가 끝난 직후 에필로그가 나온다. 이야기의 흑막이 되는 자의 모습이 얼핏 나오는데 아마도 이야기에 언급된 노먼 오스본인 듯? 스파이더맨 부모님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듯한데 리자드가 유전자 변이로 괴물 모습이 되는 것을 보면 예전 3부작에서의 메카닉 분위기가 아닌 원작처럼 제대로 된 그린 고블린 모습으로 등장할 듯 싶다. 다음 작이 기대되지 않을 수 없는데...근데 그린 고블린이 나오면 여주인공인 그웬 트웨이시 역시 예정된 결말이 기다리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 다음 작 역시 슬픈 영화가 될 듯 싶다.

덧, 스탠리 영감님의 우아한 모습. 여태까지 나온 까메오 연기 중 가장 임펙트 있었다.

(2012.7.8 16:00 상암 CGV 관람)

그리고 우리집 3.75인치 새 식구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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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메이징 스파이더맨</a>'으로써 리부트된 지도 어느새 2년. 기다리던 작품의 후속작이다. 샘 레이미 감독의 3부작 스파이더맨은 영화적 어레인지로 성공한 케이스긴 했지만 원래의 스파이더맨과는 이미지 자체가 다른 모습을 많이 보였고, 특히 마지막 3편은 벌여놓은 사건은 많은데 제대로 수습되지 않고 뒤섞여서 엉망진창. 끝이 안좋았던 기억이 난다. 마크 웹 감독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과연 어떻게 끝을 낼 것인지는 모르지만 2012년에 개봉한 첫번째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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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메이징 스파이더맨</a>'은 여주인공이 스파이더맨의 공식 여주인공인 메리 제인(MJ)이 아니라 스파이더맨의 죽은 전 여자친구 그웬 스테이시라는 점에서 이미 슬픈 결말이 예저오디어 있었다. 전체적인 구성면에서 인과관계에 충실했던 <a href="http://netyhobby.egloos.com/5655650" target="_blank">전작</a>에서 그웬 스테이시의 아버지가 유언으로 그웬과 멀리 하라는 말을 남기지만 피터 파커의 맨 마지막 대사는 이 ... more

덧글

  • 지크 2012/07/09 01:47 #

    약속은 깨는게 제 맛이지!
    기억나는 건 이 대사뿐이네요(..)
  • 플로렌스 2012/07/09 09:55 #

    우울한 상황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그 느낌. 딱 스파이더맨스러워서 좋았습니다.
  • FlakGear 2012/07/09 02:08 #

    사실 생각해보면 크로니클 떠오르기도 하고(...)
  • 플로렌스 2012/07/09 10:07 #

    스파이더맨은 역시 우울해야 제맛! 근데 그러면서도 웃겨주는 것이 스파이더맨이지요.
  • 2012/07/09 04:5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7/09 10:0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알트아이젠 2012/07/09 07:54 #

    [어메이징 스파이더 맨]에서 벤 파커의 육성을 통해 '책임'보다 '운명'을 강조했는데, 이 포스팅을 읽어보니까 과연 후속편에서 그러한 운명이 책임보다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신경쓰입니다.
  • 플로렌스 2012/07/09 10:25 #

    맨 마지막 트웨이시 경감의 유언과 피터의 막판 반전 대사, 자막 올라간 뒤 나오는 에필로그 등에서 다음 편의 비극에 대한 복선과 암시가 충분히 드러나지요.
  • 나이브스 2012/07/09 08:24 #

    결국 우리의 녹색샤워 노만씨는 회춘해서 오신다는 거죠
  • 플로렌스 2012/07/09 10:26 #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예전 3부작처럼 로봇 갑옷이 아니라 원작 느낌을 잘 재현할 것 같아 기대중!
  • dobi 2012/07/09 12:25 #

    저피규어들 정발된녀석들인가요?
  • 플로렌스 2012/07/09 13:11 #

    네, 전부 정발된 녀석들입니다.
  • rumic71 2012/07/09 12:51 #

    액션이 거미다워졌고 수트도 원작재현도가 높아져서 좋았습니다.
  • 플로렌스 2012/07/09 13:12 #

    전체적으로 원작 스파이더맨 분위기가 물씬 나서 좋았지요.
  • Nn 2012/07/09 13:35 #

    엇, 플로렌스님 리뷰를 보니까 급 끌리네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울고 웃고 할 수 있는 영화를 보고 싶었거든요. ㅋㅋㅋ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막. ㅋㅋㅋ
    (훌쩍거리던 옆자리 여성분 얘기 때문에 끌리다니 어지간히 메말라있었던 듯 싶네요;; orz)
  • 플로렌스 2012/07/09 14:04 #

    슬픔과 웃음, 긴장감이 잘 뒤섞여서 꽤 즐길거리가 많은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근데 정말 주변 여성분 반응 때문인지 슬픈 영화 보러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요;;
  • 블랙 2012/07/11 06:49 #

    예전 3부작 슈츠는 디자인은 자작이지만 슈츠 제작 자체는 다른사람에게 주문 제작(?)한 물건입니다. (소설판 설정)
  • 플로렌스 2012/07/11 08:16 #

    소설판 설정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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