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2012) 영화감상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2012.8)
(那些年,我們一起追的女孩 You Are the Apple of My Eye, 2011)
구파도 감독, 가진동(커징텅), 진연희(션자이) 주연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있다. 첫사랑을 소재로 한 잔잔한 순정물일 것 같은데 예상대로 그런 내용이면서도 시작부터 끝까지 코믹한 장면이 계속된다. 코믹물이냐하면 그건 아닌데 주인공과 친구들이 하는 저속하고 유치한 바보짓이 실제 남고생들 하는 짓이랑 너무 똑같아 그 리얼함이 어이없기도 하고 웃기다. 짤막하게 지나가는 대사나 배경에 웃기는 장면도 많아 놓치기도 쉽지만 발견하면 폭소하게 된다. 즐겁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첫사랑의 추억. 안타깝기도 했지만 지금은 웃으면서 돌이킬 수 있는 그런 추억의 이야기.

32살의 커징턴(가진동)은 정장을 입고 결혼식장에 갈 준비를 한다. "신부를 기다리게 할 셈이야?"라며 등장하는 고등학교 친구들. 그리고 그 친구들과 함께 바보짓을 하며 보내던 17살 때를 추억한다. 벽에는 등쪽에 파란색 펜 자국이 가득 나있는 교복이 걸려있다.

때는 1994년. NBA가 유행하며 NBA 트레이딩 카드가 대유행을 했다. 점프계열 만화인 슬램덩크와 드래곤볼이 학생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이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대만이나 마찬가지였나보다. 내용 중에 나오는 당시 유행하던 대만가수의 노래들은 알 수 없지만 극중에 나오는 슬램덩크 작가인 이노우에 타케히코에 대한 루머나 NBA 트레이딩 카드, 드래곤볼 만화책과 천하일무도회의 룰 등이 당시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

이제 17살이 된 커징턴(가진동)은 공부에는 전혀 흥미가 없고 친구들과 유치한 장난을 하며 고교 시절을 보낸다. 항상 거시기가 서있는 '발기', 어떤 이야기에건 꼭 등장하는 '뚱보', 자기가 잘생겼다 생각하고 농구를 좋아하는 '머저리', 재미없는 유머를 하고 항상 거시기를 긁는 '사타구니'. 이 친구들과는 중학교 때부터 항상 함께 하던 친구들이며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바보같고 유치한 장난만 치며 시간을 보낸다. 각기 다른 개성넘치는 친구들과의 유일한 공통점은 모범생 션자이를 좋아한다는 것.

여기까지가 시놉시스. 이하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 바란다.



커징턴의 친구들은 정말 바보같은 방법으로 션자이를 꼬시려고 한다. 유치한 것을 싫어하는 션자이에게 그런 것들이 통할 리는 없다. 그나마 가장 나은게 뚱보. 뚱뚱한 것을 제외하면 공부도 잘하고 제법 어른스럽다. 에어서플라이의 공연을 보러가자고 꼬시며 은근슬쩍 션자이와 친한 여자친구에게도 함께 가자고 말해 부담까지 덜어주는 세심함을 보인다. 친구들이 다들 그렇게 노력하는 동안에도 커징턴은 '난 여자에게 관심없어'하며 이소룡 흉내를 내며 방안의 사람 그림이 그려진 샌드백을 칠 뿐이다.

그러나 어떤 사건을 계기로 멈춰있던 시계는 돌아가기 시작한다. 커징턴에게 공부를 가르쳐주기 시작하는 션자이. 그리고 친해지는 두사람. 덩달아 커징턴의 바보친구들과 션자이의 친구 후쟈웨이, 이렇게 모두가 다 친하게 지내게 된다. 올라가는 커징턴의 성적, 고등학교 졸업, 대입....커징턴과 바보친구들, 션자이의 이야기는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시절로까지 이어진다.

커징턴은 스스로 션자이를 좋아하는 것을 깨닫고 고백하지만 션자이는 자기에게 어떤 대답을 바라냐며 확답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관계로 계속되는 두사람. 커징턴의 마음을 알면서도 일정거리를 유지하며 어장관리를 하는 듯한 션자이가 참 얄미웠다. 다만 소원을 비는 연을 날릴 때 커징턴이 조금만 용기를 냈다면...그 때 관계가 다시 한번 바뀌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대학가서도 이어지는 커징턴의 바보짓으로 결국 션자이와 크게 싸우고 둘은 연락을 끊는다. 애초에 다들 각기 다른 지역의 대학을 가게 되어 서로 만나는게 힘들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1999년 9월 21일, 대만에서 발생된 큰 지진. 이 때 다시 커징턴과 션자이가 연락을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서로의 추억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통화하는 두사람. 여기에 이후의 이야기에 대한 복선이 나온다. 그리고 다음에 온 션자이의 연락. 커징턴은 "왜? 다시 시작하려고?"라고 말하는데...그리고 다시 첫장면으로 돌아와서 현재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대한민국의 낙후된 교육시스템 특성상, 중고등학교 시절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친구와의 추억은 커녕 학교에서 청춘을 불태웠던 멋진 추억 하나조차 없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이 영화를 통해 좋은 추억의 간접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어차피 과거의 추억이 현재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이 영화에는 지나가는 대사로 뼈가 있는 말이 참 많이 나온다. 대강 생각나는대로 써보면...

"공부 정말 재미없고 짜증나 못해먹겠다! / 그래서 공부 잘하는 사람이 대단한거야."
- 맞는 말이다.

"내가 무시하는건 공부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노력도 안하면서 잘난척 하는 사람이야."
- 션자이의 이 한마디에 커징턴이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하고...

"성장하는 동안 가장 잔인한 것은 여학생은 남학생 보다 성숙하며, 그 성숙함을 견뎌낼 남학생은 없다."
- 여자가 보기에 또래 남자애들은 정말 유치하지. 남자 입장에서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가 재미없고.

"그래 나 바보다. 바보라서 너를 좋아했어"
- 자신의 고백에 확답 없이 적당히 친구이상 연인미만 거리를 유지하는 사이. 손조차도 못잡아봤으니 정말 애가 탔겠지. 그래도 바보같이 한 여자만을 오랜 시간 좋아하는 모습은 멋진 것 같다.

"사람들이 그러지. 사랑은 알듯 말듯 한 순간이 가장 아름답다고. 진짜 둘이 하나가 되면 많은 느낌이 사라지고 없대. 그래서 오래도록 날 좋아하게 두고 싶었어"
- 이 대사는 어장관리 하는 듯한 션자이가 그랬던 이유를 말한 대사인데 정말 얄미웠다. 반전이 하나 있긴 했지만...

"그 때 날 좋아해줘서 고마워. / 나도 그 때 널 좋아했던 내가 좋아."
- 과거의 자기 자신에 대해 후회없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가.

"정말 좋아하는 여자라면 누군가 그녀를 아끼고 사랑해주면 그녀가 행복하길 진심으로 빌어주게 된다."
- 뻔한 대사...처음엔 부정하다가 결국엔 긍정한다. 사랑에 있어 욕정과 집착의 유통기한은 정해져있으니까.

"성공하는 사람은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 대학 졸업 후 친구들이 어떻게 됐는지를 설명하다 나오는 반전. 그사람이 그사람이었어!?



친구들 중 유일하게 션자인과 사귀어본 녀석. 손은 잡아보지만...


션자인 역의 진연희(천옌시). 정말 곱다.
자기에게 공부 빼면 남는게 없다고 말하지만 모든 남자애들이 좋아했던 건 공부 때문이 아니지.

여자들은 주연배우인 가진동(커징턴)에게 열광하는 분위기.
영화에서 커징턴의 실제 엉덩이를 실컷 감상할 수 있다.


영화가 끝나고 구파도 감독과 가진동(커징턴)의 대담 시간이 있었다. 몇가지 여담을 들을 수 있었다.
대담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카메라를 깜빡하고 두고가서 폰카로 찍었더니 건질 사진이 한장도 없었다.




이 영화에 대한 여담을 해보자면...

- 이 영화의 이야기는 구파도 감독이 실제로 고등학교 때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 영화의 무대가 되는 지역과 학교, 교복은 전부 감독이 살던 곳, 다니던 학교, 실제 교복.

- 주연인 커징턴은 극중 이름이나 실제 이름이나 가진동(커징턴)이다. 신인 띄워주기려나?

- 커징턴은 이 영화에서 알몸연기가 특히나 돋보였다. 엉덩이는 실컷 볼 수 있다.

- 커징턴이 '왼손은 거들 뿐, 오른손은 마우스'라 말하는데 '왼손은 거들 뿐'은 당시 유행하던 슬램덩크의 대사.

- 극중 '이노우에 타케히코가 죽었대!'란 대사가 나오는데 이는 슬램덩크의 작가 이름이다. (안죽었다!)

- 영화에서 커징턴이 대학교에서 격투기 시합을 할 때 심판이 들고 있던 책은 '드래곤볼'이며, 심판이 말한 룰은 드래곤볼에 나오는 '천하일무도회'의 룰이다.

- 태권도가 강하게 나온다. 킥 한방 한방이 정말 아파보인다.

- 영화에서 부전자전을 이용한 개그가 돋보이는데 커징턴의 아빠 역으로 나온 분이 실제 커징턴 아빠라고 한다.

- 스탭롤이 다 오른 뒤에 션자인 역의 진연희(천옌시)에 대한 몰래 카메라가 나온다.

- 영화에서 션자이의 친구 후쟈웨이는 '완완'이라는 유명한 캐릭터 디자이너가 되는데, 이 '완완'은 실제로 대만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캐릭터이며, 후쟈웨이의 역을 담당한 완완이 실제로 그 캐릭터 디자이너이다.


평이한 이야기를 굉장히 재미있게 잘 풀어나간 수작 영화.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몰아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건조하지도 않으며 그야말로 '지나간 좋은 추억'을 회상하듯 담당하게 그려나간다. 살짝 아쉽고 애뜻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웃을 수 있는. 그런 영화. CG를 사용한 조금 과장된 장면이 있긴 하지만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이다.

30대가 되어 돌이켜보는 첫사랑의 추억, 1994년이라는 시대적 특성 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건축학개론'과 비교하곤 하는데, 건축학개론과는 좀 거리가 먼 영화이다. 일단 대학시절의 첫사랑과 고등학교 시절의 첫사랑은 그 상황에 큰 차이가 있다. 게다가 이 영화는 끊임없이 관객들을 웃게 만드는 '코믹함'이 강하다. 남고생들의 특유의 저속하고 유치한 행동들이 묘사가 상당히 잘 되어있고, 각 캐릭터들 또한 고등학교 시절에 한번쯤 접해봤을 것 같은 녀석들이다. 현재와 과거를 왔다갔다하는 '건축학개론'과 달리 이 영화는 고교시절부터 대학시절까지 쭈욱 돌이켜본 뒤 현재로 돌아온다.

'건축학개론'도 잘 만들어진 영화이긴 했지만 한가인의 술먹고 하는 욕설 연기나 두사람이 어른이 되어 변해버린 모습과 어른이 되어서 하는 찌질한 짓, 마지막 키스 등 찝찝함이 좀 있는데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좀 더 뒷맛이 깔끔하다. 성인이 되어서도 다들 유치하고 바보같지만 그 '변함없음'이 좋다. 마지막에 '나는 끝까지 유치할거다!'라 말하는 커징텅의 대사. 그게 이 영화의 깔끔함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두사람의 마지막 키스조차 건축학개론과는 그 격을 달리한다. 왜냐하면 그건...영화를 안본 사람을 위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보면 누구라도 아! 할 것이다. 진짜 쿨함이란, 미련없이 좋은 추억은 추억으로만 간직하며 과거를 후회없이 웃으며 보내버릴 수 있는 것, 아무런 미련없이 사랑했던 여자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랄 수 있는 것. 이런 깔끔함이 이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쉽게 추천할만한 '재미있는 영화'다. '건축학개론'을 재밌게 봤건 재미없게 봤건 아무 상관없이 말이다.

(2012.8.13 20:00 동대문 메가박스 관람)




션자인 역의 진연희(천옌시). 스틸컷에서 보이는 이 배우의
느낌이 좋아서 영화를 봤는데 상상이상으로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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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Nn 2012/08/14 15:22 #

    그랬었군요! '그 시절 우리가~'가 한국영화인줄 알았다가 대만영화라는 걸 알고 [대만 사람들이 느끼는 향수가 한국사람인 나한테 통할 리가 없지] 하면서 시사회도 응모 않고 지나쳤는데... 급 후회됩니다 ㅠㅠ ㅎㅎ
    덧. 드래곤볼과 슬램덩크의 파급력이란... 가히 범세계적인 것이었군요 ㅇ<-<
  • 플로렌스 2012/08/14 15:30 #

    제 기준으로는 건축학개론보다 재미있었어요. 향수에 대한 공감영화는 아니고 내겐 없던 좋은 추억을 선사해주는 영화랄까요? 근데 남고생들의 저속하고 유치한 짓들에는 깊이 공감했습니다. (남학교만 6년 다니다보니...) NBA와 슬램덩크와 드래곤볼은 90년대 초중반의 세계적 트랜드였던 것 같습니다.
  • costzero 2012/08/14 19:17 #

    큰일입니다...나이 먹으니 저런 사진을 봐도.
    female이라는 것말고는 뇌에 신호가 안들어오는...
    맨날 문자에는 이상한 강남 업소들의 기괴한 내용의 문자들만.
    안드로이드폰의 스팸차단기능만 유용하게 활용중입니다.
    이제 토미 올릭픽도 끝났으니 다시 시즌7이나 빨리 하길.
    토치우드도 나오면서 달렉레인저는 안나오는 더러운 토미...
  • 플로렌스 2012/08/14 22:23 #

    뭔가 혼돈의 카오스군요;;
  • costzero 2012/08/14 22:26 #

    결론은 저 나이에 약간 분장해서 찍으면 다 문근영...
  • 플로렌스 2012/08/14 22:52 #

    문근영도 이제 나이가;;;
  • costzero 2012/08/14 22:57 #

    문근영은 영원한 국민 여동생...
    골든벨에서 여드름 덕지덕지 난 얼굴만 기억납니다.
    (미안해 극장에 데꾸갈 여자사람이 없어...테레비도 없어.시골에 내려갔을 때 골든벨에서 봤을 뿐.)
  • 플로렌스 2012/08/15 08:22 #

    ;;;
  • 2012/08/14 21:4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8/14 22:2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vitapapa 2012/08/15 00:21 #

    남여공학이 없었던 시절에 버스의 그 땀냄새 아...다이알비누.흰색 교복아래 비치던 끈. 버스에서 가방들어주는건 예절이었지만 갑자기 쏟어지는 김치국물.. 단발에 흰 카라. 하악하악.. 미안합니다 음주 댓글..
  • 플로렌스 2012/08/15 08:20 #

    여고생에 대한 환상!?;
  • RUBINISM 2012/08/15 00:38 #

    아 이럴 수가 오늘 도둑들 보고 왔는데 ㅠㅠ
  • 플로렌스 2012/08/15 08:20 #

    도둑들도 재밌다고 하더군요. (^.^)
  • RUBINISM 2012/08/15 08:27 #

    그래도 도둑들은 괜찮았지요. 조만간 천만 금방 뚫을지도 ㅋㅋ
  • 플로렌스 2012/08/15 11:22 #

    도둑들도 한번 보고 싶긴 합니다만 보고픈 영화가 너무 많군요.
  • FlakGear 2012/08/15 03:37 #

    오 이것도 건축학개론의 뒤를 이어갈까요. 가을에 개봉하면 왠지 가을분위기와 겹쳐서 또 사람들 추억에 빠지게 만들 수도 있겠네요
  • 플로렌스 2012/08/15 08:21 #

    개인적으로는 건축학개론보다 나았습니다. 건축학개론은 어른이 되었을 때의 그 찌질함이 참 맘에 안들어서...한가인 욕설연기는 최악이었고.
  • 불의타 2012/08/15 04:28 #

    시사회에서 서로 마주쳤을수도 있겠군요 ㅋㅋ

    아련하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였죠. 첫부분에서 좀 화장실 유머가 섞여 불편할수도 있겠지만요.
    보고나서 옛날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나는 영화였죠 ㅋ
  • 플로렌스 2012/08/15 08:22 #

    남고생들이 정말 저속하고 유치하게 놀지요. 근데 남고 6년 경험상 저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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