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비정한 도시 (2012) 영화감상

비정한 도시 (2012.10.25)
김문흠 감독, 조성하, 김석훈, 서영희, 이기영, 안일강 출연


미리 얘기하자면 이 영화의 장르는 '블랙코미디'이다. 공식적으로 '스릴러'와 '미스터리'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사실은 코미디일 뿐이다. 이야기의 시놉시스는 흥미롭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며 그 인물들의 사건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결국 하나의 결말이 나는 듯 싶다. 이런류의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했다. 많은 인물들, 많은 사건들이 어떻게 절묘하게 연결될 것인가? 하지만 애석하게도 실망이 더 컸다.



이하 스포일러 있음



이야기의 시작은 한 택시기사의 수다로 시작한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끊임없이 떠드는데 그동안 뒤에 각기 다른 손님들이 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손님들은 모두 이 영화의 등장인물로, 직/간접적으로 사건에 개입하고 있다.

한 여자가 죽었다. 그여자는 사채업자의 아내다. 왜 죽었을까? 그것이 이 영화에서 내리는 하나의 결말이다. 하지만 이 여자가 죽기까지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섞여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시간순으로 보여주지 않고 불규칙하게 보여준다.


한 남자가 말기암의 아내 병원비를 위해 사채업자에게 2천만원을 빌렸다. 그러나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고작 3개월만에 갚을 돈이 4천만원이 되었다. 칼에 옆구리를 찔리며 신장을 적출당할 위기에서 다음주까지 5천만원을 갚기로 하고 남자는 풀려난다. 남자는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며 걷는 도중 한 고등학생이 모는 자전거에 치인다. 고등학생은 사과도 없이 그냥 가버린다. 남자는 욕을 하며 콱 죽어버려라라고 말하는 순간 고등학생은 한 택시에 치어서 즉사한다. 남자는 그 택시운전수를 협박해서 5천만원을 뜯어내기로 결심한다.

이야기의 시작에서 떠들던 택시운전수는 한 고등학생을 치어죽인다. 운전수는 뺑소니를 치게 되나 목격자로부터 5천만원을 내놓지 않으면 신고하겠다는 협박을 받는다. 택시운전수는 한 돈많은 여자를 납치하여 5천만원을 뜯어내게 된다. 그 여자는 사채업자의 아내이다.

말기암의 여자는 자신은 어차피 죽는다며 옥상에서 자살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탈옥한 희대의 살인마가 여자를 구하게 되고 실랑이 과정에서 살인마는 옥상에서 떨어져 죽게 된다. 남자는 돈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고 아내에게 말한다.

등에 거대한 곰인형을 업은 한 청년이 여자친구를 모텔에 데리고 가려고 한다. 여자는 아빠가 목사라며 한사코 거부한다. 그런데 청년은 그 모텔에서 건장한 남자와 함께 나오는 자신의 여동생을 목격하고 화를 낸다. 모텔 앞에는 누군가를 죽이기로 결심한 두 남자가 탄 차가 서있다. 그 때 모텔 옥상에서 탈옥수가 차 위로 떨어져 죽는다.

모텔에선 사채업자의 아내가 몸매 좋은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있다. 사채업자의 영상 통화에 모텔에 걸린 그림을 보여주며 갤러리에 와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내연남은 사채업자의 아내에게 급한 돈이 필요하다며 5천만원을 요구한다.

틱장애를 가진 한 고등학생이 선교용 피켓을 들고 교회 전단지를 나눠준다. 그러다가 같은 학교 양아치 4명에게 둘러싸여 괴롭힘을 당한다. 장애학생은 양아치에게 욕을 하고 화가 난 양아치는 장애학생을 때리는데 그상태로 난간 밑으로 떨어져 많은 피를 흘리고 움직이지 않게 된다.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한 양아치들은 도주한다. 잠시 후 장애학생은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자전거를 타고 간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가다가 한 남자를 치고 간다. 뒤돌아보지도 못하고 계속 앞으로 가던 학생은 한 택시에 치어 숨진다.

자신이 장애학생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양아치는 장애학생이 들고 있던 선교용 피켓을 들고 있다. 어떤 아줌마가 장애학생이 타고 있던 자전거를 가져가는 것을 보고 쫓아가는데 그 아줌마가 장애학생의 엄마라는 것을 알고는 도주한다. 장애학생의 엄마는 작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른다. 그 미용실을 운영하는 아줌마는 학생을 치어죽인 택시운전수의 아내이다.


이렇게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각본은 좋다. 설정도 나쁘지 않다. 문제는 이것을 풀어가는 방식이다.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는만큼 이것들을 번갈아 보여주며 이야기의 흐름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분량조절을 잘 해야하며, 몰입이 흐트러지지 않게 해야한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관계를 관객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이렇게 복잡해지기 쉬운 영화는 전체적인 편집이 최상급이 아니면 안된다. 연출 또한 최상급이 아니면 안된다. 어설프게 했다가는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 영화는 죽도 밥도 되지 못했다. 편집도 엉망진창이고 연출 또한 엉망진창이다.

가장 큰 문제는 '어색함'이다. '스릴러'와 '미스터리'를 내세웠지만 이 영화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사채업자의 아내를 죽인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가 이야기 흐름의 가운데에 있긴 하지만, 가벼운 블랙코미디풍으로 '누구나 범죄자가 될 수 있는 비정한 도시'를 이야기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어둡고 칙칙한 이야기'와 '개그'가 어설프게 섞여있다. 암울한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나오다가 갑자기 시트콤이 나온다. 농담따먹기와 개그가 남발하다가 갑자기 또 칙칙한 이야기가 되었다가...밸런스가 엉망진창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블랙코미디를 표방하며 끊임없는 웃음을 주던지, 아니면 진지하게 어둡고 칙칙한 이야기만 하던지 하는게 나았을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고, 이랬다 저랬다 한다.

스토리는 오락가락하고 정리가 안되어 산만하며 어설픈 시트콤과 작위적인 연출 투성이다. 후반부에 미용실에서 벌어지는 죽은 장애학생의 엄마와 택시운전수의 아내의 대화 및 포옹 장면은 그야말로 최악. 사족도 이런 사족이 없을 듯 싶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이 세상에 죄인이 아닌 사람이 어디있겠나. 그러니 서로를 용서하자." 감독이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알겠다. 하지만 그걸 배우들이 직접 입으로 말하면서 장면으로 보여주는 것은 너무 촌스럽고 작위적이다. 한술 더 떠서 갑자기 검은 화면이 나오며 아예 글자로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을 표기함은 작위적인 것의 극치. 인디 단편영화 등에서 아마추어 감독이 자신이 영화로 다 표현 못한 것을 직접 글로 표현하거나 배우의 입을 통해 표현하는 것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연기력 발군의 명품 배우들을 대거 출연시킨 상업영화에서 이런식의 연출은 너무하지 않았나 싶다. 아마추어도 아니고 원. 그러나 배우들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영화 광고는 '당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란 카피를 내세우지만 실제 영화 주제는 정 반대.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이다. 카피라이트를 왜 '피해자'에 초점을 맞췄는지 모르겠다. 영화 후반에 아예 시커먼 화면이 나오며 글자로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문구까지 작위적으로 넣은 판국에 말이다.

이 영화는 원래 88분인데 추가컷이 포함된 90분짜리 감독판으로 개봉된다고 한다. 내가 본 것도 감독판이었다. 추가컷은 스탭롤이 올라갈 때 틈틈히 나오는데, 사건이 벌어진 이후의 뒷얘기 및 사건 6개월 전의 발단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최종적으로 누가 사채업자의 아내를 죽였는지도 알 수 있게 된다. 만일 이것을 확실히 하지 않았으면 관객들의 불만이 많았을텐데 나름 잘한 처사인 듯 싶다. 다만 추가컷에서마저 이 영화의 '어설픔'과 '촌스러움'은 극에 달해서 죽은 탈옥수의 여자친구가 하는 대사들이나, 죽은 아내에게 하는 사채업자의 대사, 다음 탈옥수의 여자친구에게 접근하는 사채업자의 행동 등은 너무 어색하다. 그냥 사채업자와 사채업자 아내의 내연남과의 관계만 보여주고 끝냈으면 좋았을 듯 싶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수많은 이야기, 그리고 그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이야기들이 얽히고 설켜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이런 류의 영화를 꽤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최악으로 기억에 남을 듯 싶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기 때문이겠지만 모처럼 좋은 각본이 어색한 장면들의 연속으로 엉망진창이 된 듯 싶다. 하나부터 열까지 어색하고 어설펐다. 주제의식에 대한 욕심만 앞서서 정작 영화에 있어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 아마추어 감독의 어설픈 단편영화 한편을 본 것 같은 기분이다.

(2012.10.22 20:00 합정 롯데시네마 관람)



덧글

  • Aprk-Zero 2012/10/23 02:36 #

    저는 다른 작품으로 '부당거래'는 괜찮게 봤는데 말이죠...
  • 플로렌스 2012/10/23 11:14 #

    전혀 상관없는 작품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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