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도의 개 (야스히코 요시카즈, 1~4 완결)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의 캐릭터 디자이너이자 만화 '모빌슈트 건담 디 오리진'의 작가인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역사 드라마. 1800년대 후반, 조선을 둘러싸고 전운이 감도는 청나라와 일본. 조선의 급진개화파 김옥균을 보고 저것이야말로 '왕도'라고 믿은 주인공 카노 슈스케와, 출세를 위해 '무츠 외교'의 무츠 무네미츠 밑으로 가는 카자마 이치타로의 엇갈린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건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이라는 출판사의 말처럼, 이 책은 우리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다. 일본 만화가가 그리는 19세기의 조선을 둘러싼 역사적인 사건들. 게다가 '기동전사 건담'의 캐릭터 디자이너이자 건담 디 오리진의 작가인 요시카즈 화백의 작품이라니!! 권당 정가 9500원이지만 책 두께도 튼실한데다가 앞부분 칼라페이지 재현, 4권으로 깔끔하게 완결되어 나름 가치가 있다.
책 띠지의 추천사들 또한 눈에 띄는데 꽤 재미있다.
1권은 '스피릿 오브 원더'의 츠루타 켄지. "그 필치는 이 우주에서 유일무이. 어찌 이를 대대로 읽고 또한 대대로 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2권은 '엠마'의 모리 카오루. "야스히코 선생님께서 그리시는 남자들의 그 의지가 깃든 눈, 여자들의 그 부드러우면서도 볼륨감 있는 신체 라인, 의복의 움직임, 아름다운 구도, 컬러, 심지어 배경 자연물이나 건물조차도 색기로 가득한 존재감, 그 모든 것에반해버릴 지경이랍니다."
3권은 '헬싱'의 히라노 코타. "모든 것이 다 요염하다. 남자도, 여자도, 노인네들도, 이야기도, 배경도, 효과음도, 글씨까지 죄다 숨이 막힐 정도로 요염하다. 야스히코 선생님은 어쩌면 이리도 에로틱한 분이란 말인가."
4권은 '안녕 절망선생'의 쿠메타 코지. "절망했다! 같은 만화가인데 삼세번을 죽었다 다시 깨어나도 못 미칠 압도적인 그 필력. 죽고 싶다. 하지만 죽어도 그 경지에는 못 미칠 것 같다."
다른 만화가들이 표현하는대로 요시카즈 화백의 필력은 엄청나다. 살아움직이는 것 같은 선.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눈빛 등. 미려하고 매력적인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내용 또한 실제 역사, 그것도 18세기 조선과 밀접한 이야기이니 실로 흥미롭다.
자유당의 혁명에 참여했다가 실패하고 체포되어 강제노역에 시달리다가 탈옥한 주인공 카노와 카자마. 1권은 탈옥의 여정과 홋카이도에서 벌어지는 일본인과 아이누족의 이야기. 그리고 끝에 김옥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2권에서 카노는 자기가 한 것이 올바르다고 입증할 뭔가를 필요로 하며 '왕도'를, 카자마는 출세만을 목표로 '패도'의 길을 가게 되며 결별하게 된다. 그러다가 카노는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한 김옥균의 호위역을, 카자마는 무츠 무네미츠의 밑에서 일하게 된다.
3권에서 카노는 카츠 카이슈의 밑으로 가 그의 배를 타고 역사의 뒤에서 여러가지 사건에 개입하는 역할을 담당, 청나라까지 가서 삼합회에 들어가게 된다.
4권은 청나라에서 벌어진 홍종우의 김옥균 살해 사건. 부관참시, 전봉준의 동학농민운동 등 조선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본격화, 카노는 동학농민운동을 지원한다. 그러나 동학농민운동으로 인해 청나라 군사의 개입과 이를 이용한 일본군의 개입, 청일전쟁의 발발까지. 아시아의 정의와 평화, '왕도'를 추구한 카노와 일본의 부국강병을 위해 조선을 지배하려는 무츠 무네미츠 휘하의 카자마. 이 둘의 운명은 역사와 함께 극적으로 치닫는다.
후반에 쑨원(손문)도 등장하지만 이후의 이야기는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중국의 근대혁명을 지원했던 일본인이 여럿 죽고 결국 실패했던 혜주 삼주전 의거(1900.10)가 이 작품의 마지막이기 때문. 이후의 이야기가 더 보고 싶지만 실질적으로 이 혜주 삼주전 의거가 주인공인 카노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것은 역사가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갑신정변, 김옥균, 동학농민운동, 전봉준, 흥선대원군, 명성황후, 청일전쟁, 쑨원...중고등학교 때 역사책에서 보던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주요 등장인물로, 역사적 사건들이 이야기의 배경으로 등장하며 익숙하면서도 기묘한 느낌을 준다. 일본인 만화가, 그것도 건담으로 유명한 사람이 그리는 조선을 둘러싼 청나라와 일본의 패권다툼. 무엇이 옳고 그른지 '왕도'를 논하는 이야기라니. 재미있게 볼 수 있으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일본인 입장에서는 불평등조약을 개정하고 청나라로부터 조선을 빼앗아 실질적인 지배하에 두며 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고, 나아가 서양 열강에게 맞설 정도로 일본을 강력하게 만들었던 무츠 무네미츠의 정치와 이념에 동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는 '왕도'는 그렇지 않다. 누가 누구를 지배함 없이 일본, 조선, 청나라 3국은 평등하게 서로 화합해야함을, 조선은 독립국가로서 존재해야 함을 말한다. 오카구라 덴신의 '아시아 주의'를 이야기하며 이는 일본이 침략전쟁의 구실로 삼았던 '대동아공영'과 다름을 이야기한다.
주인공인 카노는 무츠 무네미츠를 향해 '당신은 왕도를 벗어났기 때문에 일본을 망하게 할 것이다'라 말한다. 3국의 화합을 구상하던 김옥균을 사지로 내몰고, 청나라를 상대로 의롭지 못한 전쟁을 벌였으며 과다한 영토를 요구하고, 독립 보호라는 미명하에 조선을 지배하에 둠으로써 일본에 대한 증오가 양국 민중 마음속에 뿌리내리게 했으며 이는 아시아에 위해를 끼치는 행위라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이로 인해 결국 중국인과 한국인들에게는 반일감정이 깊이 뿌리박히게 되었고 지금까지 일본 하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상관없이 무작정 욕부터 하게 만들었다. 또한 기고만장해진 일본의 침략전쟁은 결국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핵폭탄 실험장으로 만들게 되어버리고 사실상 한번 망하게 되었으니 카노의 경고는 사실이 된 것이다. 일본의 이익을 위하여 '의롭지 못한', '왕도가 아닌', 사실상 '악'이 된 일본. 많은 일본인들이 인정하지 않는 사실을 이 만화에선 정확하게 밝히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옳은 듯 들리는 소리를 하는 무츠 무네미츠에게 하는 카노의 말은 '왕도', 그야말로 진짜 '정의'를 말하고 있다. 일본인 만화가의 손으로 그려내는 당시 역사속에서 보여진 일본 제국주의의 문제점들, 통쾌하면서도 복잡미묘한 감정이 드는 작품이다.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한번쯤 읽어볼만한 작품이다. 일본인들 역시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읽고 역사를 다시 한번 생각했으면 좋겠다. 한편의 잘만들어진 NHK 대하드라마를 본 것 같은 기분. 그것도 일본의 역사적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덧글
그나저나 추천사를 쓴 만화가 중 한 분은, 추천사와는 별개로 요즘 행적을 보면 '과연 읽어보고 추천사를 쓴걸까'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미묘하네요. 하하
재생을 그렷죠 전후 세대의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니 하지만 지금의 일본은 전쟁을 단순한 게임으로 보는 견해도 있어
건담 오리진을 보고 작가의 그림실력에 감탄했었는데 이것도 재미있어 보이네요. 기회가 되면 읽어 봐야지...
처음 비중있는 캐릭터처럼 등장한 힘센 아이누인은 다시는 나오지도 않고.
주인공 라이벌이랍시고 나온 놈은 배 폭발 시키는거 제외하고 라이벌 다운 행동을 하지도 않고,
그러면서 주인공은 그놈 죽으니까 내 반신이 죽었다는 등의 말을 하는게 별로 와닿지도 않았음.
무엇보다 주인공도 라이벌도 너무 뜬금없이 힘을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은퇴한 권력가 노인네가 별 경력도 없는 주인공을 배의 선장으로 삼고. 라이벌도 마찬가지로 광산업 종사했다는 위조 경력 하나만 가지고 힘을 얻고.
또한 만화에서 주인공이 목표로 하는 것에 대한 안티테제 같은 것이 부족하다고 느꼈음. 왕도니 뭐니 해봤자 결국 국가란 조폭이고, 그 시대의 대세는 식민지를 늘려가는 강대국인데. 과연 삼국이 협력을 했어도 삼국에게 모두 이익이 됬을 것인가... 구체적인 정치적 전략적 묘사 없이, 이렇게 하면 잘될거고 저렇게 하면 잘 안될거야. 라는 주인공의 왕도가 좀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 일본은 왕도가 아닌 길을 걷다가 국민들 모두 파시즘에 빠져서 망했지만, 그렇다고 삼국협력 체제를 갖췄어도 어느놈이 하나 병크를 터트려서 결국 다 망하는 전개를 가지도 않고 서양국가들을 잘 막아낼 수 있을거라는 전략적 정치적 상황이 만들어 질 수 있었는가 하는 근거가 좀 부족하다고 느꼈음.
카자마는 생각하시는 것처럼 라이벌까지는 아니고 주인공과 반대되는 패도의 길을 걷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캐릭터였을 뿐...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주인공의 '왕도'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여기서 '왕도'란 결국 일본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인의를 저버린 행위를 반대하는 이상론이니 정치적 전략적 묘사까지 나올 필요는 없었을 듯 싶습니다. 그런게 나왔으면 역사가 바뀌었을테니까요.
당일배송이 있어 좋네요!
2012/10/28 10:53 #
비공개 덧글입니다.
2012/10/28 18:47 #
비공개 답글입니다.그래선지 아이누족의 전통의상과 아이누족의 문화를 잘 표현해 놓았고 작품 속에서 보여주는 사상과 역사적 상황을 통해 과거의 일본사에 정통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지요.
ㅠ_ㅠ)bb 일본분인데 좋은 역사관입니다. 야스히코 님에 호감도가 1 오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