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몬스터 대학교 (Monsters University, 2013)
픽사 스튜디오의 4번째 작품이었던 '몬스터 주식회사'의 프리퀄 영화. 몬스터 주식회사의 단짝 주인공인 제임스 설리반과 마이크 와조스키가 대학시절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를 다룬다. 전작은 털복숭이 괴물 설리반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 반면, 이번에는 외눈박이 괴물 마이크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 스포일러 있음 >
겁주기의 1인자가 되어 몬스터 주식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귀여운 외눈박이 괴물 마이크. 하지만 작은 크기와 귀여운 생김새 때문에 어려서부터 왕따로 자란다. 할 수 있는 것은 겁주기에 대한 '공부' 뿐. 결국 겁주기학과의 명문인 몬스터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지만 학교 내에서의 취급은 역시 마찬가지. 반면 겁주기 명문 설리반가의 제임스 설리반은 그 핏줄에서 오는 큼직한 덩치과 화려한 포효소리로 주목을 받는다. 결국 마이크는 대학에서도 '공부'에 매진하여 성적면에서 설리반을 앞서기 시작하고, 자신의 천부적인 능력만을 믿고 공부는 안하던 설리반은 마이크에게 뒤쳐지기 시작한다. 앙숙과 같은 사이가 된 둘은 싸우던 도중 사고를 쳐서 학장의 눈 밖에 나고, 겁주기학과에서 퇴출되어 비명배터리학과로 강제 전과하게 된다.
다시 겁주기학과로 돌아가기 위하여 학교에서 열리는 겁주기 챔피언 대회에 참가하기로 한 마이크. 팀 배틀 형식이었기 때문에 마이크는 학교에서 가장 인기없는 왕따들의 서클 'OK(울지마 까꿍, Oozma Kappa)'에 합류하고, 부족한 인원을 충당하기 위하여 앙숙인 설리반을 끼워넣게 된다. 다른 괴물들보다는 모자란 왕따 괴물들의 팀 'OK'는 각자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친구들로부터 보충하고, 함께 공부하고 훈련하며, 자신의 특기를 최대한 살려내 각종 경기에서 차례차례 살아남고 최후엔 최강의 팀인 'ROR(으르렁 히어로, Roar Omega Roar)'와 맞붙게 된다.
통상의 디즈니 영화라면 여기에서 주인공들이 그동안의 노력의 성과로 최강의 팀을 이겨내는 것이 정석이겠다. 그리고 일단 이 영화에서 OK팀이 승리하긴 한다. 그러나 그 뒤에는 설리반의 부정행위가 숨겨져 있었고, 이로 인하여 더욱 더 심한 최악의 사고를 친 마이크와 설리반은 결국 퇴학당해버리고 만다.
마이크는 겁주기의 1인자가 되고 싶어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공부했지만, 무섭게 생기지 않은 외모와 목소리 때문에 결국 1인자가 될 수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은 이 영화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이 영화처럼 '실패자들'을 다룬 대부분의 작품은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전형적인 메시지를 보여준다. 지난번에 포스팅한 드림웍스의 '터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다른 제작사와는 다르면서도 성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에서 역시 픽사답다고 할 수 있겠다.
픽사는 이 작품에서 인생의 실패자들에게 '하면 된다'라는 허황된 말을 강요하기보다는 '안되는 것은 안된다. 하지만 다른 길이 있다'는 현실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다. 태생이 작고 귀여운 괴물인 마이크는 아무리 겁주기 이론을 공부해봤자 무서운 괴물이 될 수는 없다. 결코 어려서부터 동경하던 몬스터 주식회사의 겁주기 대원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2001년의 '몬스터 주식회사'를 통해 우리는 마이크가 몬스터 주식회사의 일원이 되었음을 기억하고 있다. 꼭 '겁주기 대원'일 필요는 없다. 겁주기 대원을 서포트하는 매니저로서 마이크 특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던 것이다.
또한 '몬스터 주식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꼭 '몬스터 대학교'를 졸업할 필요는 없던 것이다. 비록 마이크와 설리반은 '퇴학'이라는 극단적인 결말을 보여주지만 몬스터 주식회사의 밑바닥인 우편물 분리실부터 시작하여 차근히 상위 부서로 올라가는 과정을 엔딩스탭롤에서 보여준다. 이는 '대기업에 들어가려면 명문대학'이라는 고정관념을 부수기도 한다. 고졸사원 중에서도 기술직으로 대기업에 취업하여 웬만한 사람 부럽지 않은 연봉과 복지를 누리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살다보면 실패를 경험할 수 밖에 없고,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 있으며, 인생의 목표가 변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길을 찾아낼 수도 있다. 이러한 다른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생의 교훈'을 이 작품에서는 다루고 있다.
영화적 재미는 전작인 '몬스터 주식회사'보다 '몬스터 대학교' 쪽이 좀 더 낫게 느껴진다. '월E'나 '업(UP)', '토이스토리' 시리즈만큼의 임펙트는 없지만 기존의 픽사 애니메이션 정도로 '뛰어난 기술력'과 '어린이들을 위한 재미', '어른들도 생각해볼만한 철학' 이 모든 것을 담은 작품으로써는 충분하지 않나 싶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01년, '몬스터 주식회사'가 개봉했을 당시 3D로 털을 표현해낸 것이 화제였다. 설리반의 복슬복슬한 털은 당시 3D 기술로 재현하기 힘들었던 것. 하지만 2012년 '메리다와 마법의 숲(Brave)'에선 한층 리얼하고 복잡한 곱슬머리를 표현해내더니 이번 '몬스터 대학교'에서는 털의 표현은 이제 기본이라는 듯 모든 장면들이 리얼하면서도 기존 몬스터 주식회사의 그 느낌을 유지하게끔 절묘하게 잘 만들었다. 캐릭터들은 분명 3D 모델링 티가 팍팍 나는 2001년 '몬스터 주식회사'의 캐릭터인데 요즘 3D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자연스럽게 보이게 업그레이드되었고, 휘날리는 단풍잎과 불빛, 액체, 학내 풍경 등은 리얼함 그 자체였다. 본편 시작 전에 보여준 단편 '파란 우산'은 아예 실사에 그림을 덧칠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현실세계와 동일한 3D를 보여준다.
작품의 진행에 따라 성격의 변화를 보이는 괴물이 둘 있다. 하나는 주연인 설리반. 처음엔 자신의 가문과 재능만 믿고 잘난 척 하다가 서서히 마이크에게 밀리고, 마이크와 앙숙인 사이가 되었다가 함께 노력하며 자신의 결점을 마이크를 통해 보완하며 둘도 없는 친구사이가 된다. 또 하나는 마이크의 룸메로서 등장하는 도마뱀 괴물 '랜달 보거스'. 전작 '몬스터 주식회사'에서도 나오는 악역인데 이녀석은 처음엔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마이크의 조언으로 자신의 특기를 살려 최강의 겁주기 클럽인 'ROR'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ROR에 들어간 이후 ROR의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괴물들을 업신여기고 결국엔 못된 도마뱀이 되어버린다. 설리반과 보거스의 변화를 보면 확실히 친구를 잘 만나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전작 '몬스터 주식회사'에서는 외눈박이 마이크가 접수처의 메두사 괴물과 사내 연애를 즐기고 있었는데, '몬스터 대학교'는 연애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대학교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연애담이 일절 안나오는 것이 특이한 점. (대신 후반에 캐릭터 중 한명의 엄마가...) 이야기의 흐름에 집중하기 위하여 마이크의 연애나 설리의 연애를 빼버린 듯 싶다. 픽사의 댄 스탠론은 "로맨스가 끼어들게 되면 마이크와 설리의 관계에 대립되는 또 다른 관계가 형성되는 격이라 생각했다. 마이크와 설리의 관계가 이미 로맨스에 가까운 관계가 아닌가"라고 말했는데, 여러가지 의미로 위험한 발언인지도?
아이 때문에 부득이하게 3D 애니메이션은 더빙판만 보고 있지만 다른 작품에 비해 더빙이 만족스러운 편. 픽사 측에서 연예인을 쓰지 않도록, 기존 '몬스터 주식회사' 때의 성우를 그대로 쓰도록 특별 요청했다는데 그 덕분에 자연스러운 성우 연기를 들을 수 있다. 연예인의 어색한 성우 연기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안인지...
번역 역시 꽤 신경쓴 티가 나는데, 특히 겁주기대회에 참가한 각 서클 이름의 현지화가 꽤나 절묘하다.
울지마 까꿍(Oozma Kappa, OK), 으르렁 히어로(Roar Omega Roar, ROR), 죠스 됐다카이(Jaws Theta Chi, JOX), 파리똥눠(Python Nu Kappa, PNK), 슬금슬금 가봐(Slugma Slugma Kappa, EEK), 아따 으쓱으쓱(Eta Hiss Hiss, HSS) 등 원래의 뜻과 약어의 원어가 되는 발음의 특징 양쪽을 최대한 잘 살린 센스가 돋보인다.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추천 영화. 다만 CGV가 배급사와의 수익배분 문제에서 멋대로 배급사의 수익을 줄이고 CGV의 수익을 올리는 것을 요구하여 서울 내의 CGV에서는 몬스터 대학교를 상영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던데...덕분에 생각보다 상영관이 많지 않으니 CGV를 제외한 극장에서 잘 찾아봐야할 듯 싶다.
엔딩스탭롤이 다 오른 후에 깜짝 영상이 하나 더 나온다. 본편 내용과는 상관없지만 본편 내용 중에 등장한 한 캐릭터의 이후 이야기를 보여주니 놓치지 않고 보도록. 영화비도 올랐는데 비싼 돈 내고 온 이상 영화의 모든 요소는 빠짐없이 봐줘야지.
(2013.9.21 15:25 롯데시네마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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