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닥파닥 (PADAK, 2012.7.25)
이대희 감독, 김현지(고등어), 시영준(올드넙치), 이호산(아나고/농어), 안영미(놀래미/도미) 목소리 역
이대희 감독, 김현지(고등어), 시영준(올드넙치), 이호산(아나고/농어), 안영미(놀래미/도미) 목소리 역
한국판 '니모를 찾아서'라고 해야할까, 성인판 '니모를 찾아서'라고 해야할까.
픽사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Finding Nemo, 2003)'는 인간에게 잡혀간 아들 흰동가리 '니모'를 찾아 블루탱 '도리'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아빠 흰동가리 '말린'의 이야기와, 인간에게 잡혀가서 다른 열대어들과 함께 수조에 갇힌 '니모'가 수조를 탈출하여 바다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파닥파닥'은 수조에 갇힌 '니모'가 바다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수조탈출기와 비슷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기본 구성은 인간에게 잡혀 횟집의 수조에 갇히게 된 고등어 '파닥파닥'이 바다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수조탈출기이다. 하지만 관상용 수조가 아닌 횟집의 수조라는 살벌한 환경만으로도 이야기는 '니모를 찾아서'와는 완전히 딴판이 되어버린다. 상황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가 바로 이 '파닥파닥'이다.
'니모를 찾아서'는 꼬치고기(베라쿠다)의 습격으로 흰동가리 '말린'의 아내와 알들이 모조리 잡아먹혀버리는 충격적인 장면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유일하게 생존한 알에서 태어난 물고기가 지느러미가 짝짝이인 물고기 '니모'였다. 전체관람가 작품이지만 꽤 인상적인 장면에서 시작한 '니모를 찾아서'지만 성인층과 아동층에게 골고루 어필하는 픽사 작품답게 어른들에게는 생각할 거리와 감동을, 아이들에게는 웃음과 감동을 주면서 훈훈한 결말로 끝을 맺었다.
이 '파닥파닥'은 12세 이상 관람가 애니메이션이다. 최소 초등학교 고학년은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얼핏 보면 '니모를 찾아서'와 별 다를 바 없는 상황이지만 '횟집'이라는 살벌함 때문에 결국 12세 이상이 되어버렸다. 전체적으로는 감동적인 내용이지만 잔혹한 약육강식의 세계를 여과없이 보여줬기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한 '마당을 나온 암탉(2011)' 또한 전연령 작품이지만 원작이 되는 책은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추천도서인 것을 보면 약육강식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법칙도 아이들에게는 충격을 줄 수 있어 기피되는 요소라 할 수 있겠다.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은 처절한 약육강식의 세계를 보여준다. 사냥당한 동물은 잡아먹히면서 피와 살이 뜯기고 뼈와 내장이 드러나지만 어린이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교육 프로그램이 되어준다. 이처럼 처절한 약육강식의 세계를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온가족이 볼 수 있지만 해당 동물들이 의인화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당을 나온 암탉(2011)'에서 시작하고 얼마 안되어 폐사한 닭의 산이라던지, 족제비에게 계속하여 잡아먹히는 흰오리나 청둥오리, 그리고 최종 결말까지...'살기 위해 먹을 뿐'이라는 족제비의 대사가 자연의 법칙을 말해주지만 등장인물들이 차례차례 죽어나가는 것에 충격을 받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역시 전체관람가 작품인 '고 녀석 맛나겠다 (おまえうまそうだな, 2010)'는 좀 더 본격적으로 '먹고 먹히는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먹고 먹히는 관계'의 차이와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함께 묘사하며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은 '마당을 나온 암탉'과 동일하다. 표현적 측면에서는 잡아먹히는 아기공룡이 살점이 뜯겨나가고 갈비뼈와 내장이 드러나는 둥, 좀 더 리얼하지만 먹히는 쪽이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주연과 조연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감정이입이 좀 덜 되어서 아이들에게 주는 충격은 덜하다.
'감바의 모험'이나 '닐스의 모험' 등 어린 시절에 즐겨 보던 애니메이션이나 세계 명작 동화 등을 보면 의인화된 동물이 먹고 먹히는 묘사가 나오고, 어른이 되어 생각하면 잔인하다고 할 수 있는 장면 또한 많이 나온다. 명작에서 잔인함을 느끼게 된 것은 어찌보면 어른이 된 사람의 선입관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 '파닥파닥'은 확실히 말해 '잔혹한 애니메이션'이다. 애초에 횟집의 풍경은 잔인함 그 자체다. 살아있는 물고기를 즉석으로 껍데기를 벗겨내고 내장을 뽑아내며 살을 칼질하여 발라낸다. 종종 회칼질의 명인은 물고기를 죽이지 않은 상태로 살만 발라내는 묘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먹고 먹히는 관계'에 의해 물고기는 사람에게 먹히는 존재가 되었고 이 또한 자연의 섭리이긴 하지만 회는 그중에서도 가장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렇게 잔인한 꼴을 당하는 물고기를 의인화시켰으니 이 작품이 잔인해지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먹고 먹히는 관계'를 잘 표현한 명작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조차도 물고기는 의인화되지 않고 그냥 먹히는 '먹을 것'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횟집의 물고기들을 의인화시킨다는 발상은 실로 재미있다. 가장 잔인한 형태로 먹히는 생물을 의인화시키는 것은 그 결과가 잔혹해질 것이라는 것은 뻔하지만 좀처럼 시도하지 않는 표현이라 신선하기도 하다. 움직일 틈도 없이 수조에 가득 부어진 물고기와 킹크랩들. 눈동자가 죽어있는 우럭들. 몇몇 뒤집어져서 죽어있는 녀석도 있고, 다른 녀석의 꼬리 지느러미를 뜯어먹고 있는 녀석도 있다. 이런 녀석들을 의인화시키니 암울한 한편의 잔혹동화가 탄생한다.
이야기의 중심은 바다에서 갓 잡혀온 고등어 '파닥파닥'. 횟집 수조에 들어가게 되지만 이미 안에 있는 양어장 출신의 물고기들과 마찰을 빚게 된다. 양어장 출신의 물고기는 바다 출신이라는 도다리 '올드넙치'(도다리는 가자미인데 이름은 넙치라니!?)의 명령에 따라 자신들만의 폐쇄된 룰을 갖고 생존에 치중하게 된다. 그 누구도 고등어 '파닥파닥'처럼 탈출을 할 생각을 하질 않는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폐쇄된 룰은 제멋대로인 수수께끼를 내어 진 사람의 꼬리 지느러미를 순서대로 뜯어먹는 것. 그리고 가끔씩 들어오는 죽은 물고기를 나눠먹는 것이다.
올드넙치가 만들어온 수조 안의 룰을 무시하고 탈출에만 전념하는 파닥파닥은 올드넙치 일당과 계속하여 충돌하게 된다. 수조 안의 막내인 놀래미만이 파닥파닥에게 동조해갈 뿐이다. 하지만 올드넙치는 자유를 꿈꾸는 바다출신의 고등어 '파닥파닥'의 모습에서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생존법을 알려준 바다출신의 도다리를 겹쳐보게 된다.
이야기의 종극, 고등어 파닥파닥은 결국 탈출에 실패하고 그에 동조하여 뭔가 해보려던 막내 놀래미는 처참한 몰골이 되어버린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올드넙치가 선택하는 최후의 행동은 이 작품의 반전이자 백미. 이야기의 중심은 고등어 '파닥파닥'에서 도다리 '올드넙치'로 완전히 넘어가게 된다.
불가능에 대한 도전, 절망과 희망, 꿈을 잃어버린 자들과 꿈을 잃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자, 현실에 안주하며 잊고 있던 꿈과 희망 등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을 횟집 수조 안의 물고기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좋은 작품. 놀래미, 농어, 도미, 아나고(붕장어), 올드넙치(도다리), 파닥파닥(고등어) 등 각기 다른 개성적인 물고기를 통해 다양한 인간의 형태와 계급 구조를 잘 보여준다.
잃어버린 꿈을 되찾고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것에 도전하는 내용의 작품은 많고 많지만 이런 형태로 표현한 것은 없었기에 실로 참신하다. 파닥파닥의 결말과 올드넙치의 결말은 반전임과 동시에 실로 충격적. 각기 다른 두 주인공이 겪는 일들은 서로 반대되던 입장에서 어느새 같은 입장이 되고 정 반대의 결말을 걷게 된다.
한가지 인상적인 것은 이 작품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다. 뮤지컬은 노래를 통해 이야기의 흐름을 쉽게 이해하고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좀 더 확실하게 와닿게 하는중요한 표현기법이다. 이 작품에는 '악몽', '생각해봐', '용서해요' 총 3번의 뮤지컬이 나오는데 본편과는 다른 애니메이션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페이퍼 드로잉, 픽셀레이션, 디지셀 기법, 색연필 드로잉 등 국내에서는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다양한 기법을 시도하고 있다. 어찌보면 상당히 실험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이미 옛날부터 이런 다양한 실험적인 기법의 애니메이션을 뮤지컬 장면에서 틈틈히 써먹어왔다는 것이다. '판타지아'나 '덤보' 등에서 본 적 있는 이런 독특하고 실험적인 표현법은 최신 애니메이션인 '파닥파닥'에서도 참신함을 안겨준다.
뮤지컬에 쓰인 곡은 인디밴드 '네스티요나'의 요나가 작사작곡을 담당. 꽤 듣기 좋은 고퀄리티의 노래를 들려준다. 이 작품의 OST는 실제 음반으로는 발매되지 않고 디지털 음반으로만 발매되었다. 음반은 원곡 버전과 영화감독(요나) 버전 2종류가 있으며 같은 곡을 전혀 다른 느낌으로 즐길 수 있어 둘 다 추천할하다.
이 작품은 흔해빠진 아동용 애니메이션처럼 연예인들을 내세우고 있지 않다. 아무리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라해도 성우 연기는 어설플 수 밖에 없는데, 이 작품은 투니버스 출신의 탄탄한 실력의 전문 성우들로 구성되어 있어 목소리 연기는 최상급. 게다가 뮤지컬 파트에선 제법 느낌있는 노래도 들려준다. 김현지(고등어)의 '악몽'을 시작으로 이호산(아나고)의 능글한 연기와 보컬이 일품인 '생각해봐', 작품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감동을 주는 김현지(고등어)와 시영준(올드넙치)의 '용서해요' 등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의 속내를 충분히 느끼게 해주는 보컬곡들은 큰 즐거움을 준다. 개인적으로 주인공 역인 김현지의 청아한 목소리도 좋지만 악역인 붕장어 '아나고'를 연기한 이호산의 능글한 보컬곡 '생각해봐'가 참 맛깔스럽다고 느껴졌다. 계속해서 '생각해봐~'하는 노래가 머릿속에 맴도니 말이다.
한국은 뮤지컬에 취약한 국가이다보니 아무래도 대다수가 뮤지컬은 이야기의 몰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나역시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작품 역시 처음엔 갑자기 전혀 다른 그림체로 마치 한편의 실험 애니메이션이라 할 수 있는 장면과 함께 나오는 보컬곡들은 갑자기 '이건 뭐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곡의 가사와 멜로디를 음미해보면 등장인물의 심리를 훨씬 심층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그에 걸맞게 표현된 실험적인 애니메이션 역시 국내에선 볼 수 없던 참신함에 감탄하며 즐길 수 있다. 아예 보컬곡들만 따로 즐기는 것 또한 좋다. 음악감독 버전과 비교하면서 들어보면 새로운 즐거움이 있다. 네스티요나의 팬인 경우라면 요나 버전을 먼저 구입해서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
전체적으로 암울한 분위기에다가 가끔씩 나오는 잔혹한 장면, 희망적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뒷맛이 찝찝해질 수 있는 결말, 국내에선 취약한 뮤지컬이란 장르 때문에 선뜻 남에게 추천하기엔 힘든 작품이지만 꽤 괜찮은 애니메이션이라 생각한다. 성우들의 연기, 삽입곡들의 완성도, 기승전결과 절묘한 반전, 독특한 표현기법 등 전체적으로 상당히 잘 만들어진 명작. 다만 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횟집에 가기가 조금 꺼려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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