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장난감이냐 어른의 수집품이냐에 대한 영화, 레고 무비 (The Lego Movie , 2014) 영화감상

레고 무비 (The Lego Movie , 2014)

레고판 토이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작품. 평범함과 특별함, 장난감과 수집품, 어른과 아이에 대한 이야기. 전연령 대상의 가족영화로,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생각할 여지를 주는 작품이다.



1986년, 영실업에서는 1970년대의 플레이모빌 금형을 이용하여 '영플레이모빌' 시리즈를 정식발매하게 되었다. 오리지널처럼 손목 관절이 회전하지도 않고, 흑인 캐릭터는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영플레이모빌은 새로운 신세계의 장난감이었다. 당시 좀 사는 아이들은 영플레이모빌을 모으거나 레고를 모았는데 나는 영플레이모빌파였다. 1980년대 당시에도 레고는 꽤나 고가품이었고 같은 가격이라면 훨씬 큼직한 영플레이모빌 쪽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느날 너무나 갖고 싶던 영플레이모빌을 부모님이 사오셨다. 내것은 천몇백원짜리 공사장 인부였다. 동생것은 2천몇백원짜리 아기침대였다. 내것에는 공사장 인부 한명과 수레형태의 로드롤러가 들어있었고, 동생것에는 엄마(유모?) 1명과 침대 2개, 아기 2명이 들어있었다. 2년차인 동생과 내게 부모님은 나름 공평하게 같은 물건을 선물했지만 내가 2년 전에는 그런 것을 누리지 못했음을 국민학교 저학년인 나도 알 수 있었고 그것이 불만이었다. 용돈 또한 같았지만 난 그렇게 어린 시절에 용돈을 받지는 못했다. 하물며 같은 영플레이모빌을 받았는데 동생 쪽이 오히려 비싸고 좋은 것을 받았으니...그동안 쌓여온 감정이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즉각 그 불공평함에 대해 항의(부모님 입장에서 보기엔 징징댐)를 했지만 부모님은 동생 것보다 부족한 금액만큼을 현금으로 지불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난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받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받은 현금으로는 갖고 싶은 장난감을 살 수도 없었다. 이왕 받는 것 좋은 영플레이모빌을 받고 싶었다. 그리고 2년 전의 나는 누릴 수 없던 것을 동생이 누리고 있음에 대해 나는 동생보다 좀 더 나은 대우를 받기를 원했다. 항상 장남이라며 행동이나 공부 등 많은 제약을 받으며 자라온 나는 최소한 장난감이라도 동생보다 좀 더 낫게, 용돈도 동생보다 좀 더 낫게 받기를 바랬다. 2년이라는 세월을 무시하고 동생과 나를 공평하게 대하고, 때로는 내가 더 대우를 받지 못함에 대하여 항의를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몽둥이 뿐이었다.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된 이 사건. '내 최초의 영플레이모빌' 사건의 주인공인 이 영플레이모빌 공사장 인부는 그야말로 내게 골칫덩이였다. 공사장 인부 캐릭터는 조금도 귀엽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았다. 손수레 형태의 로드롤러 역시 아무짝에 쓸모 없었다. 동생은 무려 어른 1명에 아기 2명해서 사람이 3명이나 들어있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모처럼 생긴 장난감을 버릴 수도 없었다. 이 밉살스러운 공사장 인부를, 장난감 놀이 할 때에도 제대로 된 역할을 줄 수 없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애물단지를 어떻게 하면 '특별한 장난감'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 '평범한' 공사장 인부 아저씨를 '특별한' 아저씨로 만들기로 한 것이었다.

이 공사장 인부 아저씨는 어느날 공사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높은 산에 오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 산의 정상에서 마침 1억 5천만년만에 잠깐 출몰한 거대한 우주의 에너지와 마주치게 되고 그곳에서 불사의 몸과 엄청난 힘과 지혜를 얻게 된다. 다음날로 아저씨는 공사장 인부를 그만두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동네에 작은 슈퍼마켓을 차렸다. 이 슈퍼마켓은 자신이 열고 싶을 때에만 열고 닫고 싶을 때에만 닫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명명한다. 나는 '슈퍼 아저씨'라고...

이런 설정으로 곧바로 동생과 장난감 놀이를 시작했다. 동생은 나의 설명을 멍하니 듣고 있었다. 그리고 '슈퍼 아저씨'라 명명한 직후, 슈퍼 아저씨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마치 슈퍼맨처럼 말이다. 동생은 벌떡 일어났다. 이 '슈퍼 아저씨'는 우리집에 있는 수많은 장난감 중에서 '가장 강한 존재'라는 설정이 부여되었다.

이로 인해 평범하긴 커녕 구성품이 형편없어서 갖고 놀 일조차 없던 장난감이 '특별한' 장난감이 되었다. 동생은 이 설정에 푹 빠져서 자신이 갖고 있던 아기 2명도 그렇게 만들어달라고 졸랐고 결국 '슈퍼 아저씨'의 힘을 나눠줘서 '슈퍼 애기'로 만들어줬다. 이로써 '평범한' 아기 장난감 2개는 '특별한' 아기 장난감이 되었다.


이런 내가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에 하던 장난감 놀이 속에 담긴 설정과 이야기는 지금 보면 참 유치할 따름이지만 그 속에는 의외로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 저 과정에서는 마음의 아픔을 견뎌내고 이를 강점으로 승화시키려는 한 어린이의 의지가 담겨있었고 '평범함' 이하의 것을 '특별함'으로 바꾸려는 치밀한 계획이 담겨있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레고 무비'의 주인공은 공사장 인부다. 그것도 아무런 개성도 없는 평범한 레고. 공사장 인부 레고일 뿐이다. 심지어는 다른 공사장 인부는 나름 좋아하는 것이 있고,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있지만 이 주인공은 남들과 어울리기 위해 남들에게 맞추기만 한 결과 자신의 색을 잃어버린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녀석이 되어버렸다. 여자친구나 남자친구는 커녕 친한 지인 한명도 없는, 반려동물조차 없는 이 주인공은 그야말로 밑바닥 중의 밑바닥일 뿐이다. 이 평범한 공사장 인부 '에밋'은 어느날 우연히 '전설의 조각'을 줍게 되고 그로 인해 '마스터 빌더'라는 이름의 레고계의 특별한 능력자가 되어버린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이 이야기는 내가 어린 시절에 하던 장난감 놀이처럼 각기 다른 세계관의 캐릭터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여서 난장판을 만들어낸다.

현대사회에서 갑자기 서부시대로 가기도 하고, 중세 유럽도 배경으로 등장한다. 캐릭터로는 배트맨이 등장하기도 하며, 같은 DC히어로인 슈퍼맨과 그린랜턴, 원더우먼, 플래시 등도 찬조출연을 한다. 닌자거북이도 나오며 링컨 대통령도 나온다. 간달프와 덤블도어가 함께 있으며 NBA 스타였던 샤킬 오닐 또한 레고로써 등장한다. 고유의 BGM과 함께 스타워즈 캐릭터들도 등장한다. 전혀 다른 세계관의 캐릭터들이 마치 아이들이 하는 장난감놀이처럼 '레고'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써 서로 만나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이 작품은 '레고'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모든 것을 '레고'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불이나 물, 연기도 모조리 레고 블럭을 이용하여 묘사하고 있고, 그것에 움직임과 변화를 줘서 제법 그럴싸한 영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만 반창고나 본드 등은 레고가 아니라 실제 레고에 대비하여 인간이 사용하는 실제 물건 그대로 큼직하게 등장한다. 3D로 만들어졌지만 스톱모션 기법을 이용하여 마치 실제로 장난감이 딱딱하게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표현기법 또한 인상적. 이야기 속에서 레고 캐릭터들은 실시간으로 설명서 없이 레고를 조립하여 자신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들어내고, 이런 능력을 가진자를 '마스터 빌더'라고 부르는 것 또한 인상적인 설정이다.



< 스포일러 있음 >




이런 '평범한' 주인공이 '특별한' 무언가가 되는 것은 상당히 전형적인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백미는 후반부에 시작된다. 전설의 조각을 주운 사람이 마스터 빌더라는 말은 사실 거짓말이었으며, 그 말이 진짜라 생각한 평범한 주인공은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악당 대장인 로드 비지니스가 전설의 조각을 던져버린 웜홀로 뛰어들게 되는데, 한참 떨어지던 끝에 주인공이 도착한 곳은 현실세계였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도중 주인공은 가끔씩 레고세계가 아닌 것의 환상을 보기도 했고, 레고세계에 레고가 아닌 레고에 비해 거대한 실제 사이즈의 접착제나 반창고 등이 등장하는 것이나, 이야기의 흐름과 설정이 어째 아이들의 장난감 놀이 같은 유치함을 보여주는 것 등에서 기묘한 위화감을 보여줬다. 그런데 결국 진실은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한 아이가 아빠의 레고 수집품 위에서 자신의 레고들을 갖고 놀면서 만들어낸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악당 대장인 로드 비지니스는 아이의 아빠를 형상화한 캐릭터로, 갖고 놀아야할 레고를 '완벽한 형태'로 조립 후 접착제로 굳혀서 전시품으로써 만들어버리는 행동을 한다. 주인공들은 아이의 마음을 대변한 캐릭터로 레고를 수시로 분리했다가 조립했다가를 반복하며 설명서 없이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을 내세운다.

영화가 현실세계가 된 뒤, 곧 아빠가 내려오고 아빠의 컬렉션룸에서 놀고 있는 아이에게 왜 여기에서 놀고 있냐며 꾸짖고, 수집품에 자기 멋대로 손을 댄 것을 나무란다. 하지만 곧 아이가 만든 레고의 기발함에 감탄하게 되며 아이에게 이야기의 결말을 묻는다. 결말은 둘의 화합. '완벽한 레고'를 이용하여 주인공들의 '자유로운 레고'를 만들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 '전설의 조각'은 레고를 고정시켜버리는 본드 뚜껑으로, 본드의 뚜껑을 닫는 것으로써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여지를 남기게 된다.


레고는 분명 설명서가 들어있고 설명서대로 조립하면 표지에 나와있는 멋진 모양을 만들 수 있는 조립식 블럭완구다. 하지만 블럭완구의 특징은 생각하는대로 자유로운 모양을 만들 수 있는 것. 비록 어이없는 형태가 나온다고 할 지라도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완구인 것이다. 이 작품은 레고 회사의 레고 제품 광고라 할 수 있는 영화지만 주제를 잘 선정하여 '레고란 무엇인가'를 고찰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설명서대로의 '완벽한 형태'와 '자유로운 발상' 둘의 화합이 이 영화의 테마이자 '레고란 무엇인가'에 대한 레고 회사의 대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완벽한 형태'를 추구하는 아빠와 '자유로운 발상'을 추구하는 아이의 화합 또한 '어른의 수집품'과 '아이의 놀이'의 화합을 도모한다.

픽사의 영화 '토이스토리 2'에서 '장난감은 갖고 놀 때 가장 행복하다'는 주제를 내세운 적 있다. '장난감은 수집품이 아냐'라고 직접적인 대사 또한 나온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장난감은 어른들의 장식품이나 수집품으로써도 잘 활용되고 있다. 레고가 8세~14세 제품이라는 아이의 말에 아빠는 그건 그렇게 쓰는 것이 원칙이라서 그렇지 이것은 건축공학적인 제품이라고 답변을 한다. 영화에서 둘의 화합을 내세우지만 사실상 아빠의 수집품에서 아이가 놀 수 있음을 허락함으로써 '어른으로서의 놀이 방법(수집과 전시)'은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심지어는 어린 여동생까지 놀 수 있게 허락함으로써 '모든 것의 파괴'까지 암시하니 말이다. 이런 면에서 진정한 '둘의 화합'이라기보단 '어른의 포기'에 가까운 결말이 조금은 안타까운 점.

아이의 장난감도 어른의 수집 영역이 되는 요즘 세상에서는 이왕이면 아이도 '어른으로써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건전한 취미'인 '수집'의 영역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 또한 제대로 된 '둘의 화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아이가 '서로에 대한 인정'을 결말로 내세운 것을 보면 아빠의 수집품을 모조리 파괴하여 재조립하진 않을 것 같지만 문제는 '모든 것의 파괴자'인 여동생일 듯 싶다. 애초부터 15세나 18세 이상 연령등급으로 제작되는 피규어의 경우엔 레고와 경우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 '모형'이라는 물건이 가지는 '어른의 수집품'과 '아이의 장난감' 사이의 딜레마는 현대 사회의 새로운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사회적으로는 이런 '수집의 영역'이 엄연히 존재함은 인정하게 됐지만 그 존재 자체가 일반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인지되는 것은 여전한 듯 싶다. 과연 아빠의 '모형 수집'이 일반적인 기준으로써 제대로 인정받게 되는 날은 언제일까.


기본적으로는 아동용 영화지만 후반부에서 갑작스럽게 어른들을 위한 영화가 되기도 하는 가족영화. 아이들을 데리고 보기에도 좋고, 레고에 대해 잘 알거나, 수집이 취미인 어른들이 보기에도 좋을 듯 싶다.

(2014.2.28 13:05 목동 메가박스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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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나이브스 2014/03/01 10:16 #

    콜랙션으로 봉인 당할 것이냐?

    아님 장난감으로써 놀 것이냐?

    생각보다 이 문제는 꽤 심도 깊네요.
  • 플로렌스 2014/03/01 10:35 #

    그것과는 좀 다른 문제지요. 어른의 조립과 진열, 수집 또한 하나의 '삶의 낙'인데 그것을 포기하고 아이에게 갖고놀라고 모조리 주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인가 하는 문제. 진정한 '둘의 화합'은 결코 '모든 것의 포기'가 아니니까요.
  • 2014/03/01 12:3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3/01 13:0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눈물의여뫙 2014/03/01 14:33 #

    결말부분의 메시지가 너무 뻔하고 콜렉터들의 입장을 좆부심 취급하는 뉘앙스가 강해 보이지만은.

    그래도 그것과는 별개로 레고의 방향성을 논하는 컨셉이나 스토리라인은 꽤 적절하고 좋은 것 같습니다.
  • 플로렌스 2014/03/02 00:56 #

    레고 영화 중에서는 가장 괜찮은 작품이었지요.
  • 알트아이젠 2014/03/01 16:07 #

    제 경우에는 아버지가 아이를 인정하는 것으로, 레고의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참된 가치를 일깨워주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들과 같이 노는 아버지 표정에서 어른의 취미를 포기했다고 생각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나저나 레고는 아니지만 취미가 취미인지라, 여러가지가 생각나네요.
  • 플로렌스 2014/03/02 00:59 #

    말씀하신대로 아버지가 아이를 인정하는 것으로 레고의 참된 가치를 일깨워준다는 것이 영화의 결말이자 주제 맞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영화의 결말은 어른쪽의 일방적인 양보와 포기로 매듭지었지요. 참 쉽고 기쁘게도 포기하게 표현되어서...
  • 잠본이 2014/03/02 00:10 #

    결국 여동생이 주인공 아이의 작품들을 파괴함으로써 주인공은 아버지가 자기 때문에 느꼈던 좌절감을 그대로 느끼게 될 것이므로, 아버지의 '너도 한번 당해봐라'라는 복수심의 발로인 것입니다(헛소리)

    진정한 교훈은 '애를 낳을 거면 덕질은 바이바이'가 아닐는지 OTL
  • 플로렌스 2014/03/02 01:01 #

    모든 것을 파괴하겠다! 라는 여동생 레고의 선전포고. 아들의 절규가 어째 틀리지만은 않은 기분이...진정한 교훈이 맞긴 하군요. (T_T);
  • 줴이 2014/03/02 00:18 #

    지극히 평범한 에밋이 특별한 존재로 성장해 가는 것, 그리고 레고시티 주민들이 모두 마스터 빌더로 성장하는 것을 보니 뭔가 뭉클해졌습니다.
    혹시, 특별하지 않는 나도 저들처럼 특별해지지 않을까 하구요.
  • 플로렌스 2014/03/02 01:02 #

    전형적이지만 꿈과 희망이 담겨있어서 좋은 내용이지요.
  • 일렉트리아 2014/03/02 01:28 #

    그러고보니 요센 싸구려 옛장난감 갖고 개나 소나 프리미엄붙히고 애들보고 '너희들 살 물건아니다.'라고 짖거리는 집단도 있다더군요
  • 플로렌스 2014/03/02 01:32 #

    집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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