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의 '소격동'과 서태지의 '소격동' (2014.10.10) 뮤직머신

아이유의 '소격동'(2014.9.30)과 서태지의 '소격동'(2014.10.10)


2008년에 8번째 정규앨범이자 4번째 솔로앨범인 'Atomos'가 발매되고 어언 6년. 기다리던 새로운 음반 소식 대신에 비밀 결혼과 이혼, 재혼에, 득녀까지 그다지 듣기에 좋지 않은 사적인 일로만 이슈화되던 서태지가 드디어 새로운 음반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리고 새 앨범에 대한 이벤트의 일환으로 앨범 수록곡 중 하나인 '소격동'이란 곡을 아이유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공개하기로 결정, 리고 9월 30일, 드디어 아이유가 부른 서태지의 곡, '소격동'이 공개되었다.


서태지 작사/작곡, 아이유 보컬 버전의 '소격동'. 서태지의 정규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는다.




곡은 전자음향으로 가득한 일렉트로닉. 다만 댄스곡이 아니라 발라드라는 것이 특징이다. 다음에 올 음이 예측 불가능하게 의도적으로 어긋나는 듯한 멜로디 전개는 역시나 서태지스럽다. 지극히 서태지 같은 곡을 아이유의 보컬로 듣는 것은 확실히 새롭다. 다만 아이유의 보컬은 꽤나 귀에 감기는 매력이 있음에도 음악에 묻히는 듯, '소격동'에서는 아이유의 보컬도 하나의 악기화를 시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통상 보컬이 강조되는 다른 음악들과 달리 서태지의 노래는 보컬과 악기를 같은 비중으로 두는 경향이 있는데(그래서 가사를 알아듣기 힘들기도) 아이유 역시 그렇게 활용한 것일까. 서태지가 부른 소격동에 비하면 아이유는 양호한 편이었지만.

소격동에 대한 감상은 나쁘지 않지만 좋지도 않은. 오랜만의 서태지다운 노래지만 귀에 확 들어오지는 않는 것이 문제일까. 풍성하고 다채로운 사운드는 괜찮은데 멜로디 전개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재밌는 것은 '소격동'이란 제목과 가사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 서태지가 어렸을 때 살았던 곳이 소격동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추억을 노래했다는 것이 공식적인 발표인데, 서태지답게 시대 비판도 포함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의견. 소격동에는 그 옛날 군부독재 시절의 기무사가 있었고, 기무사 주도하에 '녹화사업'이라는 것을 벌여 민주주의 시위를 하는 대학생들을 닥치는대로 잡아들여 군대에 보냈고, 그 중 6명이 군 내에서 의문사(살해로 추정)하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뮤직비디오에서 학생들은 교련복을 입고 있고(군부독재 당시엔 학생들에게 교련복을 입히고 군사훈련을 시켰다) 소녀와 소년이 만났을 때 소녀의 라디오에서는 '녹화사업'에 대한 정부의 발표가 흘러나온다. 서태지 측에서는 그냥 뮤직비디오의 소품일 뿐이라하지만 음악을 도중에 잘라먹으면서까지 넣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 아닌가.

멜로디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전개도 아니고, 일렉트로닉과 발라드의 조합은 국내 가요계에서는 흔한 장르는 아니지만 모든 음원차트에서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하여 '역시 서태지'란 말을 듣게 되었다. 서태지와 아이유의 조합은 언론과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기엔 충분했으며 이러한 정황과 아이유가 부른 버전 외에 서태지가 부른 버전도 곧 발표한다는 말은 기대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서태지가 부른 소격동은 아이유가 부른 소격동과 편곡이 다르다고 하니 말이다. 서태지는 자신의 곡을 스스로 리메이크하며 다양한 버전들을 선보였는데 그 편곡이 절묘하여 많은 호평을 받은 적 있다. 1집 시절 '환상 속의 그대'만 하더라도 '테크노 믹스'라 하여 다양한 버전으로 리믹스한 적 있고, 2집 시절 '너에게'는 재즈풍으로, '하여가'는 레게 풍으로 리메이크 한 적 있다. 1집 '이제는'과 2집 '너에게'를 합쳐 완벽하게 하나의 새로운 노래로 만들었던 '95 다른하늘이 열리고 버전의 '너에게(통칭 이젠 너에게)'나, 솔로로 전향한 뒤 락 버전으로 편곡한 '난 알아요'나 '너에게' 등등.

사람들 역시 서태지가 부른 버전에 기대를 하며 '소격동'의 가사를 거꾸로 하면 다른 의미가 된다던지 하는 말까지 퍼지며 '소격동'이란 곡에 지나치게 깊은 의미까지 부여하였다. (서태지에 대한 거품은 대부분 팬들이 만든다. 거품을 걷어도 나쁘지 않은 뮤지션인데 거품 때문에 안티들에 의해 지나치게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서태지가 부른 '소격동'이 10월 10일 발표되었는데...


서태지의 '소격동'. 표지 일러스트가 묘하게 불안감을 준다.




솔직히 말하자면 실망. 아이유가 부른 버전과 다른 편곡을 지나치게 기대했기 때문이려나. 편곡은 아이유 버전과 장조의 차이만 있을 뿐 거의 동일하다. 사람들이 기대한 것처럼 완전히 다른 곡으로 재탄생하거나, 가사가 바뀌거나 하지는 않았다. 또한 서태지 특유의 보컬을 악기화 하는 스타일 때문에 음악 속에 보컬도 묻혀 가사도 잘 들리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도 기대에 비해선 실망한 듯 하지만 아이유로 인한 관심의 증폭 때문인지 올 차트 2위까지는 기록. (1위는 악동뮤지션의 신곡 '시간과 낙엽'이 차지했다.) 아이유의 힘은 확실히 컸던 것 같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귀에 감기는 것은 역시 서태지답다고나 할까. 하지만 곡 자체는 막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것이 감상. 사운드는 나쁘지 않은데 역시 멜로디 메이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다음 발표된 '크리스말로윈'을 들어보면 새로운 음반을 어느정도는 기대해볼만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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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나이브스 2014/10/18 11:49 #

    확실히 소격동만은 아이유에게 어울리더군요.

    근데 서태지 버전과 아이유 버전 가만히 들어보면

    서태지 버전이 첫 시작음이 더 하이톤이더군요.

    오히려 아이유 버전이 중저음 쪽...
  • 플로렌스 2014/10/18 12:53 #

    오, 예리하시네요. 여성보컬 쪽이 오히려 음이 낮게 잡은 것이 특이하지요.
  • Fact_Tomoaki 2014/10/18 12:17 #

    저도 확실히 소격동은 아이유한테 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는 크리스말로윈도 딱히 ATOMOS 시절과 분위기가 딱히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아서 실망감이 점점 커져가네요.
  • 플로렌스 2014/10/18 12:56 #

    Atomos 시절 이미 락에서 이쪽 노선으로 갈 것이 예측되긴 했는데...분위기와 별개로 크리스말로윈 곡 자체는 맘에 들더군요.
  • Fact_Tomoaki 2014/10/18 18:18 #

    뭐랄까, 제가 실망을 느꼈던 점은 음악 장르에 실망을 느낀 것이 아니라 막연한 기대였던 "이번에는 또 어떤 새로운 음악이 나올까"였는데 전작과 별반 달라진 점이 없었다는 점에서였습니다.
  • 진보만세 2014/10/18 14:47 #

    좋은 비교 감상평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플로렌스 2014/10/19 05:49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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