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수많은 비밀이 있다 - 허즈번드 시크릿 읽거나죽거나

허즈번드 시크릿
리안 모리아티 저/김소정 역 / 마시멜로


지난번에 읽은 '기억을 잃어버린 앨리스를 부탁해(What Alice Forgot)'의 작가 리안 모리아티의 또다른 소설 '허즈번드 시크릿(The Husband's Secret)'을 읽었다. 지난 번의 '기억을 잃어버린 앨리스를 부탁해'도 일상 속에 수수께끼를 하나 던져 놓고 마치 추리소설처럼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구조가 일품이었는데 이 소설 역시 그렇다.'판도라의 상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책은 제목처럼 '남편의 비밀'이 수수께끼의 핵심이다.



세 딸을 키우는 평판 좋은 퍼펙트 맘이자 멋진 남편 존 폴의 아내인 세실리아는 다락에서 우연히 '반드시 내가 죽은 뒤에 열어볼 것'이라고 쓰여진 남편의 편지를 발견한다. 그 편지를 발견한 이후 그간 남편의 모든 행동이 이상했음을 느낀 세실리아는 결국 편지를 열어본다. 그 편지에서 세실리아는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충격적인 사실에 절망하게 된다.

초등학생 리엄의 엄마인 테스는 시드니에 사는 자신의 어머니가 다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테스의 유일한 친구이자 어렸을 때부터 모든 것을 함께 해온 사촌 펠리시티가 자신의 남편인 윌과 서로 사랑에 빠졌다는 두사람의 고백을 듣는다. 화가 난 테스는 리엄을 데리고 시드니로 떠난다. 그곳에서 테스는 옛날에 사귀었던 남자 코너 휘트비를 만나 열정적인 육욕을 불태운다.

레이첼 할머니는 아들 내외가 사랑하는 손자 제이콥을 데리고 뉴욕으로 떠나버리는 것이 영 마땅치 않다. 레이첼이 젊었을 때 자니라는 딸이 있었는데 어느날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채로 발견되어버린다. 그 끔찍한 사건 이래 여전히 사건에 얽매여서 살고 있는 레이첼은 자신과 같은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체육교사 휘트니 코너가 범인이라 생각한다. 자니가 마지막으로 만난 인물이 그 누구에게도 비밀로 한 남자친구 코너 휘트비였기 때문이다.

소설은 이 각기 다른 세 여자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완벽한 여성으로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끌며 행복하게 살던 세실리아는 남편의 편지로 인해 불행이 시작되고, 테스는 남편과 가장 친한 친구인 사촌과의 사랑으로 인해 불행이 시작된다. 레이첼 할머니는 30년 전의 불행이 지금까지도 지속되며 벗어날 수가 없다.

무대만 같을 뿐 전혀 접점이 없던 세 여성과 그 가족의 이야기는 이야기가 진행되며 서서히 합쳐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의 불행은 서로 얽히고 섥히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다. 결정적인 것은 세실리아가 발견한 존 폴의 편지 속에 담겨있었다. 결국 이들의 불행은 점점 극으로 치닫고 맨 끝에는 극단적인 결과를 낳는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들끼리 실은 긴밀하게 관계가 있었고, 그것이 이 사람들의 인생에서 각각 치명적인 영향을 주고 받게 되는 것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쉽게 말해 '나비 효과'나 '인과 응보'로 말할 수 있다.

역사적인 '베를린 장벽' 사건부터 시작하여 인기있는 TV 방송 프로그램 『도전! FAT 제로』까지 이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재미있다. 특히 베를린 장벽은 그들의 부모 세대에서부터 자신의 세대, 그리고 이들의 자식 세대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모든 것은 '다 베를린 장벽 때문이다'라는 서문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생에는 많은 비밀이 있고,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으며 어떤 비밀은 영원히 비밀로 남는다는 것. 그리고 인생이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의 비밀들로 인해 사람들은 때로는 행복해질 수도, 불행해질 수도 있다. 쉽게 말해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것'이란 결론을 내게 만드는 것이 이 소설의 이야기이다.

누군가에게 끔찍한 불행을 안긴 어떤 사람의 불행은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또다른 불행을 낳고, 알고보니 최초의 불행은 애초부터 예정된 불행이었다는 것. 인간이 어찌해보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정해진 불행. 이런 일들을 다양한 사람들의 얽히고 섥힌 인생을 통해 치밀하게 묘사해낸 것이 재미있다.

모든 일이 끝난 뒤에도 '불행'은 여전히 남아있어 안타까움이 남지만 이 또한 사람 인생 아닌가.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만약의 미래'를 보여줌으로써 등장인물들이 결국 소설 속의 인물임을 느끼게 해주는 것 또한 재미있는 점이다. 이야기의 시작에서 작가가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를 하며 알렉산더 포프의 말을 빌어 '인간의 영역'과 '신의 영역'을 언급하는데 전지적 작가 시점의 이 소설에서 작가는 최종적으로 '신의 영역'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이 소설의 인물들이 결국엔 허구임을, 그리고 어떻게 해볼 수 없이 흘러가는 것이 인간의 인생임을 느끼게 해준다.

사람들의 불행과 그 인과관계를 몰입도 높게 묘사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엔 워낙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펼치니 집중하기 힘들었지만 그것들이 서서히 모여 하나로 완성되었을 때의 느낌은 짜릿하다. 3개의 인생과 3개의 불행.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의 이야기이다. 영화로도 제작된다고 하는데 이 밀도높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어떻게 다뤄낼 지 기대된다.




덧글

  • rumic71 2015/03/26 17:06 #

    제목을 왜 그냥 '남편의 비밀'로 하지 않은 걸까요. 요즘 출판계는 생각이 없는 건지 너무 많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 플로렌스 2015/03/26 17:28 #

    언제부턴가 출판계나 영화계나 영어 제목을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쓰는 풍조가 생겼더군요. 덤으로 원제엔 없는 부제 만들어서 붙이기라던지...아마 이 책은 영화화 한다고 하니 이를 의식한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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