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Mad Max: Fury Road, 2015.5.14 개봉)
조지 밀러 감독, 톰 하디/ 샤를리즈 테론 주연
조지 밀러 감독, 톰 하디/ 샤를리즈 테론 주연
고전 명작 '매드 맥스' 시리즈의 30년 만의 신작. 1979년에 전설적인 첫 작품 '매드맥스'를 시작으로 1981년에 제대로 된 명작 '매드맥스 2: 로드워리어', 1985년에 미묘하긴 했어도 화려했던 '매드맥스 3: 비욘드 썬더돔'이 나온 이래 30년 만에 신작이 나오다니! 그것도 시리즈의 감독이었던 조지 밀러가 직접 최신작을 담당했다니 여러모로 감개무량하다.
아마 이번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성공 덕분에 전설의 명작을 다시 찾아보는 사람 또한 많을 듯. 전설의 만화 '북두의권'을 비롯하여 셀 수 없이 많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원전이 되는 작품이 바로 '매드맥스'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사람들 또한 많을 수도 있겠고, 개봉년도와 당시 시대를 고려하지 않고 요즘 영화와 비교하며 뻔하고 지루하다며 폄하할 수도 있겠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참 뻔하지만 기묘한 영화다. 핵전쟁으로 세계가 멸망하고 사막으로 뒤덮인 세상 속에서 생존한 인류는 물과 기름, 음식을 차지한 독재자 임모탄에게 폭력으로 지배되고 있었다. 이런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속에서 아내와 딸을 잃은 주인공 맥스는 붙잡혀서 누구에게나 수혈 가능한 O형이라며 감금당한 채로 '피주머니'로써 사육된다. 여성 사령관 퓨리오사는 임모탄을 배신하고 임모탄의 여자들을 구출하여 탈주를 시작, 사건에 말려든 맥스는 퓨리오사 일행과 합류하여 뒤쫓아오는 임모탄 군단을 상대하며 끝없는 자동차 추격전을 벌이는데...
작품은 시리즈 중에서 가장 명작으로 평가받는 '매드맥스 2: 로드워리어'와 닮은 꼴이다. 맥스가 거대한 트레일러를 타고 도망치며 기괴한 개조 차량으로 뒤쫓아오는 폭주족 같은 적들과 벌이는 화려한 자동차 추격전.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처음부터 끝까지'매드맥스 2: 로드워리어'의 하이라이트가 계속되는 듯한 분위기다. '처음부터 끝까지 클라이막스'라고 할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추격전이며 그동안 액션이 쉬지 않고 계속된다. 이처럼 화려한 액션으로 가득찬 영화도 많지 않지만 지루하지 않게 손에 땀을 쥐는 액션이 계속되게 하는 영화 또한 드문 것 같다.
액션이 계속되다보면 지루해지기 쉬울텐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그것도 자동차 추격액션이라는 하나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전개되는데 말이다. 다양한 적들의 차와 각기 다른 공격 패턴이 등장하고, 다양한 환경 속에서 각기 다른 어려움에 처한다. 그 중에 누가 죽기도 하고 다치기도 한다. 그와중에 새로운 만남과 헤어짐도 있다. '잘 만든 최고의 액션 영화'라면 이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말하지 않을 수 없을 듯 싶다.
이 영화가 대단한 것은 이렇게 액션으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이야기거리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통상 영화는 액션 파트와 대화 파트가 있고, 스토리 전개를 위한 대화 파트에서는 조금 지루해지기 쉽상이다. 그러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그렇지 않다. 대사도 그렇게 많지 않은데 짧은 대사에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맥스와 퓨리오사의 첫 만남은 많은 대사도 없이 긴장감 감도는 싸움인데도 불구하고 각자가 처한 상황과 생각을 한번에 보여준다.
이 영화가 가장 대단한 점은 이런 액션으로 가득찬 영화에서 '여성'의 존재를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페미니즘'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을 정도로 이 영화에서 여성은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탈주극의 주인공은 맥스가 아니라 배신한 여성 사령관 퓨리오사다. 맥스는 어쩌다가 말려들어 거들 뿐이다. 이전 시리즈에서도 맥스는 사건에 말려들어 거들게 되지만 사실상 사건의 중심이 되어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퓨리오사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고 맥스는 진짜로 거들 뿐이다. 하지만 주인공인 만큼 맥스는 맹활약을 하며 운전을 하는 퓨리오사를 돕는다.
퓨리오사가 구출해낸 임모탄의 여자들 역시 놀랍다. 통상 이렇게 악당 남성에게 잡혀 사육당하며 살아온 여성들은 구출해내봤자 약하고 무력함을 가득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임모탄의 여자들은 강인하다. 탈출하지 못한 나이많은 할머니 아내도 임모탄을 향해 총을 겨누며 '네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저항한다. 만삭의 임산부인 스플렌디드는 다른 여자들을 이끌며 리더로써 활약하고 끝까지 추격자들에게 맞서 싸우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낸다. 총을 다루는 흑인 여성과 눅스를 진심으로 다독여줘서 변심하게 만드는 붉은 머리의 여성 등 '붙잡혔다가 구출당한 여성'의 전형적인 역할과는 달리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낸다. 심지어는 '용서해주실거야'라며 되돌아가려고 한 여성조차도 차가 늪에 빠져 진행하기 힘든 상황일 때 다른 여성들과 함께 힘을 합쳐 늪을 벗어나게 하려고 노력한다.
다분히 마쵸스러운 독재자 임모탄을 벗어나 '어머니들의 나라', 여성들이 사는 '녹색의 땅'을 향해 떠나는 여성들의 모습과 각 캐릭터들의 입체적인 성격은 다분히 페미니즘적 성격을 띄고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냐 하면 그것은 아닌데, 화끈하게 볼거리와 즐길거리로 가득한 이런 액션영화에 의외의 심도 높은 깊이를 담았다는 것이 놀랍다. (알고보니 각 여성들의 캐릭터성 설정을 위해 페미니스트 극작가의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영상미는 이 영화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끝없이 넓은 노란색의 사막. 작렬하는 태양. 굉음을 내고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달리는 8기통의 기괴한 개조차량들, 불을 뿜는 일렉기타...보는 것만으로도 더워지고 목이 마를 것 같은 영화의 분위기는 영상에서 절실히 느껴진다. 의도적으로 주황색과 노란색으로 가득 채운 영화의 영상은 밤의 풍경에서는 정 반대로 짙은 파란색으로만 가득하다. 모노톤을 그대로 잩은 파란색으로 바꾼 것 같은 밤의 풍경에서 불을 켰을 때 불을 켠 부근만 주황색이 되는 것이 임펙트 있다. 영상 가득히 표현되는 '색'은 영화의 분위기와 환경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해준다.
음악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굉음으로 가득한 괴물 같은 개조차들의 질주는 눈을 가린 채 빨간 옷을 입고 불을 뿜는 일렉기타를 치는 '악사'와 항상 함께 한다. 이 악사의 연주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추격전 내내 굉음과 함께 울리는 효과음의 일부로써 존재하며, 영화의 OST로써도 존재한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하나 꼽는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일렉기타만을 치고 있는 이 악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참 뻔하디 뻔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자동차 추격 액션 영화를 이렇게까지 압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놀랍다. 시종일관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서 펼쳐지는 자동차 액션의 연속, 노란색과 주황색으로 가득한, 쇠와 불과 모래와 연기의 영상미, 끝없이 울리는 자동차 굉음과 일렉기타...이런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영화 속에 페미니즘적인 깊이까지 담은 것은 신의 한 수. 올해 최고의 액션 영화는 물론 영화 역사에도 길이 남을 작품이 탄생한 듯 싶다.
(2015.5.21 16:300 메가박스 화곡 관람)
덧글
진짜 차가 날라 다니고
진짜 약빨 오른 영화죠.
무림의 고수에게 잡다한 초식은 필요없다는 듯이 극의 하나로 모든 걸 보여준다는 그런 느낌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