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제니시스 (Terminator Genisys , 2015) 영화감상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Terminator Genisys , 2015.7.2 개봉)


[ 스포일러 있음 ]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5번째 이야기...이지만 사실상 1과 2를 본 뒤에 곧바로 이 작품을 볼 수 있게 만든 사실상의 3편이다. 애매한 터미네이터 3와 미래전쟁의 시작(Salvation)편은 건너뛰고 곧바로 이 작품을 보면 된다. 사실상 터미네이터는 2에서 완결된 이야기였지만 역사가 변화하며 결국 또 스카이넷을 파괴하기 위한 T-800과 사라 코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1과 2를 아우르는 내용의 영화이다. 사라 코너를 보호하기 위해 1984년으로 돌아간 카일은 늙은 T-800에게 보호받고 있고, 자신이 뒤쫓아온 T-800은 늙은 T-800과 사라 코너에게 제거된다. 대신 T-1000이 등장하여 이들을 습격해온다. T-1000을 해치운 이들은 역사의 변화로 탄생이 연기된 스카이넷을 없애기 위하여 2017년으로 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장면들은 터미네이터 1을 떠오르게 만든다. 알몸으로 트럭 옆에 출현한 T-800과 이후 건달 3명의 옷을 빼앗으려고 하는 장면, 알몸으로 출현 후 데굴데굴 구르며 고통스러워 하는 카일과 경찰을 붙잡고 지금이 몇년도냐고 물어보는 장면, 옷가게로 도망치는 장면 등 모든 장면이 터미네이터 1에서 나왔던 장면을 완벽하게 똑같이 재현하고 있다.

애초에 '터미네이터 1'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상황 속에서 변화한 역사를 카일이 체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은 오마쥬이자 설정에 맞는 완벽한 상황 재현이기도 하다. 타임리프물이 그렇듯, 같은 시간대를 묘사할 때엔 같은 장면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 CG로 재현한 '터미네이터 1' 시절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역시 감동적이다. 옛날 아놀드와 늙은 아놀드의 싸움은 재미있는 광경이다.

'터미네이터 1'에서 카일이 간신히 해치운 T-800은 늙은 T-800과 어렸을 때부터 그에게 훈련받은 사라 코너에게 간단히 제압되고, 카일은 살아남게 된다. '터미네이터 1'의 역사는 변화한 것이다. 카일이 사라에게 하던 '살고 싶으면 따라와요'란 대사를 사라가 카일에게 하는 것 또한 재미있다.


문제는 '터미네이터 1'에서는 등장하지 않고 '터미네이터 2'부터 등장한 액체금속 터미네이터 'T-1000'이 1994년이 아니라 1984년에 출현하여 사라 코너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사라 코너가 어렸을 때 이미 T-1000이 나타나 그의 부모를 살해했고, 그 때 T-800이 등장하여 사라 코너를 구하고 여태까지 키워왔다는 것.

많은 부분이 '터미네이터 2'의 T-800과 존 코너의 관계가 떠오른다. T-800은 사라 코너와 가상의 부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심지어는 '터미네이터 2'에서 존 코너가 T-800에게 '웃음'을 가르쳐주고 이를 무리하게 해보려고 했던 것이, 사라 코너가 가르쳐준 것으로 되어 늙은 T-800은 무리해서 웃는 시도를 해보고 있다. 엄지손가락을 올려보이는 것이나 I'll be back을 외치며 나가는 T-800의 모습은 터미네이터 1과 2의 오마쥬이기도 하지만 2에서의 존 코너 역할을 현재의 사라 코너가 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사라 코너 배역은 왕좌의 게임 시리즈의 에밀리아 클라크가 담당했는데, 제법 그 시절의 린다 해밀턴 느낌이 나는 것이 재미있다. '터미네이터 1'에서 나왔던 카일이 소중히 간직하던 사라 코너의 사진이 고스란히 이번작에서도 등장하는데 배우는 에밀리아 클라크로 바뀌었어도 자연스럽다. 의도적인 분장이 들어갔겠지만 복장과 헤어스타일 이외에도 눈주름을 비롯하여 얼굴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린다 해밀턴을 떠오르게 해서 좋았다.


존 코너의 배역은 좀 아쉽다. 터미네이터 1에서 얼핏 나왔던 얼굴의 상처는 그대로 재현했지만 카리스마 있는 리더의 느낌은 온데간데 없고 좀 찌질한 아저씨 느낌이 강하다. 더군다나 스카이넷의 나노머신에게 침식당해 개조인간으로 거듭난 신종 터미네이터이기까지 한데, 터미네이터로서도 터미네이터 2의 T-1000을 능가할만한 압도적인 인상을 보여주지는 못했기 때문.

이번 T-1000은 이병헌이 배역을 담당했는데 애초에 아무것으로나 변할 수 있는 T-1000이나보니 배역은 크게 이상하진 않았다. 게다가 등장씬도 초반에 잠깐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왕이면 T-1000도 예전 배역과 비슷한 느낌의 배우를 썼으면 더욱 좋았을 듯 싶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늙은 T-800'은 괜찮았다. 기계도 오래되면 고장나기 마련. T-800을 뒤덮는 생체조직도 실제 사람처럼 오래되면 사람처럼 늙는다는 설정은 이번 영화에 70을 바라보는 노인이 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직접 나오기에 딱 알맞은 구실이 된다. T-800을 덮는 생체조직이 갖춘 자연치유능력 설정도 터미네이터 2에서 어떻게 손껍데기를 뺐다가 다시 껴서 멀쩡해졌는지 설명이 된다.

여기저기 고장나서 삐걱거리는 늙은 T-800에 대해 영화 속 본인 말로 '늙었지만 아직은 쓸만하다'라는 대사는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라는 배우 그 자체에 대한 말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나쁘지는 않았던 '터미네이터 셀베이션(미래전쟁의 시작)'이 아놀드가 주역이 아니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많이 부족해보였던 것처럼 '터미네이터' 하면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이기 때문이다. 아직 아놀드가 연기를 할 수 있을 때 터미네이터가 나온 것이 천만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정해진 미래는 없다, 운명은 개척해 나아가는 것이다'라는 옛 '터미네이터'에서 카일이 사라 코너에게 전했던 메시지는 이번 작품에서 다시 반복되며 새롭게 뒤바뀐 역사를 표현하고 있다. '터미네이터 2'에서 1997년이 되어도 인류는 멸망하지 않았지만 뒤바뀐 역사에 따라 2017년으로 스카이넷 탄생이 연기되었고, 이에 따라 이번 작품에서 2017년의 스카이넷인 '제니시스'를 파괴한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T-3000과의 최종전투에서 죽은 것으로 보였던 늙은 T-800도 액체금속으로 거듭나서 부활함으로써 I'll be back을 실현시켰다. '터미네이터 1'에서 죽었던 카일도 살아남았고, '터미네이터 2'에서 죽었던 '착한 T-800'도 살아남았다. 사라 코너도 무사히 살아남아 존 코너를 낳을 것이며 예전과는 다른 행복한 미래가 나오며 사실상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더이상 나올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엔딩 스탭롤이 올라간 뒤 깜짝 쿠키 영상이 등장! 폭파된 사이버다인사 지하에 여전히 살아남아있는 제니시스를 보여줌으로써 결국 스카이넷은 만들어져 인류가 멸망할 것임을 예견한다. 엔딩 스탭롤 올라갈 때 밖으로 나간 사람들은 이를 못봤겠지만 말이다.



스토리 자체는 뻔하지만 나쁘지 않다. 터미네이터 1과 터미네이터 2를 아우르는, '똑같아보이지만 달라진 역사'를 잘 재현한 것만으로도 족하다. 오마쥬 영화로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볼만한 오마쥬 영화' 이상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한계이기도 하다. 영화 내용 자체가 1과 2를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 투성이이므로 독립적인 작품으로써는 완성도가 떨어진다. 또한 CG나 액션은 예전보다 훨씬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해줌에도 불구하고 더이상 옛날처럼 이런 장면들이 놀랍지 않다는 것도 문제. 터미네이터는 사실상 2에서 완성된 작품이었기에 이후로도 이를 능가할 작품은 나올 수 없다고 확신한다.

그래도 '그 시절의 아놀드'와 '현재의 아놀드'가 '터미네이터'로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2015.7.7 10:40 메가박스 관람)






1991년 '터미네이터 2' 극장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구매했던 '터미네이터 2' 팜플렛과 이번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의 전단지. 당시 극장에서 리얼타임으로 본 '터미네이터 2'의 엄청난 충격과 감동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덧글

  • 듀얼콜렉터 2015/07/07 18:05 #

    으아아 쿠키영상이 있었군요, 미처 몰랐습니다 ㅠ_ㅠ
  • 플로렌스 2015/07/07 18:07 #

    국내에서는 쿠키영상 못보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 holhorse 2015/07/09 03:37 #

    2도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1도 재미있더군요. 거대한 강철 처형인을 상대로 두 명의 인간이 아둥바둥대는게 참...진짜 그 당시의 주지사님의 포스는 그야말로 언브레이커블.
  • 플로렌스 2015/07/09 15:53 #

    저예산인데 상당히 재미있게 잘 만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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