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Assassination, 2015) 영화감상

암살 (Assassination, 2015.7.22 개봉)



(스포일러 있음)

갑자기 생긴 영화표로 무엇을 볼까 하다가 평이 꽤 좋은 영화 암살을 보기로 했다.

독립군들의 친일파 암살작전을 다룬 영화이다보니 너무 영화가 어둡고 무겁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웬걸, 상당히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알고보니 감독이 타짜(2006), 전우치(2009), 도둑들(2012) 등 긴장감 넘치는 액션과 위트가 뒤섞인 영화를 잘 만드는 최동훈 감독 아닌가!


단점부터 이야기하자면 전형적인 한국영화스러움이 가득했다.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조승우, 오달수, 김해숙 등 다른 영화에서 많이 보던 배우들이 나와 비슷한 연기를 펼친다는 것과, 오달수 등은 다른 영화에서처럼 약방의 감초같은 역할, 코믹한 입담을 살린 서브캐릭터 연기를 해서 분명 색다른 영화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익숙하다는 점이다. 또한 뭔가 전개가 조금 산만하고 어설픈 급전개나 지나치게 오버스러움 또한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픽션이니까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외의 점에서는 꽤 높이 평가할 만하고 재미있게 본 작품이었다.


한국에서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그렇게 많지 않다. 1930년대는 조선이 일본을 통해 근대화하며 독특한 당시의 문화를 형성하던 시기였다. 서양 문물의 대거 유입으로 인해 지금보다도 더 서구적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조선의 문화가 그대로 남아있고, 일제의 강점으로 일본 문화 또한 섞여있다. 역사적으로는 슬프지만 문화적으로는 묘한 낭만이 살아있던 시기인 것이다.

하지만 이를 표현하려면 막대한 규모의 세트장이 필요하고, 대규모의 소품과 CG가 필요하다. 때문에 한국에서는 과거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세트장과 소품이 구하기 쉬운 조선시대가 줄곧 소재로 다뤄지곤 한다. 영화 암살에서는 중국까지 가서 대규모의 세트장을 마련하였고, 그 시절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에 주력하여 멋진 장면들을 보여준다.

1930년대의 상하이와 경성. 한복과 당시 서양옷들이 뒤섞였고, 서구적인 건물과 자동차들이 가득하던 독특한 시대. 이를 표현하려면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돈을 들인 만큼 흥행시키기도 힘들다.

최동훈 감독은 중국영화 '색, 계'를 촬영한 처둔에 있는 대규모의 세트장에서 당시의 상하이와 경성을 재현했고, 당시에 있던 자동차들을 재현하느라 실제 당시의 차들과 샹들리에 등의 소품을 막대한 돈을 들여 사들였다고 한다. 충무로에서는 무리하게 1930년대를 재현하려고 하는 최동훈 감독에게 멍청하다는 소리까지 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이 영화는 천만 관객을 동원하여 히트하였고, 1930년대를 재현한 영화도 잘만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줬다.


주요 인물은 하정우(하와이 피스톨), 전지현(안옥윤), 이정재(염석진)이며 각기 다른 입장의 독립군이다.

친일파 아버지와 독립군 어머니의 사이에서 태어난 안옥윤은 중국에서 간도참변을 직접 체험하고 자란다. 간도참변, 혹은 경신참변이라고 불렀던 이 사건은 일제가 독립군 토벌을 명목으로 일본군을 간도로 보내 조선인 마을을 침공, 조선인들을 닥치는대로 죽여 조선인 마을 여러개를 없애버렸던 끔찍한 사건이다. 복수심에 불타는 안옥윤은 친일파인 자신의 아버지와 일본 고관을 암살하기 위해 경성으로 간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안옥윤은 매력적인 캐릭터다. 눈이 나쁘지만 한쪽이 깨진 안경을 쓰면 백발백중의 명사수. 여자가 들기엔 지나치게 크고 무거운 영국제 모신나강에다가 스코프를 달아 스나이퍼 라이플로 사용하는 그 모습이란! 여기에 쌍둥이 언니는 친일파의 아버지 밑에서 곱게 자라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로 엇갈린 운명을 보여주고, 최종적으로는 당시의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부케에 총을 숨겨 결혼식장에서 총질까지!

누가 봐도 멋진 캐릭터인 이 안옥윤 배역은 전지현이 담당했다. 개인적으로 전지현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배우이다. CF모델로서 가치는 있겠지만 영화배우로서는 글쎄다 싶고, 마스크도 연기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 배우였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전지현은 안옥윤이라는 멋진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해냈다. 아마 전지현이 했던 캐릭터 중 최고로 멋진 캐릭터였고, 이 영화로 인해 전지현이 멋지다고 느끼게 된 사람도 많지 않을까 싶다.


또하나의 주인공인 염석진(이정재)은 악역이다. 독립군으로 활동하다가 일본군에게 붙잡혀서 밀정이 되기로 약속하여 풀려난 이후, 독립군의 뒤통수를 치는 역할로서 영화의 끝까지 관객들의 심장을 부글부글 끓게 만든다.

영화 도둑들에서도 참 얄미운 역할이었는데 이번에는 한층 더 미운 역할을 담당하여 혼신의 연기를 펼친다. 특히 영화 후반에 재판에서 자신은 친일 행각을 벌인 적 없고 독립운동을 했다며 열변을 토할 때의 연기는 일품!

자기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하여 일본군에게 충성하고 같은 조선인들을 죽게 만드는 모습이란...친일파들이 왜 악독한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이 영화 최고의 악당이었다. 붙잡힌 뒤 혼자 살아남기 위해 독립군들을 팔아먹고, 형동생하던 동료들을 직접 쏴죽이기도 하는 악독한 모습은 마치 이승만 시절 간첩으로 붙잡힌 뒤 사형에서 혼자 살아남기 위하여 남로당 명단을 넘기고 사면받은 박정희가 떠오르기도 한다.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인 하와이피스톨(하정우)과 영감(오달수)은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청부업자다. 염석진(이정재)의 간계로 암살 작전의 독립군들을 사냥하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안옥윤(전지현)을 만나 오해를 풀고 역사에 이름도 남지 않을 독립군이 되어버린다.

양 손에 권총을 들고 일본군들을 척철 물리치는 연기와 엔딩에서의 그 장면은 영웅본색을 필두로 한 오우삼 감독의 영화, 그러니까 1980년대의 홍콩느와르를 방불케 해서 멋지기도 하고 묘하게 웃기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안옥윤(전지현)과 함께 암살 작전을 하게 된 속사포와 황덕삼 역시 조연이지만 빼놓을 수 없는 독립군 투사이다. 속사포는 일제에 의해 폐교될 때까지 수많은 독립군을 탄생시킨 신흥무관학교 출신이라는 것이 언급되어 속사포 배역의 조진웅이 이번에 신흥무관학교 홍보대사로까지 위촉되었다나?


조승우는 약산 김원봉 역할을 담당했다. 김원봉은 의열단을 조직하여 무장독립투쟁을 주도하였고 당시 가장 높은 현상금이 걸려있던 항일독립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 김구가 암살된 뒤 대통령이 된 이승만이 정권 안위를 위하여 친일파들이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게 만들었고, 이 때 김원봉이 붙잡혀 친일파 경찰에게 뺨을 맞으며 고문을 당하는 수모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결국 김원봉은 친일파를 숙청하는 김일성 치하의 북한으로 갔으며, 6.25 때 김원봉의 가족들은 보도연맹사건으로 살해되거나 박정희 정부 때 옥살이를 하다가 사망했다. 김원봉 또한 북한에서 고위직을 담당하긴 했지만 남침을 반대하고 김일성의 정책에 반대하다가 숙청되어 사망한다. 결국 그 누구보다도 항일투쟁에 앞장섰지만 해방 이후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버림받은 비운의 독립운동가가 아닐까 싶다.

이번 영화 암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김원봉의 이름을 찾아보고 기억하게 된 것은 정말 다행인 일이다.


올해가 광복 70주년이라고 한다. 비록 친일파 후손 뉴라이트들은 광복이란 단어가 갖는 일제 해방의 의미를 지우고자 건국절로 이름을 바꾸자고 난리인 상황이다.

김구가 암살되고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친일파들의 지지를 받으며 친일파들이 그대로 권력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영화에서 악독한 친일파였던 염석진이 권력자가 되고, 재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것처럼 반민특위는 결국 유명무실하게 끝나버렸다.

결국 당시 친일파들은 대대손손 재벌과 권력자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으며, 대통령이 되거나 당대표가 되기도 하고, 나라의 각 주요 요직들을 모조리 꿰차고 있다. 대통령 동생은 일본에게 사과할 필요없으며 대한민국이 잘못된 것이라고, 자기가 대통령을 대신하여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친일파 정부는 역사교과서에서 근현대사 부분을 축소하고, 일제강점기와 군사쿠데타, 독재를 미화하며, 심지어는 북한처럼 국정교과서를 추진하여 국민들을 세뇌시키려고 한다. 일본은 우익이 정권을 강화하며 더욱 뻔뻔스럽게 나오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수수방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맞이하는 광복 70주년은 사실 절망적이다. 대통령부터가 친일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광복절을 건국절로 묘사하며, 정부가 '건국 70돌' 행사를 추진한다.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민국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 이념을 계승"한다고 나와있으나 현 정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부정한다. 이승만부터 대한민국이며, 이승만이 건국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김구와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운동이 정권으로부터 부정당하고 있는 절망적인 광복 70주년.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영화 암살은 실날같은 희망을 보여준 영화였다.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오락영화이지만 그 안에 담겨진 역사적 배경은 중대하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당시 상황이나 영화에 나온 사건들을 찾아보며 경악한 사람들 또한 많았을 듯 싶다. 요즘 역사책에서 잘 가르쳐주지 않던 진실들, 혹은 배웠어도 무심하게 넘어갔던 독립운동가들의 처절한 투쟁과 친일파들의 악랄한 행각들.

이런 것들을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비록 역사교과서가 국정교과서로 바뀌며 친일파들을 숭배하고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멸시하게 될 지라도, 광복절의 명칭이 친일파들의 소원대로 건국절로 바뀌게 된다고 할 지라도, 진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2015.8.30 21:40 김포 롯데시네마 관람)



덧글

  • 레이오트 2015/09/01 12:58 #

    1. 하정우와 전지현은 한국 영화로는 꽤 드문 하드보일드 스파이 액션영화인 베를린에서도 나오지요.

    2. 전 이 영화 제목 보자마자 후드를 쓰고 암살검으로 친일파의 뒤통수를 꿰뚫는 조국광복의 신념 그 자체인 암살자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어쌔신 크리드 차차기작은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암살단 한국, 중국 지부 암살자들이 일본군과 친일파를 처단하는 그런 작품으로 나오기를 희망합니다.

    3. 그건 그렇고 친일파 청산 문제는 언제나 마음을 무겁게 하지요. Donna Burke의 sins of the father를 듣고있으면 그런 감정이 극대화되지요.
  • 플로렌스 2015/09/01 13:19 #

    어쌔신 크리드...!
  • 알트아이젠 2015/09/13 21:58 #

    근데 '템플 기사단'으로 김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듭니다. 이승만이 템플 기사단 하기에는 급이 낮고...그렇다면 김원봉이 '암살단'일지도 모르겠네요.
  • 2015/09/01 14:5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9/01 16:3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Aprk-Zero 2015/09/01 19:51 #

    휴...한국의 압날이 암울합니다...
  • 플로렌스 2015/09/01 20:01 #

    미래보다는 당장 현재가 문제...
  • 로오나 2015/09/01 22:09 #

    경성 세트는 진짜 90억 들인 보람이 넘쳤습니다. 보는 내내 행복하더군요.
  • 플로렌스 2015/09/02 12:07 #

    그당시 특유의 문화를 살린 비주얼이 훌륭했지요.
  • JR14 2015/09/02 18:22 #

    이 영화 천만 찍었으니 베를린 후속편이 나올 수 있으려나요?
  • 플로렌스 2015/09/02 21:23 #

    류승완 감독 하기 나름일 것 같습니다.
  • 알트아이젠 2015/09/13 21:57 #

    [베테랑]과 더불어 올해 우리나라 블록버스터 영화 중 가장 재미있게 봤습니다. 취향은 [베테랑]쪽이지만, 이쪽도 처음 각잡고 본 최동훈 감독님 영화인데 잘 만들었더군요.
  • 플로렌스 2015/09/15 12:24 #

    재미와 역사의식을 둘 다 잘 표현한 작품이었지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Twitter

위드블로그 베스트 리뷰어

2011 이글루스 TOP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