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스트레인지 (Doctor Strange, 2016) 영화감상

닥터 스트레인지 (Doctor Strange, 2016.10.26 개봉)


(스포일러 있음)


2월의 데드풀, 3월의 배트맨 대 슈퍼맨, 4월의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 5월의 엑스맨 아포칼립스, 8월의 수워사이드 스쿼드...나에게 있어서 2016년은 수퍼히어로 영화의 해였다고 기억된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10월의 닥터 스트레인지가 개봉했다.

영드 셜록 시리즈를 재미있게 봐왔기 때문에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연이라는 것에 놀랐는데 상상 이상으로 닥터 스트레인지 역에 잘 어울렸다. 존 왓슨 역의 마틴 프리먼도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부터 블랙 팬서와 관련된 CIA 요원 에버랫 로스 역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니 이 둘이 함께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이번 작부터 마블 스튜디오 로고가 변경되었다. 기존에는 원작 코믹스 장면을 페이지 넘기듯이 마블 로고 속에서 보여줬는데 이번엔 영화 장면을 섞어 보여준다. 로고 표현 방식이 다소 산만해지지 않았나 싶다.


영화는 전형적인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답게 무난하게 재미있다. 역시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는 항상 중간 이상은 가기 때문에 믿고 볼 수 있다. 다소 식상한 플롯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재밌게 볼 수 있게 만들다니.

일단은 인셉션이 떠오르는 마법 연출이 압도적이다. 공간을 비틀어서 세상이 뒤집히고 중력이 뒤바뀌는 연출이 굉장하다. 건물들이 태엽장치처럼 회전하며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 광고에서도 봤지만 커다란 스크린에서 도시 전체가 그렇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경이롭다. 이왕이면 3D 아이맥스로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답게 원작과는 다른 점이 많다. 수행하러 가는 곳이 티벳도 아니고 네팔이고, 히말라야 꼭대기가 아니라 네팔 수도 카트만두(kathmandu)에 있는 평범한 집이라니. 그런 평범한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무술과 마법을 수행하는 광경이 특이하다. 설마 와이파이까지 되다니!

원작에서 스테레오 타입의 동양계 스승이었던 에이션트 원이 백인계 여성 승려로 바뀐 것도 특이했다. 전체적인 플롯과 캐릭터들이 이제와서 보기에는 너무 전형적이고 식상하다보니 그런 것을 탈피하려고 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에이션트 원의 배역이 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더니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DC코믹스 영화 '콘스탄틴'에서 가브리엘 역으로 나왔던 틸다 스윈튼. 참 중성적인 매력의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때문일까? 최근 들어 수퍼히어로 영화에서도 옛날 음악을 꽤 많이 활용하는 듯 싶다. 닥터 스트레인지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시작부터 수술실에서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의 Shining Star(1975)에 맞춰 수술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서 척 맨지오니의 Feel So Good(1977)이 흘러나온다. 아예 Feel So Good의 발매년도를 가지고 가벼운 논쟁까지 한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차 사고 장면에서는 핑크 플로이드의 Interstellar Overdrive(1967)가 흘러나온다. 절묘한 선곡이 아닐 수 없다.

옛날 음악은 아니지만 닥터 스트레인지가 도서관을 지키는 웡에게 비욘세 음악을 추천해주자 웡은 이어폰을 끼고 비욘세의 Single Ladies (Put a Ring on It)(2008)를 듣는다. 영화를 보고 나니 해당 음악들을 찾아서 다시 듣게 된다.


마블 수퍼히어로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까메오, 스탠리 옹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싸우는 동안 버스 안에 앉아서 책을 읽는 모습이 나오는데 올더스 헉슬리의 인식의 문(The Doors of Perception, 1954)을 읽고 있다. (자막으로도 친절하게 '인식의 문'이라고 표시해줬다.) '인식의 문'은 환각제가 인간의 의식 세계를 확장시켜 충만한 정신에 이르게 한다는 구절로 히피들의 바이블이 되었던 책이다. '사이키델릭'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 책은 닥터 스트레인지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설명해준다.


이야기의 소재는 단순한 '마법'을 넘어 '시간'과 '공간'에 대한 것이란 점 또한 좋았다. 공간을 비트는 마법이나 시간을 역행시키는 마법 등은 이 영화를 스펙타클한 영상으로 가득 채우는 것을 넘어 일족의 철학적인 메시지를 주기도 한다. 자연 그대로에 몸을 맡기라는 가르침과 반대로 필요에 의해 자연의 순리를 깨고 있던 에이션트 원. 과연 옳은 것일까 그른 것일까?

케실리우스는 다소 진부하게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자 '도르마무'의 힘을 빌리려 하지만 실은 에이션트 원도 도르마무의 힘을 빌려 영생을 누리며 시간과 공간을 조작할 수 있었다는 것과, 이에 실망한 모르도가 분노하며 이후 이야기의 복선이 될 것이라는 것이 짜임새 있어 좋았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자를 시간의 인피니트 스톤인 '아가모토의 눈'을 이용해서 무한 반복되는 시간 속에 가둬버려 거래를 성사시키는 점 또한 좋다. 악당들과의 싸움에서 단순한 육탄전을 넘어 이런 식의 지능 배틀이 나오는 것은 기존 마블 영화와는 꽤나 다른 행보가 아닌가?


무겁고 진지해지기 쉬운 흐름 속에서 틈틈히 재밌는 장면을 넣어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것은 마블 영화의 장점이다. 특히 자아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레비테이션 망토는 명실공히 본작의 마스코트! 적을 감싸고 무참하게 땅에 머리를 내려찍는 모습이나, 엉뚱한 무기를 가지러 가는 닥터를 반대로 질질 끌고 간다던지, 에이션트 원의 죽음 후 닥터 스트레인지가 눈물을 흘리자 깃으로 눈물을 닦아주는 장면 등 명장면이 많다.


믿고 보는 마블 영화답게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잘 만든 영화다. 마블 수퍼히어로 영화는 어벤저스 시리즈에 합류하기 위한 소품에 불과한 경우가 많은데 닥터 스트레인지는 그 틀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작품으로써도 볼 수 있게 잘 만들었다. 다른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꽤나 큰 장점이다. 어벤저스와의 연결고리는 영화 본편이 끝난 뒤 스탭롤이 오를 때 쿠키 영상으로 빼놓았다.


이번 역시 쿠키영상은 2개.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 한 번, 다 오른 뒤 한 번 나온다. 관객들이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 좀 많이 본 사람들인지 대다수가 나가지 않고 쿠키영상까지 챙겨보는 것이 신기했다. 다음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인 토르: 라그나로크에 대한 암시가 담겨있는데 도와준다는 말을 보니 다음 토르 영화에 닥터 스트레인지도 출연하려나?

또 하나의 쿠키영상은 닥터 스트레인지와 결별한 모르도의 행방을 보여준다. 원작에서 악당이었으니 이후의 닥터 스트레인지 속편에서도 메인 빌런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2016.10.28 20:50 왕십리 CGV 관람)


덧글

  • KAZAMA 2016/11/01 08:41 #

    시각효과는 대단했죠
  • 플로렌스 2016/11/11 17:35 #

    꽤 볼만했습니다.
  • rumic71 2016/11/01 17:58 #

    "거 참 재미있구먼!"
  • 플로렌스 2016/11/11 17:35 #

    진짜로 재미..
  • 알트아이젠 2016/11/01 23:32 #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 봤을때 느낌이더군요. 재미있습니다.
  • 플로렌스 2016/11/11 17:35 #

    재미있게 봤지요.
  • holhorse 2016/11/02 17:20 #

    최종보스와 참 특이한 방식으로 결판을 냈지요.
  • 플로렌스 2016/11/11 17:36 #

    이런 지능배틀이 앞으로도 더 나오면 좋겠더군요.
  • 잠본이 2016/11/07 01:13 #

    에인션트 원의 국적세탁 문제나 카마르 타지의 장소변경 등은 아무래도 중국시장을 의식하여 문제가 될 소지를 없애려고 무리수를 둔게 아닌가 하는 관측이 있습죠. 마블이야 뭐 공식적으론 인정 안하지만(...)
  • 플로렌스 2016/11/11 17:36 #

    확실히 중국 눈치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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