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의 파괴 -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Star Wars: The Last Jedi , 2017) 영화감상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Star Wars: The Last Jedi , 2017)


(스포일러 있음)



"제다이도, 시스도, 저항군도, 퍼스트 오더도 모두 다 없어져야 해."

영화 후반부, 카일로 렌의 대사는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새로운 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오래된 것의 타파였다. 스타워즈 오리지널 3부작의 뒷 이야기를 만들려면 기존의 것들을 보여주면서도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면 과거의 것을 버릴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한 것은 클리셰의 파괴였다.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불후의 명작'의 속편을 만들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자기 복제'였다. 그러한 자기 복제는 '오마쥬'라는 명명 하에 구작의 팬들에게 그리움과 함께 감동을 준다. 세련된 영상과 표현기법으로 과거의 작품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알맹이 자체는 결국 달라진 것이 없는, 오히려 신선함은 퇴보해버리고 만 것임을. 그렇게 많은 명작들의, 오랜만의 속편들을 보고 기쁨과 함께 드는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스타워즈는 달랐다.

남성보다 훨씬 강한 여성 주인공 레이, 일개 병사 출신의 흑인 주인공 핀에 이어 이번에는 동양인. 그것도 꽤 통통한 체형에 지극히 평범하게 생긴 여자 로즈가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아마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불만으로 여기는 것이 로즈의 등장일 것 같다. 동양인도, 그것도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꽤나 진보적이고 리얼한 이야기지만 서양인만 잘생기고 동양인만 못생기게 묘사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애초에 레이, 핀, 포 3명이 주인공인데다가 각각 따로 따로 활약하기에 전개가 이쪽 저쪽으로 왔다갔다 하는 부분이 산만하다고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 각기 다른 곳에서 활약하는 3명의 이야기를 동시에 전개 시키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만약 레이만 비중만 높고 나머지 둘의 비중이 낮아졌다면 산만하다는 평 이상으로 안좋은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각기 다른 곳에서 각자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큰 흐름을 이끌어낸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 좋다.

특히 초반에는 '로그 원'이 떠오를 정도로 처절한 전투를 보여주는데, 저항군 한 명 한 명이 각자 목숨을 걸고 활약함으로서 퍼스트 오더에게 대항할 수 있었음을 느끼게 해줘서 좋다. 제다이 한 명이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군 병사 하나 하나의 목숨을 건 활약이 모여 큰 힘을 이루는 것을. 레이, 핀, 포 3명의 주인공 체제도 결국 이런 주제와 맥락을 같이 한다. 전쟁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니까.

뛰어난 잠재력을 갖춘 사람에게 좋은 스승이 필요하다는 것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렸다. 불타버리는 제다이 고서들처럼. 누구에게도 배운 적 없는데 염동력을 쓰고 라이트세이버를 다루는 레이는 포스의 기본 개념을 익힌 순간부터 더욱 강해진다. 다소 모자라보이던 카일로 렌이 점점 강해지는 것처럼 레이 역시 점점 강해지고 있다. 별다른 훈련도 없이 텔레파시와 염동력을 쓰고, 험하게 자라서 일정 수준 이상의 무술 실력을 지녔다고는 하나 빨간색의 프레토리안 가드들 여럿과 싸우는 것은 무슨 치트 캐릭터 같기도 하다. 레이는 처음부터 완성된 캐릭터이다보니 성장해 나아가는 재미는 없다. 그렇게 포스가 강함에도 출생의 비밀은 없었고, 영화 후반 노예로 사는 어린이도 포스를 쓰는 것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것 같다. 출생의 비밀이 없다보니 드라마성은 떨어지지만 나쁘진 않다고 본다.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처럼 자잘한 개그가 많아진 점도 좋다. 나름 웃기려고 하지만 짜증만 유발하던 자자 빙크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츄바카와 포그의 개그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떠오른다. 다리미처럼 생긴 우주선이다 싶었더니 진짜로 다리미였다. 여길 막으면 저기가 튀어나오는 것은 80년대 톰과 제리, 미키와 도널드 시절의 개그지만 BB-8이 머리를 써서(아니 진짜로 머리를 써서) 해결하는 장면은 예상했지만 진짜로 나오니 웃겼다. 진지한 음악 속에서 라이트세이버를 받아든 루크가 뒤로 휙 버리는 장면도 묘하게 웃겼다. 레이가 포스를 손가락 끝으로 느꼈는데 알고보니 루크가 풀잎으로 간지럼 태우는 것이었다던지, 나름 멋지게 라이트세이버로 바위를 베어버렸지만 원주민들의 물건을 파괴하는 장면도 재미있다.

그렘린의 모과이와 새를 섞은 것 같이 생긴 포그는 대놓고 노린 캐릭터 같지만 마음에 든다. 엄청난 빔 포격 속에서 멀쩡한 루크 스카이워커는 "우와!"하고 탄성을 지르게 하는 멋진 장면임과 동시에 옷을 툭툭 털어서 웃음을 유발한다. 또한 멋있음과 동시에 "말도 안 돼"하고 어이 없어지는 장면이기도 했는데 포스로 만든 환영이었다는 점에서 납득하게 만들어준다. 디즈니 스타워즈는 전통적인 디즈니보다는 마블 슈퍼히어로로 대표되는 새로운 디즈니의 요소가 접목된 것 같다. 로그 원도 그랬지만 처절한 전투와 죽음은 옛날 디즈니와는 차원이 다르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개봉 당시 기준으로는 혁신적이고 굉장한 영화였지만 지금으로 보기엔 뻔하고 낡은 영화일 수 있다. 하지만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뻔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반전의 과잉이라고 할 정도로 클리셰 파괴로 가득 차 있다. 홀도는 무능한 지휘관인 줄 알았더니 다 생각해서 그런 것이고, 진정한 최종보스 스노크가 모습을 드러내나 싶었더니 어이없이 죽고, 핀이 자살특공으로 전황을 바꾸나 했더니 로즈가 구출하고, 전황은 바뀌지 않는다. 힘들게 데려온 코드브레이커가 주인공을 도와 큰 일을 해내나 싶더니 돈 받고 배신한다. 영화를 보며 관객들이 이후의 전개를 예상하면 어김없이 깨뜨려준다. 생각대로 영화가 흘러가지 않는 것은 누군가에게 불만이겠지만 나에겐 꽤 좋아보였다. 신선함을 위해 다소 무리를 한 것 같기도 하지만 적어도 셀 수 없이 뻔한 영화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홀도가 광속 비행으로 자살 특공을 벌이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뻔한 장면이었다. 퍼스트 오더의 함대가 순간 하얀색으로 변하며 갈라지는 장면은 애니메이션스러우면서도 제법 멋있었다. 하지만 영화 후반에서 핀의 자살 특공이 실패하게 한 것으로 그 뻔함을 타파했다. 주인공 3명 중에서 가장 먼저 죽는다면 핀이라는 생각도 했는데, 이렇게 죽이는구나 싶었더니 살려버렸다. 반전의 반전으로 가득한 영화다보니 핀이 죽어도 개죽음이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는데 살아서 다행이었다.

레아 공주가 저항군의 리더로서 활약하는 장면이 좋았다. 제대로 사령관스러운 면모를 보여줬고, 처음으로 포스를 쓰는 모습도 보여줘서 멋졌다. 캐리 피셔의 유작인 만큼 레아 공주의 멋진 모습이 잘 드러나서 좋았다. 이렇게 어이없이 죽나 했더니 포스의 등장. 이것도 반전인데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다스베이더의 자식인데 왜 루크만 포스를 쓰고 레아는 포스를 쓰지 못하나 이런 논란은 이것으로 끝났다.

전작에서 한 솔로가 물러났고, 이번에는 루크 스카이워커가 물러났다. 레아 공주도 배우 본인의 사망과 별개로 포에게 지휘를 맡기는 장면에서 이걸로 물러난다는 것을 보여줬다. 카일로 렌은 다스베이더를 흉내내던 마스크를 박살냈고 제2의 황제를 노리던 스노크를 죽였다. BB-8는 이야기의 중심에서 활약하지만 C-3PO와 R2D2는 이야기에서 뒤로 물러났다. 스타워즈 오리지널 3부작은 이미 과거의 이야기이다. 시퀄 3부작은 과거를 타파하는 과정의 이야기이다. 새로운 이야기를 위해 구작의 인물들은 그 자리를 물러나 새로운 주인공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준다. 이것이 매니아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나는 오리지널 3부작만을 인정하는 부류였는데 이런 식의 파괴라면 괜찮다고 본다. 스타워즈는 주말의 명화로만 보고, 설정 따위는 하나도 모르는 우리 부모님들이 이번 스타워즈를 재미있게 봤다고 한다. 옛날 스타워즈라고는 전혀 모르는 극장안에 있던 어린이들이 우와 거리며 재미있게 보는 것을 보니 어떤 확신이 들었다. 이번 스타워즈는 확실하게 '재미있게 잘 만든 영화'라는 것이다.

"매니아들이나 이해하는 설정 따위 다 몰라도 돼. 옛날 작품 하나도 안봐도 돼. 그냥 즐겨!"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것 같은 이번 작품은 원작의 방대한 세계관과 자잘한 설정, 스타워즈 특유의 클리셰에 얽매이면 얽매일수록 버티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짜로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스타워즈의 시대가 열린 것 같기도 하다. 여자도, 흑인도, 동양인도, 평범한 사람도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개개인이 모여 하나의 큰 일을 해내는 스타워즈. 개그로 가득한 레고 스타워즈나 디즈니의 3D 스타워즈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라는 요즘 어린이들이 받아들이는 새로운 시대의 스타워즈 말이다.


(2017.12.17 14:30 메가박스 마곡 관람)


덧글

  • 나이브스 2017/12/17 17:28 #

    좋은 의도와 좋은 플룻이 있었음에도 진짜 좋은 진행을 못한 게 좀 아쉬웠죠.

    많은 사람이 단점을 비판하는 것도 정말 좋은 영화인데 너무 많이 망쳤다는 것에 대해 분노하는 건지도...
  • 플로렌스 2018/01/13 15:39 #

    온가족이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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