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 (FINAL FANTASY VII REMAKE, 2020, SQUARE ENIX) 플포이야기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 (FINAL FANTASY VII REMAKE, 2020.4.10 발매, SQUARE ENIX)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1997년.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이름의 차세대 게임기로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의 7번째 작품, FINAL FANTASY VII이 발매되었다. 나는 내 전재산과 그동안 모은 새것과 같은 상태의 슈퍼패미컴 팩들을 모조리 들고 가서 플레이스테이션과 파이널판타지7으로 바꿔왔다. 플레이스테이션 구입과 함께 구입해온 파이널판타지7은 내 최초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이었다.

파이널판타지7은 JRPG 최고의 인기게임인 파이널판타지 시리즈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크게 성공하고 인기를 끈 작품이었다. 세월이 흘러 요즘 기술로 다시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은 많았지만 게임 제작비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요즘 시대에 그런 방대한 규모의 게임을 요즘 기술로 새롭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그런데 23년 만에 결국 나오게 된 것이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

풀3D로 세계를 다시 구축하다보니 규모가 방대해진 만큼, 아예 게임 초반 미드갈 파트만 별도의 게임으로 발매하게 된 것이다. 나눠팔기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FF7 원작의 세계를 요즘 최신 그래픽에 풀3D로 구축하려면 GTA V 몇 개 분량의 대규모 용량이 필요할 것이고, 개발비를 감안하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발매된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 발매일부터 시작하여 2주 내내 플레이 했다. 엔딩을 본 이후에도 서브 컨텐츠, 트로피 요소 및 숨겨진 최강의 적, 하드모드 등을 모두 클리어하고 나니 80시간이 넘었다. 원작에서 5시간 분량도 안되는 미드갈 파트를 이렇게까지 거대한 규모로 확장해놓다니 놀라운 일이다. 역시 가장 최근에 재미있게 플레이한 바이오하자드 RE:3가 안그래도 짧은 원작의 분량을 리메이크 과정에서 더 짧게 줄여버려서 비판을 받았던 것과는 정 반대의 경우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재미있는 게임이다. 특히 원작을 알고 플레이 해야 100% 재미있는 게임이다. 2005년에 나온 3D 애니메이션 '파이널판타지7 어드벤트 칠드런'을 보며 최신 그래픽으로 FF7을 다시 보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100% 만족할 만한 게임이었다. 다만 원작을 모르는 사람들은 끝까지 봐도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일 것 같다. 애초에 원작에서 극초반부의 이야기를 별도의 게임으로 만든 것이다보니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말이다.

그래픽 하면 파이널판타지, 음악 하면 파이널판타지라는 말에 걸맞게 그래픽은 일본 게임 중에서 최고의 퀄리티를 보여준다. 그런데 배경 그래픽 중 일부의 텍스쳐 해상도가 지나치게 낮아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래픽 하면 파이널판타지인데 저해상도의 배경그래픽이라니!? 그 때문에 버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있는 모양이다. 나의 경우 일본 게임을 많이 하다보니 파이널판타지 정도면 탑클래스라고 생각되어서 일부 배경의 낮은 해상도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게임 제작시 분할 작업 과정에서 배경 텍스쳐 일부를 맡은 팀이나 회사가 FF7 리메이크의 뛰어난 그래픽에 비해 해상도를 너무 낮게 잡고 만든 모양이다. 이것을 고치려면 그 팀이나 회사에서 만든 모든 그래픽을 모조리 새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럴 시간에 그냥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 2탄이나 빨리 만들어서 발매하면 좋겠다.

게임을 하면서 느낀 것은 정말 세세한 디테일에 신경썼다는 점이다.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마을 사람들의 대사도 그렇고, 옆에 휙휙 흘러가는 마을 사람들의 대사가 모두 다 중요한 정보나 설정에 관계되어 있다는 것도 좋았다.

원작에서는 초반에 잠깐 나오다가 순식간에 잊혀지게 되는 제시, 빅스, 웻지가 중요한 서브 캐릭터로 자리잡게 된 것도 마음에 든다. 덕분에 플레이트 낙하 에피소드가 원작에서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번 리메이크에서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캐릭터 대사도 거의 동일한데 말이다. 원작에서는 그냥 초반에 잠깐 지나치는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제시, 빅스, 웻지가 각자 사연이 있고 애정이 가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되었다. 심지어는 원작에서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조니 같은 NPC까지 말이다.

고양이에 대한 묘사도 대단하다. 게임 제작자가 고양이를 어지간히도 좋아하나보다. 스쳐지나가는 고양이들의 그래픽과 움직임은 가히 충격적이다. 진짜 고양이들을 게임 속에 집어넣은 것 같다. 에어리스 집 꽃밭의 꽃이나 나비 묘사를 생각하면 꽃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던 모양이다.

드래곤퀘스트5에 플로라파와 비앙카파가 있다면 파이널판타지7에는 티파파와 에어리스파가 있다. 원작에서도 둘의 호감도에 따라 골드소서 관람차 이벤트에서 함께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상대가 바뀌기도 했다. (심지어는 바레트까지!) 이번작에서는 골드소서까지 가지는 못하지만 둘의 호감도에 따라 달라지는 이벤트를 넣었다. 물론 둘의 호감도가 둘 다 낮을 경우 바레트와의 특별한 이벤트 역시 건재하다.

에어리스와 티파는 깍두기 폴리곤 그래픽에 텍스트로 봤을 때에도 매력적이었지만 최신 모델링에 실제 성우 음성으로 목소리를 들으니 압도적이었다. 각각의 서브퀘스트와 함께 있을 때의 대화들은 각 캐릭터의 매력을 배로 부가시켰다. 격투가면서 소심한 성격의 티파나 연약해도 심지가 굳건한 에어리스의 매력은 이번 리메이크에서 더더욱 강화되었다. 함께 다닐 때 수시로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성격이 드러나고, 위트와 유머가 있으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게끔 만든 것이 놀랍다.

특정 챕터에서는 원작에 없던 다양한 서브퀘스트가 등장한다. '해결사'란 이름으로 클라우드는 마을 사람들의 어려움을 실력으로 해결한다.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의 서브퀘스트를 낮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의 경우는 높게 평가하고 싶다. 기존 파이널판타지 시리즈, 특히 직전 파이널판타지15조차도 서브퀘스트는 똑같은 내용에 똑같은 구성이 대부분이라 지루한 편이었다.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는 각 서브퀘스트마다 각기 다른 사연이 있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플레이 해야 하며, 각기 다른 연출에 각기 다른 대사가 나온다. 위쳐3 만큼은 아니더라도 웬만한 게임의 똑같은 서브퀘스트 반복보다는 훨씬 잘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원작에서의 말도 안되는 설정과 이벤트 진행 방식도 좀 더 납득이 가게끔 대폭 개선된 점도 마음에 든다. 월마켓에서의 이벤트도 대폭 개선되었다. '남남남'에서의 스쿼드나 클라우드의 여장 이벤트도 원작의 재미를 몇백배 즐겁게 뻥튀기시켜놓았다. 티파, 에어리스, 클라우드의 의상이 각각 3종류씩 구비되어 있어 게임 초반 티파의 선택지나 에어리스 서브퀘스트의 클리어 갯수, 클라우드의 서브퀘스트 진행에 달라진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각기 다른 3가지 타입의 티파 의상은 꽤나 마음에 들었고, 에어리스의 3가지 복장에 따른 각기 다른 연출 또한 재미를 준다. 클라우드는 3가지 의상이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운 정도다.

전투 시스템도 마음에 든다. 파이널판타지15에서 어느 정도 완성된 구 파이널판타지의 액티브 배틀과 액션RPG 타입의 결합은 한층 더 정제되었다. 회피와 가드, 반격기나 원작의 액티브 게이지를 활용한 커맨드기의 조합은 꽤 잘 만들어졌다. FF15에서 AI의 지능이 높아 녹티스만 조종하면 나머지 3명은 알아서 싸우고 알아서 회복하고 알아서 부활시켜줬던 것과 달리, 이번 FF7은 3명의 캐릭터를 모두 사용하며 진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좀 더 옛날 파이널판타지의 느낌이 나고 손이 바쁘며 전략적으로 많이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대신 난이도는 대폭 상승했지만 말이다.

난이도 얘기를 하자면 확실히 말해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는 어려운 게임'이다. 원작 파이널판타지7은 '쉬운 게임'이었다. 고전 JRPG 대다수가 그렇듯이 레벨 노가다만 열심히 하고 아이템만 충분하다면 웬만한 난관은 어떻게든 돌파 가능했다.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는 그것을 막아놓았다.

진행하는 동안 적들이 리젠되지 않아 경험치 노가다 및 마테리어 성장 노가다는 불가능하게 막아놓았다. 배틀 시뮬레이션이나 투기장이 나오는 챕터에서만 제한적으로 해볼 수 있는 정도다. 전체 스토리의 초반이라는 설정 때문인지 레벨 상한은 50으로 막아놓았고, 그에 따라 HP와 MP도 턱없이 낮다. 전체화나 속성 같은 요긴한 마테리아는 게임 전체에 걸쳐 나오는 갯수가 제한되어 있어 클리어 후 다시 플레이 해도 다시는 얻을 수 없다. 소환수 역시 한 전투당 딱 한 마리만 소환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적의 공격력은 상당히 높아졌고, 방어력 또한 압도적으로 높아 버스트 상태로 만들지 않는 이상 데미지도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그냥 평범하게 노멀 모드로 플레이 하면 웬만해선 진행하기 힘들 정도로 무식하게 어렵게 만들었다. 게다가 트로피 필수 조건인 하드 모드는 MP 회복과 아이템 사용까지 막아놓아 웬만한 고난도 게임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끔찍하게 어렵다.

하드모드는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에서 전투의 진짜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각 캐릭터마다 다른 특성과, 각기 다른 적에 따른 마테리아의 절묘한 조합, 시시각각 변하는 적의 공격에 따라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뛰어난 판단력을 요한다. 철저히 전략적으로 플레이 하면서도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컨트롤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클래식 모드나 이지, 노멀 모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심장이 두근두근하는 긴박감을 즐길 수 있다. 다만 MP 회복과 아이템 사용까지 막아놓은 것은 지독한 짓이 아니었나 싶다.

이번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는 정말 잘 만든 게임이다. 원작의 방대한 세계를 요즘 기술로 재현하려면 블루레이디스크 몇 장이 필요하겠고, GTA 몇 개 제작할 정도의 천문학적인 개발비가 들었을테니 현실적으로 리메이크가 불가능한 게임이었다. 그것을 분할하여 일자 진행형으로 만든 것 때문에 안좋은 소리도 많이 들었는데 현실을 고려하면 합당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대신 원작의 세계를 충분히 즐길 수 있게끔 대폭 규모를 확장했고, 세세한 디테일로 가득 채웠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원작과 완전히 달라진 엔딩 부분은 개인적으로 납득이 간다. 23년 전이랑 완전히 똑같은 게임을 만들면 이미 아는 스토리이기 때문에 원작을 해본 사람은 재미가 반감되고, 원작을 안해본 사람은 스포일러로 재미가 반감될 것이다. 미드갈을 나가는 부분이 원작과 완전히 달라졌고, 운명까지 바꿔버렸다고 하니 앞으로 나올 후속작은 원작과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후속작에 대한 궁금증이 더 증폭되고 더 기대하게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에어리스가 죽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말이다.

다음 파트가 발매된다고 해도 거대한 규모의 월드맵을 구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겠고, 챕터를 나눠 스토리 진행에 따라 가는 지역을 구분해놓을 것 같다. 그렇다해도 이번작처럼만 만든다면 충분히 만족할 것 같다. 캐릭터 역시 원작처럼 마음대로 바꿔가며 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작처럼 스토리 진행에 따라 필수로 플레이해야 할 캐릭터를 정해놓아 결국 모두 플레이하게끔 만들지 않을까.


80시간 넘게 재미있게 플레이하고 플래티넘 트로피까지 따며 느낀 점은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는 정말 잘 만들었고, 정말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서브퀘스트나 원작과 달라진 엔딩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고, 일부 저질 텍스처는 남들이 일일히 스크린샷 캡쳐해서 올리며 부각시키기 전까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유일한 불만은 트로피 필수 과제인 하드모드가 안그래도 무식하게 어려운데 MP 회복 금지에 아이템 사용 금지 제약까지 붙어있다는 점이다. 제발 다음작부터는 하드모드를 필수 트로피 과제로 넣지 말던지, 아니면 최소 MP 회복과 아이템 사용 제약은 풀어줬으면 좋겠다.





덧글

  • 조훈 2020/04/28 22:22 #

    막짤 밑에 신고 메뉴가 묘하게 잘 어울리는 조합이네요.
  • 플로렌스 2020/05/13 23:20 #

    클라우드가 참...
  • 알트아이젠 2020/05/03 01:09 #

    디럭스판 구입했는데 직후에 잡은 게임에 손땔 수 없어서 이걸 언제 할 지 모르겠네요.
  • 플로렌스 2020/05/13 23:21 #

    저는 하던 모든 것을 멈추고 파판7 리메이크에 올인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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